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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with 치킨' 시즌3-2] 3주차 – 사회적경제는 신자유주의의 은밀한 스파이인가?(정국진 참석자)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209 / 등록일 : 20-02-10 16:10

둘째 주를 건너뛰고 첫주에 이어 두 번째로 ≪사회적경제 삐딱하게 읽기≫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아직 넷째 주와 다섯째 주도 남아 있고 둘째 주는 건너뛰기까지 했지만, 이번 주는 ≪사회적경제 삐딱하게 읽기≫란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주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번 주에 살펴본 논문들은 ‘사회적경제론’ 그 자체를 정말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또 그 논문들을 삐딱하게 바라봤으니, 자연스럽게 활발한 토론으로 이루어졌음은 더 보태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이 논문, 어렵지 않았어요?”란 질문으로 시작한 김은주 님의 발제(김성윤, <사회적 경제에서 사회적인 것의 문제>)에 이어,(네, 맞아요 저도 어려웠어요. 그래도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이윤영 님께서 김주환의 <신자유주의 사회적 책임화의 계보학- 기업의 사회책임경영과 윤리적 소비를 중심으로>를 살펴주셨고요. 마지막은 강상모 님께서 김성기 교수의 <사회적 경제와 공공성이 동반성장하는 구도에 대해서>를 정리해 주셨습니다. (김성기 교수의 논의는 문재인 의원실에서 주최한 '사회적 가치 기본법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으로서, 앞선 두 가지와는 다른 시각이며 이번주 논의 내용과는 달리 다음주의 논의와 이어진다는 점도 부연하려 합니다.)

 

“(김성윤과 김주환은) 대놓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골수 맑스주의자들이 ‘혁명만이 대안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어요.” 이성영 간사님의 말이었습니다. 저도 이와 비슷한 시각이었음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우리 현실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 (저는 이 단어가 ‘신(新)’과 ‘자유’라는, 일반적으로 널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두 단어의 조합이라 단어가 가리키는 것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하는 게 싫어요. 감정을 담는다면 더 심한 단어로 지칭하고 싶지만, 감정을 쏙 빼고 최대한 중립적으로 적어보자면 ‘신 자본 자유주의’ 내지는 ‘극단적 자본주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는 이하 ‘극자본주의’라고 적을게요.) 암튼 이 신자유주의(‘극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할 때면 미안한 얘기지만, “그래서 대안은 뭔데?”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솟아오르곤 하지요.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에서 20세기에 실험해 보였던 현실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사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답하기란 궁색하기 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최근 들어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령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ㅡ자본주의가 극단으로 향하는 것을 막는 고삐 정도까지는 인정받는 것이 바로 이 ‘사회적경제’ 되시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적 경제마저도 (푸코의 ‘통치성’ 이론을 빌려) 극자본주의의 통치 전략의 일환이라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이 김성윤과 김주환의 입장이란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오늘 시간은 이들의 입장이 사회적 경제의 실상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함께,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 극단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이 소수의 연구자들 외에는 극자본주의에 대항할 사람이 남지 않을 것이라는 두 가지의 의견이 공존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는데, 한편으로 전자의 입장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어요. 사회적경제를 삐딱하게 바라본 두 논문들을 통해서 사회적경제를 보는 시각의 폭이 넓어졌으니까요. 또한 우리가 사회적경제 그 자체를 신화화하여 절대선으로 보지 않게끔 경계도할 수 있게 하였고요. 이와 관련해서는, 서태지 팬을 자처하신 한 사회학도 분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서태지의 신곡 <Christmalo.win(크리스말로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산타가 좋은 사람, 이라는 명제에 대한 질문을 동화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해요. (아이를 울면 안된다면서 권력이나 공포로 제압하는 식으로요.) 이 곡의 첫소절은 ‘긴장해 다들’로 시작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는 힘, 그게 바로 우리 모임의 제목이 말해주는 ‘삐딱하게 읽기’ 정신이 아닐까요? 물론 긴장으로만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너무 뻣뻣할 수도 있으니, 때로는 유연하게 대처하면서요. 이 두 가지가 우리 모두가 가질 두 덕목, 우리를 흔들리지 않고 날게 해 주는 두 날개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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