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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세제 개편은 특권이익 환수부터 :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낡은 오해를 풀어야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2,345 / 등록일 : 20-02-05 14:16

지난 8일 정부가 ‘2013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후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불과 나흘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서민과 중산층의 세 부담이 무겁다면서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고 그러자 당정협의를 통해 내용을 다 알고 있었던 새누리당도 돌연 안면을 바꾸어 주무 부처를 비난하였다. 세수입이 늘어나는데도 증세가 아니라는 정부도 이상했지만 야당의 대응도 그에 못지않게 이상했다. 처음에는 ‘세금 폭탄’이라면서 반대하더니 곧 이어 부자 증세가 먼저라고 반대 이유를 바꾸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청와대는 서민의 지갑을 걱정하고 야당은 부자 증세를 강조하고 있어 다소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소득에 따라 세금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인식에서는 공통된다. 또 시민사회에서도 복지를 위해서는 소득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면서 역시 소득과 세금을 직접 연계시키고 있다. 흔히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고 하며, 교과서에도 납세 능력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능력 과세의 원칙’이 나온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소득에 따른 과세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의 상식적인 정의감에 따르면,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개미가 게으름을 피워 가난하게 된 베짱이보다 공동체를 위해 더 큰 희생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소위 ‘능력 과세의 원칙’은 원칙이라기보다는 그저 소득이 없으면 세금을 낼 수 없다는 말이고, 결국 소득 있는 사람에게 과세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일 뿐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려면 좀 더 그럴 듯한 근거가 필요하다.

 

개미들이 소득을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연장이 사회의 공동자산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개미 중 <갑 개미>는 좋은 연장을, <을 개미>는 그보다 못한 연장을 사용하며, <병 개미>는 아예 연장을 구하지도 못했다고 해보자. 이럴 때 각자 벌어들이는 소득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소득이 얼마든, 공동자산인 연장의 사용료를 사회에 먼저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두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소득과 세금이 같이 가야한다는 원칙은 간단하게 무너진다.

 

특권이익은 빈부격차와 경제침체의 원인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 도대체 공동자산이라는 게 있는지, 있다고 해도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실제 사례를 하나 제시한다. 

 

19일부터 이동통신용 주파수 경매가 진행 중이다. 요즘 한창 붐이 일고 있는 LTE 사업을 위해서는 유리한 대역을 적당한 가격에 차지해야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경매는 이동통신 3사의 미래가 걸려있는 영토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2년 전인 2011년 경매에서 1.8GHz 대역의 10년간 사용권이 1조원 가까운 금액으로 결정된 것으로 볼 때 이번 경매 총낙찰액은 수 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공동자산을 특정인이 차지하는 것은 특권이며 특권이익은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반영하는 사례다.

 

세상에는 이런 공동자산이 많은데도 주목을 못 받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자는 자연물과 인공물로 나눌 수 있는데 생산자가 없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자연물은 모두 공동자산이다. 주파수 대역만이 아니라 토지를 비롯한 천연자원, 환경 등이 모두 그렇다. 공동자산을 특정인이 사용하거나 오염시킨다면 사용료나 피해 보상액을 모두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 또 정부가 공권력을 이용하여 경쟁을 제한한다든지 면허나 특허와 같은 유리한 자격을 설정하면 그 역시 특권이다. 또 학벌사회에서 특정 대학 출신이 누리는 이익,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누리는 이익, 지역차별 사회에서 특정 지역 출신이 누리는 이익도 특권이익이다. 모두 환수하는 것이 옳다.

 

특권이익은 토지 지대와 성격이 같다고 하여 교과서에서는 렌트(rent) 또는 지대라는 용어로 부르면서 그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도 최근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 The Price of Inequality>에서 렌트를 부당한 빈부격차와 경제침체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특권이익 다음 순위는 운의 이익

 

특권이익만으로 정부 재정을 다 충당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정이 같은데도 운이 좋은 <A 개미>의 소득이 <B 개미>의 소득보다 월등히 높다고 해보자. 특권과 행운은 둘 다 당사자의 행위와 무관한 이익을 발생시키므로 그 이익은 노력소득보다 우선적인 과세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다만, 운은 특권과 달리 다른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악성도가 덜하기 때문에, 행운의 이익의 환수 순위는 특권이익의 다음 순위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상식에 바탕을 둔다면, 부자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할 때 그들은 당연히 이렇게 답을 할 수 있다. “특권이익부터 징수하고 그걸로 모자라면 운의 이익을 징수하세요. 소득에 대한 세금은 그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특권이익과 운의 이익이 정부 재원으로 충분한 규모가 된다면 부자에게 양보하라고 설득할 필요도 없고 서민층의 얇은 지갑에 손을 댈 필요도 없다.

 

현실에서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 운이 좋은 사람은 소득도 높은 게 보통이고 따라서 특권이익과 운의 이익만 환수하더라도 환수액과 소득 간의 상관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 상관성일 뿐이다. 체중과 성인병의 상관성이 높다고 하지만 신체 건장한 운동선수를 성인병 환자로 진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출처 : 2013년 8월 26일자 평화뉴스>

 

김 윤 상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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