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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찬] 홍콩식 토지 공개념, 진정한 아시아의 해방구가 되려면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891 / 등록일 : 20-02-07 21:05



홍콩식 토지 공개념, 진정한 아시아의 해방구가 되려면

 

 

조성찬 / 토지+자유연구소 북중연구센터장


홍콩식 토지공개념은 여러 차원에서 그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중국 반환 이전부터 임차기간 및 지대 납부방식에서 후퇴가 진행되었고, 특히 중국 반환 과정에서 토지사용권이 무상으로 재연장되는 후퇴를 경험했다. 매년 납부하는 지대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일국양제 실시 후 중국 대륙의 자본 유입은 홍콩 부동산 시장을 더욱 교란하였다. 이에 홍콩 시민들 특히 청년들이 불만을 품게 되었고 2014년 우산시위를 통해 홍콩 독립을 요구했다. 아시아의 해방구가 되었던 홍콩식 토지공개념이 발전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지대 납부 수준을 더 높이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투기적 가수요가 억제되어 부동산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되고, 그 기초 위에서 도시재개발, 공공주택 공급 등 필요한 도시관리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며, 국제금융 허브 및 자유무역항으로서 보다 발전된 도시경제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 한국식 토지공개념과 홍콩식 토지공개념은 결국 지대 납부 방식 및 수준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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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다른 홍콩식 토지공개념

 

인구수 734만 명(2016년 기준)에 면적은 1,104㎢로, 서울보다 인구는 적으면서 면적은 1.82배 큰 아시아의 작은 섬 홍콩. 향나무를 실어 나르는 항구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홍콩(香港)은 해안가와 경사진 산에 높이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 좁디좁은 주택들,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주택가격과 임대료로 유명하다. 국제 금융과 무역 및 쇼핑 천국이라는 이미지도 강렬하지만 말이다.

 

필자가 올 해 초에 홍콩을 방문하여 머물렀던 호텔(Horizon Hotels & Suites Limited)은 일반 가정용으로도 장기 임대되고 있었는데, 약 60~66㎡ 넓이(방 2개)의 호텔식 주거공간이 12개월 장기 계약을 할 경우 월 임대료가 우리 돈으로 약 3백 13만원에서 3백 40만원 수준이었다. 홍콩 정부가 발표한 저소득층 주거환경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조사대상 물건의 중간에 해당하는 ‘중앙치’ 주택의 면적은 10㎡, 월 임대료는 우리 돈으로 약 61만5천 원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2018.1.23.). 그리고 주택가격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인데 신계지역 荃灣(Tsuen Wan)에 위치한 荃新天地 2기 아파트의 경우, 건축면적 102㎡(전용면적 77㎡)의 주택가격이 17억 7천만 원이었다. 홍콩은 이미 1평당 1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즐비하다. 이렇게 보면 홍콩의 주거환경은 최악처럼 보인다. 그래서 부동산 제도의 기초가 되는 홍콩의 토지제도를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토지사유제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 반대다.

 

영국 식민지 시절 부동산 투기를 막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전체 토지를 홍콩 정부가 소유하고 장기 토지사용권을 개인 및 기업에 양도하는 제도를 채택한 이후, 이 방식은 자유무역항 및 국제금융허브라는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의 개혁개방기 토지개혁에 중요한 모델이 되면서 중국의 경제체제 전환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중국의 토지개혁 모델이 다시 북한과 베트남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홍콩은 결코 작은 섬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자유시장경제 발전을 도모하려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함정에 빠진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일종의 ‘해방구’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토지공개념은 크게 ‘보유세 접근법’과 ‘공유 및 임대 접근법’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을 통해 추진하려던 토지공개념이 토지사유에 기초하여 보유세 강화를 핵심으로 한다면, 홍콩식 토지공개념은 토지를 공유자원(commons)으로 보고 정부가 이를 민간에 임대하는 접근법이다. 필자는 이러한 방식을 ‘공공토지임대제’(Public Land Leasing)로 부른다. 홍콩이 추진한 토지공개념은 아시아 사회주의 경제체제 전환국에는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지만, 개인 및 자본의 욕구에 의해 토지제도가 후퇴하면서 극심한 불평등이 만연하게 되었다. 홍콩식 토지공개념이 진정한 아시아의 해방구가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분명해 보인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식민지 홍콩 토지제도의 형성

 

홍콩은 영국의 점령 및 조차(租借)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홍콩섬, 까우룽(九龍) 반도, 신계(新界)로 구분된다. 오늘날 세 지역을 통틀어 홍콩이라고 부른다. 홍콩 섬은, 1840년에 발발한 제1차 아편전쟁으로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842년에 난징조약을 체결하면서 청으로부터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1843년에 영국은 홍콩 섬에 빅토리아 시티(Victoria City)를 건립하고 총독부를 신설했다. 까우룽 반도는,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으로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면서 영속적으로 영국에 귀속되었다. 신계라고 불리는 곳은 1898년 영국이 중국으로부터 99년간 조차한 곳이다. 조차의 유효기간은 1997년까지였다. 신계에,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에 적용된 영구 양도 방식이 아닌 일시적인 조차 방식이 적용되면서, 후에 홍콩 반환이 신계를 넘어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까지 포함되는 원인이 되었다. 아래 <그림 1>은 홍콩의 현재 18개 구(區)를 보여주는 것으로, 초록색(15~18번)이 홍콩 섬이며, 빨간색(10~14번)이 까우룽 반도이고, 나머지 파란색(1-9번)이 신계지역이다.

 

식민지 홍콩의 단계별 영토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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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ERSE+ASIA

 

식민지 홍콩 토지제도의 형성은 홍콩섬 점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쟁 기간인 1841년 5월, 영국에 양도된 홍콩섬에 대해 당시의 영국 선장 엘리엇(Elliot)은 홍콩섬 토지를 공유상태로 유지하려고 전체 토지를 공유(the Crown)로 선포하고, 다음과 같이 홍콩 토지제도의 가이드라인 성격의 명령을 발표하였다. 첫째, 토지를 팔지 말고 임대할 것(75년), 둘째, 토지개발권을 공공에게 부여할 것, 셋째, 경매를 위해 ‘연간’ 지대 최저가격을 설정할 것, 넷째, 최고의 연간 지대 입찰자에게 임대할 것, 다섯째, 정부에 통지하지 않는 사적인 토지거래는 금지할 것 등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은 홍콩 공공토지임대제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또한 공공토지임대제의 장점을 이해한 영국 정부는 ‘도시성장관리’, ‘산업개발 및 공공주택개발 촉진’, ‘기초시설 투자재원 마련’이라는 세 가지의 토지임대정책 목적을 제시하였다.

 

영국이 홍콩에 이러한 조치를 취한 이유에 대해 『홍콩의 역사』를 쓴 Endacott(2006: 43)은 “지가 상승에 따른 투기가 예상되기 때문에 좋은 부지를 확보하고 미래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서술하고 있다. 당시 모든 영국 식민지는 토지 투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2006: 66). 여기에 더해 내부적으로도 그 당시 홍콩 식민지는 낮은 소득세율 및 영국 본국의 재정지원 부족으로 인해 토지임대료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홍콩 토지제도의 변화 

 

엘리엇이 제시한 공공토지임대 원칙은 크게 임차기간 및 지대납부 방식 두 가지 점에서 변화가 발생한다(Endacott, 2006: 95-96). 먼저 임차기간이 길어졌다가 줄어들었다. 초기인 1843년에 건축용지와 기타 용지의 사용기한이 각각 75년 및 21년으로 결정되었다. 임차인은 공개 경매 또는 연간 지대를 직접 납부함으로써 임차권을 획득하였다. 그런데 주민들이 75년의 임대기한에 만족하지 않자, 1848년 영국 정부는 ‘무상’으로 75년 기한을 999년으로 연장하였다. 1860년, 까우룽섬의 소유권이 영국에 귀속되면서 기존 토지소유자는 토지임대 기한이 999년인 임차인으로 인정되었다. 이와 동시에, 토지소유권을 상실한 토지소유자는 보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1898년, 영국 정부는 홍콩 총독에게 999년의 임대기한 제도를 폐지하도록 통지하였으며, 75년을 새로운 임대기한으로 하는 제도를 추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홍콩 식민지 정부가 임차인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자, 부득이하게 75년의 ‘무상’ 연장권을 허용한 후에야 75년 임대기한 제도를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하나는 경매 대상이 ‘연간 지대’에서 전체 사용기간의 지대 총액으로 변경되었다. 즉 지대 매년 납부에서 일시불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후 연간 지대는 명목지대(ground rent, 연간 지대의 5%)로 변하였으며 고정되어 버렸다(Phang, Sock-Yong, 2000: 340). 이처럼 일시불 방식으로 변경된 것 외에도, 앞서 살펴본 대로 임차기간 변경 과정에서 지대를 전혀 납부하지 않는 무상 원칙이 적용되는 토지가 생기면서 홍콩의 토지제도는 크게 후퇴했다.

 

현재 홍콩의 지대 일시불 방식에 따른 토지임대료 납부는 3단계로 이루어진다. 즉 1단계: 초기 임대단계 → 2단계: 임대계약 수정단계 → 3단계: 연장(갱신) 계약단계에서 일시불(lump sum payment)로 토지임대료를 납부한다. 우선, 1단계인 초기 임대단계에서 사용기간에 해당하는 지대를 일시불로 납부한다. 홍콩 정부는 한 필지의 토지개발권을 양도할 때, 매매계약서 상에 용도, 고도, 구획비율 및 건축설계상의 제한을 기재한 후 이러한 내용의 매매계약서를 토지개발권 경매에 관심이 있는 모든 토지개발회사에게 보낸다. 토지임대계획은 각 회계연도 시작 시점에 공개발표하며, 매 월 공개경매를 진행한다. 경매 진행시에는 경매에 참여하는 토지개발회사의 상세한 정보를 공개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매년 납부하는 명목지대가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홍콩 정부는 초기 임대단계에서 일시불 지대를 최대로 획득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2단계인 임대계약 수정 시 임대료를 일시불로 납부한다. 임대계약 수정을 희망하는 임차인은 신청 후 토지국의 공식 허가를 얻어야 한다. 토지국이 공식 허가하면, 임차인은 수정계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토지가치 증가분에 대해 일시불로 개발이익(betterment charge)을 납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3단계인 계약연장 시에 사용기간에 해당하는 지대를 일시불로 납부한다. 현행 임대제도 하에서, 홍콩정부는 상술한 3단계를 이용하여 지대를 회수할 수 있으나, 1단계에서 회수하는 일시불 지대 금액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토지임대료 매년 납부방식으로 부분 회복

 

홍콩의 토지임대료 납부 방식이 매년 납부방식에서 일시불 방식으로 전환되었고, 무상인 경우도 많아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것이 홍콩의 금융위기다. 1960년대 말에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홍콩 정부는 1969년부터 1981년까지 토지임대료 매년 납부방식과 유사한 “분기상환방식”을 실행했다. 이 기간에 정부는 모든 임차인에게 매년 지대의 형식으로 일시불 지대를 납부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1960년대 말에 발생한 금융위기로 인해 기업 등 임차인은 은행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9년 정부는 분기상환방식을 우선적으로 일시불 지대 총액이 1000만 홍콩달러를 넘는 중심상업구역(CBD) 내부의 상업용지에 적용했다. 이후 정부는 이 정책을 모든 임대용지에 확대 적용했다. 분기상환 회수는 10차(1차에 전체 금액의 10% 납부)였으며, 일회 납부에 5%의 이자비용을 추가했다. 홍콩 금융위기가 끝난 후, 디폴트가 증가하자 1981년에 정부는 분기상환방식을 폐기했다.

 

1973년, 홍콩정부는 임차인과 임대연장계약을 체결할 때에 고정되어 있는 명목지대(ground rent) 납부율을 인상하려고 하였으나, 임차인의 반대를 직면한 이후 결국은 “가정(假定)” 임대소득의 3%라는 명목지대 납부율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1984년, 중국과 영국 정부가 홍콩 반환에 관하여 협상할 때에도 이어진다. 이 때 홍콩 정부는 명목 대지지대 수준을 다시금 인상할 생각이 없었으며, 또한 50년 기한의 토지사용권 연장에 대하여 일시불 지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같은 해에 중국 및 영국 정부가 체결한 <공동선언> 부록 제3항은, 1997년 6월 2일 또는 그 이전에 기한이 도래하는 모든 토지임차권에 대해 ‘무상’으로 50년 재연장하는 내용으로 양국 정부가 합의하였다(Cruden, Gorden N., 1999: 6-12).

 

홍콩 반환에 따른 토지임대 관련 원칙을 1973년 시기의 임대계약과 비교하면,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정부는 매년 부동산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게다가 “실제” 대지지대 수준을 수정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1997년 홍콩의 중국반환 이후, 홍콩의 토지임대 방식은 토지임대료 일시불 방식에서 다시금 토지임대료 매년 납부 방식으로 부분적으로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매 년 납부하는 지대 수준이 매우 낮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현재, 홍콩의 부동산 소유자는 실제 지대를 과표로 하여 5%의 재산세(rates)와 3%의 명목지대 및 15%의 임대소득세(property tax)를 납부한다(Eddie Chi-Man Hui 외, 2004: 83).

 

홍콩식 토지공개념 제도의 가능성

 

우선 지대환수로 공공재정이 확충되었다. 홍콩에서 지대 관련 수입이 줄곧 재정수입의 중요 위치를 차지하여 왔다. Phang, Sock-Yong(2000, 343-344)의 연구에 따르면, 1970년부터 임대한 토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홍콩은 1970년부터 1991년 사이에 발생한 토지가치 증가부분의 39%를 환수하였다. 당시 한국의 법인세 세율이 27.5%였다. 이 기간의 토지임대료 수입이 정부 재정 총수입의 21%를 차지하였으며, 정부 총 기초시설비용의 80% 이상을 차지하였다. 1982년에는 이러한 비율이 35%로 상승하였으며, 총 기초시설비용의 109%로 상승하여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대회수의 주요 방식이 매년 납부 지대가 아니라 토지임대계약에서 환수하는 일시불 지대 수입이었다. <표 1>의 수치는 2004/2005년 홍콩 정부재정 수입재원의 백분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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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조세대체로 자유무역항 및 국제금융허브로의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지대 관련 수입이 재정수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소득세와 노동소득세 등 경제활동에 부담을 주는 세제를 감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효과를 ‘조세대체효과’라고 한다. Phang(2000)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기업소득세율이 16.5%, 비법인 기업소득세율이 15%였다. 노동소득세율을 순수입 기준으로 계산하면 : 0-20000 HK$은 2%, 20001-50000 HK$는 9%, 50001-80000 HK$는 17%, 80001 HK$ 이상은 남은 순수입에서 20%를 환수하였다. 그러나 총세수입이 총수입의 1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었다. 개인을 우대하는 규정으로 인해, 44%의 노동자는 노동소득세를 부담하지 않았다. 낮은 기업소득세와 노동소득세 세율은 노동의욕과 기업투자 등 각종 경제활동을 자극하여 홍콩이 자유무역항 및 국제금융허브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홍콩과 싱가폴의 경험에 따르면, 조세대체 정책은 임차인이 고율의 지대를 납부하는 정책에 대한 반대를 줄이며, 흑자재정을 향유하고 경제발전을 촉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 경쟁력 평가기구인 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의 《World Competitiveness Scoreboard,2009》 평가 중에서, 홍콩이 2위, 싱가폴이 3위, 핀란드가 9위를 차지하였다.

 

세 번째로, 중국을 위시한 사회주의 국가의 경체제제 전환에 기여했다. 중국이 선전 등 경제특구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게 되면서 중국 전역은 물론이고 인접국가인 북한과 베트남 등의 경제체제 전환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 선전은 인접한 홍콩의 제도에 큰 영향을 받았다. 중국이 특구 건설이라는 개방정책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4월 10일부터 5월 6일까지 있었던 국가계획위원회와 대외외무부 경제무역 고찰단의 홍콩과 마카오 방문이었다. 물론 이와 더불어 5월 2일부터 6월 초까지 서유럽 5개국 방문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선전의 전신인 바오안 현과 주하이 현에 농업수출기지와 대외가공조립기지 설치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 주체가 중국 광동성과 교통부가 관할하는 홍콩 소재 초상국(招商局)이었던 것이다(안치영, 2008: 20). 선전이라는 도시의 건설과 구조는 자본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접근성이라는 공간적 측면에서도 홍콩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중국이 폐쇄된 상황에서 자유항 홍콩이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경제체제 전환기 선전이 시험장이자 창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었다(안치영, 2008: 40).

 

네 번째로, 중국-홍콩의 일국양제식 정치경제 통합에 기여했다. 중국과 홍콩이 최초로 추진한 일국양제는 타이완과의 통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큰 틀에서 경제통합을 이끈 힘은 중국의 정치적인 통일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힘은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을 제정 및 통과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이후 경제적인 차원에서 일국양제식 경제통합이 진행되었다. 주요한 것으로, 중국이 홍콩과 2003년에 맺은 CEPA 협약(Closer Economic Partnership Arrangement), 2006년 8월 21일에 체결된 중국-홍콩 간 이중과세방지협정(“DTA 2”), 두 지역 증시간 교차매매를 허용한 후강퉁(沪港通, 상하이-홍콩, 2014), 선강퉁(深港通, 선전-홍콩, 2016)이 있다. 그런데 경제통합 요인에서 토지제도의 유사성에 따른 경제통합 효과는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다. 홍콩에 크게 영향을 받은 중국의 토지제도는 토지사용 기간에 해당하는 토지임대료를 일시불로 납부한다는 점에서 홍콩의 토지제도와 아주 유사하다. 토지제도의 유사성은 양 경제체 상호간에 기업진출과 부동산 매입 등 재산권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즉 토지제도의 유사성은 물자나 자본의 이동뿐만이 아니라 기업과 사람의 이동을 용이하게 해주고, 보다 실질적인 차원의 통합이 진행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다섯 번째로, 홍콩식 토지공개념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연결하는 가교이자 대안적인 경제이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홍콩식 토지공개념은 영국이 식민지 통치를 위해 추진한 것이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잘 융합되었다. 출발점이 결코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후에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체제 전환에 기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콩식 토지공개념을 존 스튜어트 밀 등 이론가들이 제시한 ‘자유 사회주의’(liberal socialism)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다.

 

홍콩식 토지공개념 제도의 구조적 한계

 

먼저, 토지임대료 일시불 및 낮은 수준의 명목지대는 고지가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차액지대이론에 따르면, 만약 정부가 매 년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 전부를 환수한다면, 지가가 높아질 수 없으며 오히려 ‘0’으로 수렴하게 된다. 그런데 홍콩 지가는 일시불 방식 때문에 초기에 고지가가 형성되었으며, 낮은 수준의 명목지대는 투기수요를 자극하여 지가가 급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1970-1995년 기간의 임대수입 구성이 홍콩 지가가 높은 원인을 설명한다. 1970-1995년 기간의 임대 총수입 67,147 US 달러 중에서 토지임대료 매년 납부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4%에 불과한 반면 일시불 수입이 96%를 차지한다. 또한 일시불 수입 중에서 1단계 경매임대 일시불 수입이 7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그림 2 참조). 이로써 알 수 있듯이, 홍콩 정부가 초기 경매임대 일시불 수입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지가 앙등을 초래하였다. 홍콩이 일시불 수입에 의존한 원인은 홍콩의 명목지대가 낮은 수준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계약 연장시 납부하는 일회성 대금에 대해 임차인들이 강렬하게 반대했고, 재개발 등으로 인해 임대계약을 재협상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초기 경매 단계에서 가장 많은 지대를 확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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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지나친 초기 일시불 의존 및 낮은 명목지대’ 구조가 지가는 물론 주택가격 앙등을 초래했다. 토지임대료 일시불 방식은 진입장벽 및 토지독점을 형성하게 되었고, 토지독점은 다시 건축물과 주택가격의 급등과 금융 불안정성 문제를 초래하였다. 한 통계에 따르면, 홍콩 전체 주택의 70%가 7대 건설회사에 속했으며, 55%는 4대 건설회사에, 25%는 한 건설회사에 속했다. 초기 경매 일시불 금액이 몇 백만 홍콩달러에 상당하기 때문에 거대 자본가만이 경매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자본가는 금융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의 폭락은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비록 초기 경매 일시불이 높다 하더라도, 미래의 토지가치 증가를 완전히 환수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토지투기를 초래하고, 다시 건축물 가격의 상승을 초래한다. 특히 1984년 홍콩 정부가 1997년 6월 27일 만기가 도래하는 모든 임대계약을 ‘무상’으로 2047년까지 연장한 사건은 토지투기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로, 토지임대료 일시불 방식과 부동산 담보대출의 결합으로 부동산시장에 유동성 과잉이 초래되고 부동산 투기가 극심해지면서 1997년의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 Staley(1994)의 연구에 따르면, 홍콩의 부동산업과 건설업이 홍콩 증권시장에서 45%를 차지하였는데, 이러한 수치는 싱가폴의 13%, 말레이시아의 8%, 일본의 2%, 영국의 10%보다도 훨씬 높다(Yu-Hung Hong, 2003: 171에서 재인용). 谢经荣(2002)의 연구에 따르면, 1998년 이후 대량의 은행대출이 이루어졌다(任宏·王林著, 2008: 203-207에서 재인용). 그리고 1998년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과거 20년 동안 부동산 관련 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이르다가 1998년에는 무려 70% 수준에 육박하였다. 1980년대 초, 개인주택 구매에 사용된 대출이 GDP의 8%를 차지하였는데, 1998년에 이르러 그 비율이 40%에 이르렀다. 이처럼 부동산 건설과 구매를 위해 이루어진 대량의 은행담보대출이 부동산시장에 진입하면서, 부동산업이 지나치게 빠르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홍콩의 경제성장이 지나치게 부동산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일정한 자금을 가진 투자자는 부동산투기와 주식투기를 선택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거품 증가를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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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식 토지공개념의 미래?

 

오늘날 누구도 홍콩식 토지공개념을 사회주의로 매도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홍콩식 토지공개념은 자유시장경제와 조화를 이루었으며,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전환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홍콩식 토지공개념은 중국 반환 이전부터 임차기간 및 지대 납부방식에서 심각한 후퇴가 진행되었고, 특히 중국 반환 과정에서 토지사용권이 무상으로 재연장되는 후퇴를 경험했다. 물론 매년 납부하는 지대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즉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중국 대륙으로부터 부동산 투기 자본이 유입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반면 홍콩특별행정구 수반인 행정장관 선출권이 홍콩 시민에게 부여되지 않고 중국 정부의 영향력에 좌우되면서, 친 중국 성향의 홍콩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홍콩간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자 2014년에 홍콩 청년들이 주도하여 우산시위 운동을 전개하고 행정장관 직접 선출권과 홍콩 독립을 요구했다. 토지는 생산 및 생활 기반으로서의 토지와, 영토로서의 토지라는 두 차원을 동시에 갖는데, 홍콩은 지금 두 차원의 문제가 복잡하게 결합되면서 중국-홍콩 간 일국양제마저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홍콩은 작은 도시정부 모델로서 뿐만 아니라 중국이라는 전체 정치경제 체제의 한 일원으로서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정치경제 통합의 기초인 홍콩식 토지공개념 제도의 발전적 전환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시아의 해방구로서 기여한 홍콩식 토지공개념이 다시금 그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토지임대 제도에 있어서 기본 원칙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내용은 홍콩의 초기 토지제도를 제시한 엘리엇의 가이드라인에서 보았듯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토지 지대에 기초하여 매년 납부하는 원칙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홍콩 정부는 현재 낮은 수준의 지대를 실질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홍콩식 토지공개념의 핵심도 결국은 한국처럼 지대의 적정 환수에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투기적 가수요가 억제되어 부동산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되고, 그 기초 위에서 도시재개발, 공공주택 공급 등 필요한 도시관리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며, 국제금융 허브 및 자유무역항으로서 보다 발전된 도시경제 모델을 보여줄 수 있다.

 

저자소개

조성찬 박사(landjustice@hotmail.com)는

토지+자유연구소 북중연구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며, 관심 주재는 도시 재생, 공동토지임대제 및 중국과 북한의 부동산 정책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상생 도시, 중국의 토지 개혁 경험: 북한 토지개혁의 거울(공저) 등이 있다.

 

참고문헌
•이일영 엮음, 『경제특구 선전의 복합성 : 창과 거울』, 한신대 출판부, 2008.
•B. Endacott, 『홍콩의 역사』, 은은기 옮김, 한국학술정보, 2006.
•연합뉴스, “홍콩, 10㎡에 2.3명 거주 ‘극소주택’ 사회문제화”, 2018.1.23.
•Phang, Sock-Yong, “Hong Kong and Singapore” in Andelson, R. V.(ed.), Land-Value Taxation Around the World, Oxford: Blackwell Publishers, 2000.
•Cruden, Gorden N., Land Compensation and Valuation Law in Hong Kong, Hong KongㆍSingaporeㆍMalaysia:Butterworths,1999.
•Eddie Chi-Man Hui & Vivian Sze-Mun Ho and David Kim-Hin Ho,“Land Value capture mechanisms in Hong Kong and Singapore”,Journal of Property Investment & Finance, Vol.22 No.1, 2004.
•Michael Littlewood, The Hong Kong Tax System: Key features and lessons for Policy Makers, PROSPERITAS, 2007, March, Vol. VII, Issue II.
•Steven C. Bourassa and Yu-Hung Hong ed., Leasing Public Land: Policy Debates and International Experiences, Lincoln Institute of Land Policy, 2003.
•任宏·王林著, 『中国房地产泡沫研究』, 重庆:重庆大学出版社,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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