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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기본소득으로 승부를 걸자 : 시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기본소득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738 / 등록일 : 20-02-05 14:47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과 앞날의 모호한 희망. 그게 지금 한국사회와 야권이 봉착한 객관적 처지다. 첩첩산중,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와 야권이 직면한 절박한 상황이다. 나락으로 질주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질적으로 바꾸고, 시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야권의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정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있다. 기본소득이 그것이다.

 

7일 자 신문에 난 외신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보도는 스위스에서 모든 성인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을 담은 국민발의 법안이 의회에 제출돼 국민투표에 회부됐다는 기사였다. 이 법안의 뼈대는 정부가 성인인 스위스 국민 모두에게 일 인당 한 달에 2500스위스프랑(약 2800달러·약 297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이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하면 스위스는 세계에서 최초로 기본소득을 일국 차원에서 시행하는 나라가 된다.

 

전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고 복지제도가 조밀하게 정비된 스위스 같은 나라가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기본소득의 철학적 배경과 경제적 정당성에 대한 승인, 국민경제에 미치는 선순환 효과 등이 그 근거들일 것인데, 정작 기본소득의 도입이 절실히 요구되는 건 스위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각 부문별 양극화가 극심하고, 사회구성원들이 실존적 불안에 전전긍긍하며, 실존적 불안이 극도의 이기심으로 표출되는 나라, 궁핍과 불안으로 인해 자살하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자본주의 시장경제 고유의 폐단과 재봉건화의 기괴한 결합을 눅일 제도와 장치가 부재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1%의 사람들이 나머지 99%를 다스리며, 절망이 희망의 자리를 대신하고, 경쟁이 연대를 밀어내며,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에 희망을 조직하고 집행하는 프로젝트를 도입해야 한다. 기본소득제의 도입이야말로 그런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기본소득은 오직 국민이라는 이유로 지급되는 급부로, 사회적 기본권을 구체화하는 대표적인 정책수단이다. 기본소득제는 국민들의 인간적 존엄을 보장하고, 실질적인 평등을 제고하는 역할을 한다.

 

기본소득은 우선 철학적으로 정당하다. 주지하다시피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것은 압도적으로 출생과 같은 운(fortune)이고 거기에 더해 과거 세대와 현재의 사회구성원들이 만들어 낸 지식과 경험과 기술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나 이건희의 성취가 그들 개인에게 전적으로 귀속되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사회적 열패자들의 실패도 온전히 그들의 탓은 아니다. 한 사회가 이룬 성취와 부는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공유하는 것이 정당하며 기본소득은 이를 가능케 한다.

 

국민경제 측면에서도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긍정적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을 통해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면 자연히 소비가 촉진돼 내수경제가 살아날 것이고, 레드오션에 진입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수가 줄어 노동시장 및 영세 자영업 시장의 과당경쟁도 일정 부분 해소될 것이며 이를 통해 시장임금이 상승하고 자영업자들의 이윤율도 제고될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내재적 속성이라 할 기술혁신으로 인해 고용 없는 성장은 상수(常數)가 된 지 오래다. 완전고용 혹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은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은 가장 강력한 실업대책이기도 하다.

 

한편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교육과 사회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해지고 임금근로자들의 시장임금이 상승하면 사회적 자원의 배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변형된 전쟁이라 할 교육 영역에서의 경쟁도 완화될 것이다. 이는 교육문제 해결의 단초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타인에 대한 연대의식이 고취된 시민들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다. 신뢰자본의 부족으로 생기는 자원의 왜곡과 낭비는 실로 엄청난데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신뢰자본의 형성에 도움을 주어 자원의 왜곡과 낭비도 상당히 개선될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제의 전면적 도입을 위해서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면 재원 마련이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미 선행된 연구들이 있거니와 토지와 증권, 이자 등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고율로 과세하고, 환경세를 신설하며, 연금을 기본소득으로 전환하면 기본소득과 무상의료, 무상교육에 필요한 재원이 마련된다. 토지, 증권, 이자, 배당, 상속 같은 것은 대표적인 불로소득이자 과거 세대와 현세대가 만들어 낸 가치로 세금의 형식으로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정당하며, 환경세의 신설은 생태적 차원에서 긴절하다.

 

대한민국이 불임의 공화국, 절망과 탄식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야당과 시민사회, 비판적 지식인들은 기본소득을 한국사회의 희망을 담보하고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가장 위력적인 킬러 콘텐츠로 사용해야 한다. 기본소득제의 전면적인 도입을 통해 미래를 선취해야 한다.

 

<출처 : 2013년 10월 8일자 프레시안>

 

이 태 경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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