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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집값 못 잡는" 문재인 정부를 위한 변명

작성자 : 토지+자유연구소 (59.7.226.***)

조회 : 2,434 / 등록일 : 20-08-26 23:58

 

 

 

"집값 못 잡는" 문재인 정부를 위한 변명

부동산 대책 잇따라 발표하는 데도... 문재인 정부, 왜 집값 잡지 못하는 걸까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지율이 수직으로 곤두박질한 적이 두 번 있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압승 직후와 올 총선 대승 이후다. 두 번에 걸친 지지율 폭락의 낙폭과 속도를 보고 있자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방선거 압승 직후 80%를 훌쩍 넘던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지지율이 50%대로 주저앉는 데는 여름이면 족했고, 총선 대승 이후 70%를 웃돌던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데에는 석 달 남짓이 소요됐으니 말이다. 두 차례에 걸친 지지율 급락의 원인은 단연 '집값 급등'이었다. 집값 급등은 여타 악재와는 차원이 다른 메가톤급 충격을 문재인 정부에 안겨줬다.

 

여기에서 질문을 던지자. 집값 급등이 문재인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뿌리째 뒤흔들 만큼 강력한 악재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왜 집값을 못 잡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다섯 차례(2017년 8.2대책, 2018년 9.13대책, 2019년 12.16, 2020년 6.17대책, 7.10대책)에 걸친 강력한 부동산 대책들을 문재인 정부가 던지는데도 서울 불패 신화가 이어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역대 최저금리가 지닌 가공할 위력

 

가장 먼저 꼽아야 할 원인은 역대 가장 낮은 금리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지난 12년 동안 기준금리가 얼마나 급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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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도표를 보면 지난 12년 동안 기준금리가 얼마나 급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변동추이   ⓒ 한국은행

 

지난 2008년 8월 5.25%이던 기준금리는 현재 0.5%로 12년 새 10분의 1토막이 났다. 믿기 힘들 정도의 낙폭이다.

 

이런 '초저금리'는 시장참여자들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돈을 빌리는데 드는 이자 비용이 낮아져 대출을 일으키는 데 따르는 부담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금이나 현금성 예금의 가치가 과거보다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금리가 실효 하한 수준까지 도달했고, 코로나 쇼크로 당분간 금리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일 때 시장참여자들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예금을 종잣돈으로 하고 대출을 지렛대로 삼아 예·적금을 제외한 투자 대상을 열심히 찾기 마련이다. 세상에 투자할 상품들은 많지만, 대부분 시장참여자가 일반적으로 접근하는 투자대상은 채권·주식·부동산 정도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불패 신화가 강고한 데다, 부동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채권이나 주식보다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 대책들을 내놓는다고 해도, 시중의 부동자금이 끊임없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 목격되는 것이다.

 

금리가 낮아지고 그 결과 시중에 돈이 넘치는 현상은 다음과 같은 몇몇 지표들에서도 확인이 된다. 통상 통화량으로 활용되는 M2(정기 예·적금, 펀드 등 광의통화-편집자 주)가 2014년에 2000조 원이었는데 올해 3000조 원을 돌파했으며, 올 2분기 가계신용 중 판매신용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은 1545조7천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역대 최대 기록이고, 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역대 최고인 873조 원으로 집계됐다. 참고로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08년 5월 가계대출 잔액은 489조 6243억 원, 2014년 1월 가계대출 잔액은 685조2000억원(그중 주택담보대출이 418조 원)에 불과했다.

 

각설하고 실효 하한까지 내려온 초저금리와 시중에 넘치는 과잉유동성이야말로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는 걸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보다 '악화된' 언론 환경 

 

참여정부 때 보다 한결 악화된 언론 환경도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효과적으로 잡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참여정부 당시에도 종이신문 등 레거시(legacy) 미디어들은 정부 부동산 정책을 줄기차게 비판하고(대표적인 게 '세금폭탄론'과 '공급부족론'이다), 투기심리를 시장참여자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레거시 미디어들의 여론조작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참여정부 당시 정부 부동산 대책의 효과를 반감시켰고, 참여정부가 끝난 후에는 '참여정부는 부동산에 실패한 정부'라는 낙인을 찍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 보면 참여정부 때 미디어 환경은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은 종이신문과 종편 등의 레거시 미디어에 더해 인터넷 포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각종 뉴미디어가 시장참여자들을 잠재적인 부동산 투기꾼으로 만들고 있다.

 

레거시미디어와 뉴미디어는 부동산 관련 각종 통계와 정보, 프레임(예컨대 서울 새 아파트 부족론, 똘똘한 1채론, 비규제지역 투자론, '영끌'론 등), 투기기법(예컨대 갭 투기 방법 및 임대사업자, 법인, 신탁, 증여 등을 통한 투기와 탈세 방법 소개 등), 투자대상(이른바 투기원정대가 공략할 위치와 규모와 가격대 아파트 소개)의 생성, 유통, 소비 체인을 사이좋게 분점하면서 시장참여자들을 투기 세계로 초대한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시장참여자들 눈과 귀를 사실상 장악하는 마당이니, 시장참여자들이 '내일이면 늦으리'를 외치며 시장에 계속 뛰어드는 건 당연지사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에 세뇌된 시장참여자들의 부동산 구매가 시장을 달아오르게 만들면, 과열된 시장을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열심히 보도한다. 이런 보도는 시장참여자들의 투심(投心)을 재차 자극하며 부동산 구매를 재촉한다. 이렇게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합작해 세운 영겁회귀와도 같은 부동산 투기의 물레방아는 오늘도 돌고 있다.

 

참여정부는 기존 미디어만 상대하면 됐지만,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당시에도 부동산 스타 강사는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레거시 미디어밖에 없어서 스타 강사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부동산 스타 강사는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완벽한 공조 속에 자신만의 부동산 투기 월드를 만들어 교주 행세를 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레거시 미디어만 상대하면 족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레거시 미디어에 더해 뉴미디어도 상대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흔히 자기 생각이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자기만의 생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내 생각은 실상은 권위 있는 누군가의 판단이거나 의지할 만한 레퍼런스 의견이다. 피 같은 돈을 투자하는 투자의 세계는 더욱더 그렇다. 한국사회 비극은 시장참여자들의 투자에 관한 생각을 사실상 지배하는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절대다수 이상이 부동산 불로소득을 예찬하고, 부동산 투기를 권장한다는 데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대책들은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협공 아래 대책 효과가 훼손되거나 침해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타이밍이나 촘촘함, 강도 등의 면에서 비판받을 대목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처럼 경제 사이즈가 크고 다원화됐으며 복잡한 나라에서 집값 안정에 실패한 책임을 전적으로 정권에게 귀속시키는 건 부당할 뿐 아니라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통화정책을 긴축기조로 전환할 여건이 됐고, 미디어 환경이 지금처럼 적대적이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는 분명 진즉에 집값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동산 정책에 관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건 좋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정확히 비판해야 정부도 아파하지 않겠는가?

 

 

<오마이뉴스 2020년 8월 26일> "집값 못 잡는" 문재인 정부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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