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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업] 토지특권 방치한 복지국가는 허상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97 / 등록일 : 20-02-05 13:55

사회민주주의센터 공동대표인 정승일 박사가, 한국의 진보 개혁 세력이 근본적인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면서, 공정국가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고 북유럽의 스웨덴ㆍ핀란드식의 복지국가를 푯대로 삼아야 한다는 격정어린 글을 발표하였다.

 

"특권과 특혜의 철폐", "정의와 공정ㆍ공평의 회복"을 주창하는 공정국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나을 수밖에 없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극복할 수 없고, 평등 없는 자유, 즉 대다수 개인에 있어 실질적 부자유와 실질적 불평등"이 초래될 것이 너무 자명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복지국가로 가는 방법은 노동조합과 노동권의 힘을 대폭 강화시켜 노동조합의 임금교섭력을 제고하고, 주주자본주의를 억압하는 동시에 기업의 왕성한 투자를 견인하여 좋은 일자리를 만들며, 또한 이 두 과정을 통해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고, 지금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거둬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의료불안, 교육불안, 노후불안, 주거불안, 일자리불안 등을 해결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필자는 2010년 10월 말에 『공정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모델』(개마고원)이란 책을 우리 사회에 제출한 바 있다. 정 박사가 말하는 공정국가와 필자의 그것과는 다른 면이 있지만,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대안 모델을 둘러싼 중요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 필자의 공정국가가 복지국가가 바라는 것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논증하려 한다.

 

문제는 자본주의 생산체제 극복

 

정 박사의 공정국가에 대한 비판의 요체는, 공정국가가 최장집 교수가 말하는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기반으로서의 경제 체제를 끊임없이 민주화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정국가는 공정한 시장 질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데, 문제는 시장이 "더 공정해질수록, 즉 더 완전경쟁 시장 모델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불평등해지고 승자와 패자의 빈부격차의 심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공정한 '경쟁적 시장질서'가 관철되더라도 공정국가는 자본주의적 착취도, 노사 대립 심화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정국가가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려면 복지국가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공정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에 대한 정의다. 하지만 정 박사가 말했듯이 공정성은 추상적인 말이다. 공정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공정국가가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시장체제 안에서만 합리성을 추구할 것인지가 드러난다.

 

그런데 공정성을 제대로 정의하게 되면 공정국가가 자본주의 시장체제 자체에도 공정성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구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그래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과 기업 내부의 반칙과 특권을 제거하는 내용까지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공정성이란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공정성'(fairness)이란 무엇인가?

 

정승일 박사의 글을 읽어보면 정 박사는 공정성을 "반칙 없는 경쟁과정"이라고 정의하는 듯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기업 노동과 중소기업 노동의 불합리한 임금격차가 바로 반칙이고 공정국가는 바로 여기에만 집중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 박사가 간과한 공정성의 또 다른 면은 '평등한 출발'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경쟁이 진정으로 공정하려면 평등한 출발은 필수적이다. 출발 조건은 매우 불평등한데, 경쟁 과정에 반칙이 없다고 해서 게임 결과에 모든 사람이 승복할 수 있을까? 불평등한 출발을 용인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기는 반칙이 없다고 해도 결과가 바뀔 확률은 지극히 낮다. 불평등한 출발 그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다.

 

그렇다. 공정성은 '평등한 출발'과 '반칙 없는 경쟁과정'의 합으로 정의해야 한다. 그러면 추상의 사다리를 좀 더 타고 내려와서 공정성에 부합하는 손에 잡히는 원칙을 도출해보자. 공정성의 원리가 대한민국의 대안 국가모델이 되려면 그 원리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원칙이 필요하고, 그 원칙은 국가가 시장과 사회 각 부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까지 보여줘야 한다.

 

공정국가의 3원칙

 

필자는 공정국가의 원칙으로 핵심원칙 두 가지와 거기에서 도출되는 파생원칙 하나를 제시한다. 두 개의 핵심원칙 중 첫 번째는 평등한 출발을 '지속적'으로 구현한다는 의미의 '기회균등의 원칙'이고, 또 다른 핵심 원칙은 반칙 없는 경쟁과정이라는 의미의 '자유경쟁의 원칙'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핵심 원칙에서 파생되는 원칙은 '불로소득 환수의 원칙'이다. 불로소득은 그 자체가 경쟁과정의 반칙일 뿐만 아니라, 이것을 소수가 독차지하게 되면 출발 자체가 불평등해진다.

 

그런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원칙들은 한 국가가 마땅히 갖춰야 할 제도의 원칙이기도 하다. 기회균등의 원칙은 사회(복지)제도의 원칙에, 자유경쟁의 원칙은 경제제도의 원칙에, 불로소득 환수의 원칙은 조세제도의 원칙으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 이 3원칙의 목표는 '공정성 구현'이다. 기회가 고르게 보장되어야, 다른 사람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경쟁이어야, 불로소득이 없어야 공정할 수 있고, 그래야 안정성과 역동성이 입을 맞추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공정국가는 조세제도, 경제제도, 사회제도에 공정성의 정신이 스며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건드리는 공정국가의 조세제도

 

정 박사가 제시한 복지국가는 노동권을 강화하고 대폭적 증세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체제의 본질적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는데 반하여, 공정국가는 자본주의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토지사유제 극복을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기획을 담고 있다. 공정국가는 토지사유제 자체가 출발을 불평등하게 만들고 경쟁과정을 반칙으로 얼룩지게 만드는 반칙 중의 반칙이고 특권 중의 특권이라고 보는 것이다.

 

불로소득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불로소득과 그렇지 않은 불로소득. 그런데 보다 우선적이고 근본적으로 환수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불로소득인데, 여기에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토지 불로소득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토지는 주어졌고 재생산이 불가능하다. 또한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생산과 생활의 기반이다. 그에 반해 일반물자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재생산이 가능하며 그것이 없으면 불편할 따름이다.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한 사람의 소유는 필연적으로 타인을 배제할 수밖에 없음을, 다른 말로 하면 피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특권임을 뜻한다.

 

게다가 토지가치가 발생하고 상승하는 것은 토지소유자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의 노력에 기인하는 것임으로 다른 사람의 사용을 배제한 토지소유자는 사용하는 토지의 가치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위와 같은 토지 불로소득을, 즉 토지소유자가 누리는 특권이익을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왔듯이 토지투기가 주기적으로 일어나 금융기관을 불안하게 만들고, 토지를 가진 사람(기업)과 못 가진 사람(기업)간의 격차를 벌이며,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자금을 비생산적인 토지투기로 몰려가게 만들고, 지금처럼 대다수의 국민들을 주거불안에 떨게 만들며, 토지거품이 생겼다 꺼지면서 경제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기까지 한다.

 

이런 토지특권이 만들어낸 경제위기는 정 박사가 모델로 제시하는 스웨덴(1989~1991년)에서도 일어났고, 불과 얼마 전에 미국에서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루소와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공정국가

 

정 박사가 지적한 것처럼 루소나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사유재산권, 그 중에 특히 토지소유권 그 자체가 반칙과 특권의 원천이라고 보는데, 공정국가도 같은 입장이다. 마르크스는 영국의 토지사유화 과정인 인클로저 운동을 "시초축적 과정"이라고 명명(命名)하고, 시초축적이 경제학에서 하는 역할은 원죄(原罪, original sin)가 신학에서 하는 역할과 거의 동일하다고 평가하였다. 신학에서 원죄가 갖는 위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적어도 기독교에서 원죄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토지사유화 과정은 '경제적 과정'이 아니라 '수탈적 과정'이고, 그것이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의 근원'인 것이다.

 

루소 역시 그의 예리한 필력으로 <인간불평등기원>이 바로 토지의 사유화임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누군가 땅에 울타리를 친 다음 '이건 내 땅'이라고 말하고 또 주위사람들도 순진하게 그 사람의 말을 믿었을 때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울타리의 말뚝을 빼고 경계를 이루는 도랑을 메우고는 '이런 불한당의 말에 조심하십시오. 땅의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지만 땅 자체는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점을 잊으면 우리는 망합니다.'라고 이웃사람들에게 외치는 자가 있었다면 역사상 무수한 범죄와 전쟁과 살육과 공포와 불행에서 인류를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루소 저ㆍ최현 역. 1995.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집문당. 75쪽)

 

그렇다. 공정국가는 조세제도를 통해서 위와 같은 토지사유제, 즉 토지특권에 메스를 들이댄다. 토지특권을 제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토지를 완전히 몰수해서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 필자는 이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매년 각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land rent)에서 현재 지가의 이자를 공제한 나머지만을 환수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현재 지가는 고정되면서 토지 불로소득은 완전히 환수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토지특권이 루소가 활동했었던 산업화 개막 시기와 마르크스가 암중모색했었던 산업화가 한창인 시기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서도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의 근인(根因)이라는 점이다. 현대 사회 문제의 모든 문제가 토지특권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문제의 뿌리에는 토지특권이 도사리고 있음을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정국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불로소득도 적절한 환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의 능력은 사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또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이 매우 크다. 전자를 자연적 운이라고 하고 후자를 사회적 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문제는 그런 운이 도덕적으로 '임의적(arbitrary)'이라는 데에 있다. 개인의 선택과 무관한 운이 개인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따라서 공정국가는 이런 운에 의한 소득을 일종의 특권이익이라고 보고 이것도 적절히 환수해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공정국가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누진적 증세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노동권을 강화하는 공정국가

 

그런데 이렇게 조세제도를 개혁하면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위상은 크게 높아져서,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노동권 강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지고 노동소득분배율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토지특권을 제거하면, 특 토지사유제를 극복하면 "노동과 자본 간의 관계가 완전히 변화하며 공업생산이건 농업생산이건 간에 자본제적 생산형태로부터 이탈하게 된다."(Marx, Karl 저ㆍ김태호 역 2002. "토지 국유화에 관하여."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4권』. 박종철출판사. pp. 155-156)라고 했다. 토지특권 제거가 노동자의 위상을 얼마나 높일지는 확언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토지사유제가 노동자에게는 매우 불리하고 자본가에게는 매우 유리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노동자의 위상은 크게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다가 공정국가는 '자유경쟁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하여 중소기업에 대한 재벌 및 대기업의 착취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노동과 중소기업 노동의 불합리한 격차를 시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면 노동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개혁을 통해 나쁜 일자리는 줄고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정국가는 노동권을 억누르는 토지특권을 비롯한 각종 구조화된 반칙을 제거하여 자본에 대한 노동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국가의 복지강화

 

또한 공정국가의 사회복지제도의 원칙은 '기회균등'인데, 이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고르게 배분하기 위한 것을 뜻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면 토지특권 이익과 운에 의한 불로소득을 재원으로 삼아서 누구나 타고난 재능을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아플 때 저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해주며, 실업 시에 충분한 실업급여와 직업재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노후의 안정적 삶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정국가는 복지국가가 목표로 하는 바, 즉 양질의 일자리 제공, 교육불안ㆍ의료불안ㆍ노후불안 해소까지 나아가는데, 여기서 하나 첨언할 것은 위와 같은 복지강화를 위한 재원 마련 자체가 복지의 필요를 현저하게 줄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의 복지수요가 급증한 이유가 구조화된 반칙과 특권 때문이었는데, 공정국가는 원인을 제거하기 때문에 복지수요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복지국가를 보완하는 공정국가

 

그리고 공정국가는 조세 부문에 있어서 복지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다. 복지국가의 소득세나 법인세를 중심으로 한 엄청난 증세보다 경제에 도움을 주는 세금, 즉 (토지를 포함한) 특권이익이라는 불로소득을 우선적으로 환수하고, 그 다음으로 운에 의한 특권이익을 적절히 환수하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소득세나 법인세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거둬서 복지지출을 대폭 늘리면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으나, 소득세와 법인세의 대폭적 강화 자체가 초래하는 경제적 손실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서 토지특권을 포함한 각종 특권이익에 대한 과세는 형평성을 높이면서 경제를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즉, 세금을 거두는 자체가 복지의 필요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정국가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에 부담을 덜어 줄 뿐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조세제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서 사회제도의 필요성을 줄여주는 경제제도, 시장을 역동적이게 만들뿐만 아니라 사회를 안정시키는 사회복지제도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고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복지국가와 공정국가의 즐거운 만남을 위하여

 

정 박사가 말했듯이 "꿈과 이상(理想), 미래 비전의 집약체가" 바로 이념이다. 현재가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이념의 빈곤"이라는 지적은 정확하다. 현재 위기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앞으로 10년 내에 그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이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필자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동의하고 있는 상식에서 찾자고 말하고 싶다. 좋은 이념은 굉장히 고상하고 학자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맑은 양심을 가진 사람이 라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개념 속에 있다고 본다. 필자는 그것이 바로 '공정성'이고 그 정신을 시장과 사회 전체에 스며들게 하겠다는 공정국가가 정 박사가 말하는 복지국가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역동적 시장ㆍ안정된 사회'는 복지국가든, 공정국가든 모두가 지향하는 바다. 복지국가 역시 반칙과 특권에 반대한다. 물론 방법적인 측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공정국가가 반칙과 특권 제거라는 잣대를 자본주의 생산체제 자체에도 들이댄다는 것과 그것이 어떤 긍정적 결과를 낫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한다면, 복지국가와 공정국가는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출처 : 2013년 6월 21일자 프레시안>

 

남 기 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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