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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부동산 경기 살리나 강남 부자 살리나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699 / 등록일 : 20-02-05 21:03

국토교통부가 2월1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부동산 시장 활성화 방안’은 철저히 ‘재건축’에 방점이 찍혀 있다. 먼저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경우 이에 따른 수익 중 일부를 징수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연내 폐지하기로 했다. 재건축하는 전체 가구 수 중 20% 이상을 60㎡(약 18평) 이하 주택으로 짓게 하는 ‘소형 주택 의무공급 비율’도 완화할 계획이다. 또한 지금은 주택 2~3채를 보유한 사람도 재건축 이후에는 한 채만 분양받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사실상 폐지된다. 즉, 주택 3채를 가진 조합원은 재건축 이후에도 3채까지 분양받을 수 있다. 그리고 수도권 민간 택지 내 주택에 대한 전매 제한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축소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런 재건축 규제 완화가 겨냥하는 정책 효과는 대략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부동산 투기의 도화선 구실을 하는 서울 강남 지역의 재건축 경기를 살려 부동산 투자 심리를 조장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을 통해 강남 땅부자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안겨주겠다는 의도가 비친다. 이에 더해 국토부는 지난달 이미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물 총면적의 비율. 용적률이 높을수록 건물 역시 높게 지어 사업성을 개선할 수 있다)’을 높이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의 부활은 이뤄질 가능성이 낮을 뿐 아니라 설사 실현된다 해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너무 크다. 더욱이 강남 부자들이 다시 부동산에서 엄청난 규모의 부를 전유하도록 국가가 돕는다는 발상은 정의롭지 않다.

 

물론 지금 답보 상태인 재건축 단지들에서 다시 사업이 추진되도록 정부가 지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정책 수단은 신중히 채택해야 한다. 예컨대 이번 방안에서 ‘소형 주택 의무공급 비율제’ ‘전매 제한 기간’ ‘용적률 제한’ 등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에는 일부 타당성이 있다. 사실 이런 규제 장치들의 경우, 개발이익의 환수 및 투기 억제 기능이 약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항목이다.

 

그러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는 사정이 다르다. 이 제도는 부동산 소유자 자신의 노력 없이 철저히 외부 요인에 따라 형성된 불로소득(재건축에 따른 집값 폭등)이 재건축 조합원들에게 독식되는 것을 제어하는 장치다. 따라서 꽤 강력한 투기 억제 기능도 있다. 설사 정부가 지금의 시장 상황에서 투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는 고유의 정책 목표가 있기 때문에 폐지해서는 안 된다. 그 정책 목표란, 정부가 공적 원인(개발사업, 토지이용계획 변경 등 여러 경제·사회적 요인)에 따라 조성된 부(富)의 일부를 회수해서 세수 증가, 조세형평성 제고, 낙후지역 지원 등 각종 공공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또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가 폐지될 때 최대 수혜자는 단연 강남 부자들이 될 것이다. 이 제도의 폐지로 인해 혜택을 입는 단지가 400곳이 넘는다고 하지만 땅값이 낮은 지역의 조합들은 재건축으로 인해 얻는 초과이익 역시 제한적이다. ‘부동산 114’ 등에 따르면,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방안 발표 이후 땅값이 들썩인다고 한다. 예컨대 서울 강남권의 주요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2012년 말 대비 평균 10∼30% 올랐다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강남 지역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의 경우 거품으로 인해 낙폭이 워낙 컸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가격 상승은 가능하다. 그러나 강남 재건축→강북→수도권의 순서로 주택 가격이 상승했던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은 낮다. 생산가능인구의 변화, 가계 실질소득의 감소 따위 구조적 요인들이 강남 재건축발(發) 주택가격 급등을 제약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공약 사라져

 

박근혜 정부는 출범한 이후 전임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에 목매다시피 했다. 취득세 인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제한적 양도세 면제,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손익공유형 모기지 및 정책 모기지 확대 등이 그 사례다. 이번에 나온 재건축 규제완화 조치들도 이런 배경과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전에 야심차게 공표했던 행복주택,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지분매각 방식의 하우스푸어 대책 등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주택 매매가격 떠받치기’를 통한 부동산 경기 활성화와 임대차 시장의 수급 불일치 해소다. 문제는, 이런 계획들이 성취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사실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은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경제에서나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대한민국 같은 규모와 수준의 경제 대국에서는 이미 유효하지 않다. 효과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부작용도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의 부동산 불경기에는 구조적 이유들이 있다. 생산가능인구나 경제성장률 등 거시 지표가 하락하고 있어서이다. 정부가 안간힘을 쓴다고 해서 부동산 매수세가 살아나고 매매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주택 매매가격이 유지되면 시민들이 주택 임대에서 매매로 돌아서며 임대차 시장이 안정되리라는 것도 허망한 꿈이다. 지금의 임대차 시장의  불안정 역시 구조적 변화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사라진 데다 저금리 기조로 전세 물량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집주인으로서는 저금리일수록 전세를 놓을 이유가 적어진다). 또한 이명박 정부 당시 돌발적으로 추진된 동시다발적 도심 재생사업으로 기존 주택이 대규모로 사라졌으며, 공공 임대주택 물량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부동산 매매에서 불로소득을 추구하기 어려워진 투기자금이 임대차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 요인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기껏 주택 매매가격 유지로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규정하는 거시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대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테면 유주택자보다는 무주택자, 매매시장보다는 임대차 시장에 역점을 두고, 투기 근절과 주거복지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부동산이 한국 사회 주류의 가장 주요한 물적 토대라는 점, 부동산 연관 산업이 너무나 많고 고용유발계수가 크다는 점 등이 정부의 운신 폭을 제한하겠지만, 여기에 매몰돼서는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출처 : 2014년 3월 12일자 시사in>

 

이 태 경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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