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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찬] 북에 들이치는 시장경제 바람? 중국 충칭모델이 해답!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958 / 등록일 : 20-02-05 21:05

북에 전방위로 몰아치는 시장경제 패러다임

 

북의 시장경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시장경제 패러다임이 전방위로 북의 경제체제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핵무기 개발과 경제 개발이라는 병진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경제개발을 위해 작년 11월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13개)를 지정했다. 중앙정부는 경제특구를 관할하고, 지방정부는 경제개발구를 관할하면서 외자도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이뿐 아니다. 북측은 역사상 처음으로 올해 1월 말에 협동농장의 최말단 조직책임자인 분조장만 모아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황해남도 재령군 삼지강 협동농장에서 시범 실시하여 성과를 거둔 포전(논밭)담당제를 확대 실시하려는 것이다.

 

포전담당제가 무엇일까. 북은 협동농장의 작업반(보통 50명)이 몇 개의 분조(10~25명)로 나뉘어 분조 단위로 농사를 짓는데, 이를 다시 3~5명으로 나누어 소수의 농민들에게 논과 밭을 담당하도록 하고, 생산량에 따른 분배를 실시하려는 정책이 포전담당제다.

 

북은 국유기업도 개혁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은 이미 2012년 6월 28일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한데 대하여’를 발표하고, 포전담당제 외에도 중소 규모의 공장과 기업에서 독립채산제와 월급제를 채택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측 정부는 시장경제 원리를 확대 도입하는 정책적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고, 동시에 공식적인 식량배급이 중단된 이후 시장에 기대 고된 삶을 이어나가는 주민들의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심지어 주요 언론에서는 식량은 물론이고 소득의 일부를 시장을 통해서 얻는 시장화 비율이 90% 가까이 된다는 소식도 들려주었다.

 

중국 학자 추이즈위안, 소자산계급을 옹호하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말하다

 

북측의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협동농장, 주민 등 여러 경제주체들이 시장경제에 기대 경제개발을 추진하려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경제체제 전환’이라는 개념을 적용해도 무리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력갱생’이나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주장하는 북측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러 주체들의 다양한 시장화 노력들이 어떤 일관된 정치경제 철학이나 패러다임에 기반하고 있지 않으며 각개약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북측이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식의 새로운’이라는 그 내용과 방향을 알 수 없는 수식어를 붙인 것 같다.

 

북한의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눈에 들어온 책은 추이즈위안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경험을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라는 서구식 이론틀로 제시하였다. 프티부르주아(petit bourgeoisie)라는 말은 원래 18세기와 19세기 초기의 한 사회 계급을 가리키던 프랑스어로, 현재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중간 계급을 의미한다(위키백과). 추이즈위안은 이 책에서 중국의 노동자와 농민이 소자산계급에 올라가야만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샤오캉’(小康) 사회, 즉 중국사람 대다수가 부유하지는 않지만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는 북측도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가 아닌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경제모델은?

 

중국의 노동자와 농민이 소자산계급으로 올라가 사회 전체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추이즈위안의 방법론이 눈길을 끈다. 그는 책에서 충칭모델을 언급하며, 이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첫째, 국유자산과 민간의 부를 동시에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했으며, 둘째, 농촌의 택지개발권(저자는 이를 지표[地標]로 표현)을 도시의 토지사용 희망자(가령, 건설업체)에게 팔수 있도록 하여 도시와 농촌이 통합적으로 발전하는 전략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첫째 전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중국에서는 도시 토지가 모두 국유이다. 민간 건설업체가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토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처럼 토지소유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토지사용권을 정부로부터 구매하여 확보한다. 따라서 각 지방정부가 건설용 토지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방정부가 국유토지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을 경우, 토지사용권을 민간 건설업체에게 양도하면서 이들로부터 토지사용권에 대한 대가를 받기 때문에 재정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 지방정부의 재정수입 중에서 토지사용권 양도에서 발생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이를 토지재정이라고도 부른다. 지방정부는 토지재정으로 사회기반시설을 공급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토지사용권 매커니즘이다. 그런데 충칭시는 독특하게도 토지재정으로 사회적 배당 차원에서 소규모 기업인들에게 자본금으로 지원하고, 무주택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 심지어 다른 도시가 법인세를 평균 33%를 부과할 때 충칭시는 이보다 낮은 15% 수준으로 부과함으로써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도록 하고 있다.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반복되면서 민간영역의 경제성장은 다시금 토지가치를 상승시키고 토지사용권 양도 수입을 증가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국유자산의 가치 상승과 민간영역의 부의 증가가 동시에 진행된다.

 

둘째 전략의 경우, 우선 중국은 식량자급을 중시하기 때문에 전체 농지면적이 18억 무(畝) 이하로 줄어들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따라서 각 지방정부는 할당된 일정 면적의 농지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성장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게 되었고 도시 주변부의 농지가 도시용도로 전환하게 되면서 지방정부는 농지보호와 경제성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충칭시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최초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농촌 택지개발권 거래, 즉 지표거래다. 도시 주변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용하지 않는 농민의 주택용지와 그 부속시설 용지, 향진기업 용지, 농촌 공공시설 용지 등 농촌의 건설용지를 농경지로 복원하면서 생기는 농지면적 만큼 해당 농촌마을에게 농촌 택지개발권을 부여하고, 원거리의 농촌마을은 이 개발권을 토지거래소를 통해 도시의 토지사용 희망자와 거래함으로써 도시와 농촌이 도시화에 따른 토지가치 상승의 열매를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두 전략을 종합하면, 충칭시는 농촌 택지개발권 거래를 통해 농지면적 총량을 유지하면서도 개발용지를 새롭게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첫째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하이 푸동 경제특구의 성공실험에 근거하는 충칭모델

 

저자에 따르면, 충칭시가 이러한 실험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홍콩과 상하이 푸동 경제특구의 실험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체라는 평가를 받는 홍콩은 세율도 낮고 동시에 무상의료까지 제공할 수 있는 이유가 홍콩 정부의 공유토지에서 발생하는 토지사용권 양도수익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홍콩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에 19세기 쑨중산의 삼민주의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헨리 조지의 토지보유세 및 토지국유화 이론을 언급한다. 헨리 조지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홍콩에서 그 이론을 실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푸동 역시 비슷한 시스템이 작동했는데, 약간 어려운 개념들이 있어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토지공유제를 바탕으로 한 푸동의 개발은 주로 재정 투자에 의존하지 않고, 토지사용권을 양도함으로써 얻을 수익을 미리 예측하여, 그만큼을 푸동 신구의 4개 개발공사의 국유주 지분으로 삼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가공’의 (미리 예측된) 국유주 지분이 생기면, 개발공사는 이를 바탕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외자도 도입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개발의 첫 번째 사이클이 시작되는 것을 ‘공회전 시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단 개발이 되고 나면 토지가격이 상승하게 되고, 그에 따라 국유주도 이익을 분배받게 된다. 눈덩이 굴리기식 개발은, (토지자원을) 한 번 굴릴 때마다 한 사이클의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토지의 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익 대부분을 국유주 지분에 대한 이익 분배의 형식으로 사회화하여, 더욱 진전된 개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 168쪽)

 

저자가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푸동 경제특구의 토지사용권 양도방식은 다른 지방정부의 양도방식과 차이가 난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토지사용권을 민간에 양도할 때 토지사용 기간에 해당하는 토지사용료를 일시불로 받는다. 이런 방식을 토지출양제라고 한다. 일시에 납부하는 토지사용료는 거금이 되기 마련이다. 결국 건설업체 등 민간은 은행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일시에 납부하는 토지출양금을 ‘지가’라고 부른다. 토지출양제 방식은 막대한 부동산담보대출을 유도한다는 문제 외에도, 미래에 발생할 토지사용료를 정확하게 추정하여 한 번에 받기 어려워, 환수하지 못하는 토지사용료는 불로소득으로 민간에게 사유화된다. 중국에서 부동산투기와 거품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토지출양금이라는 지가가 형성되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당연히 폭등하게 된다.

 

반면 푸동처럼 토지사용료를 일시에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납부하는 방식을 택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토지연조제라고 한다. 토지연조제 하에서는 기업이 막대한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토지출양제가 초래하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상하이 푸동 경제특구에서 토지연조제를 실시한 법적 근거는 1999년 5월 31일 공포한 <상하이시 국유토지임대 임시판법>(上海市‘国有土地租赁暂行办法’)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조성찬의 논문, “중국 토지연조제 실험이 북한 경제특구 공공토지임대제에 주는 시사점”, 2012 참조). 당시 상하이시 경제위원회 주임으로서 푸동 경제특구 실험을 전개했으며 현재는 충칭시의 부시장으로서 충칭모델을 주도하고 있는 황치판이 푸동경험을 충실히 따랐다면 충칭의 토지사용권 양도 방식도 푸동 경제특구처럼 일시 납부가 아닌 매년 납부 방식을 적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특구가 아닌 일반 도시에서는 토지출양제를 우선적으로 적용하는 중국 토지정책의 특성상, 그리고 저자가 책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보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충칭모델이 북한 경제 변화에 시사점

 

충칭모델은 북측이 추진하는 경제특구의 토지자원 활용방식, 농지 문제, 국유기업의 역할과 민간기업과의 관계 등에 대해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특히 도시 토지나 농지와 같은 한정된 토지자원 활용방식은 경제체제 전환이나 경제활동에서 가장 기초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지방정부가 토지를 공유로 유지하면서도 토지사용권을 민간에게 양도하여 민간의 생산의욕을 자극하고 대신 정부는 토지사용료를 받아 재원으로 활용하는 충칭모델은 정부와 민간, 도시와 농촌의 상생 발전이 토지의 사용방식에 달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측과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주변국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나선경제특구에서 토지사용권과 자원개발권 및 나진항 이용권을 확보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장성택 처형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나선지구 토지사용권 헐값 매각에서 알 수 있듯이, 북은 경제특구 추진에 있어 토지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중시하고 있다. 토지 및 지하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할 경우 북의 경제가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음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 및 푸동 경제특구의 경험에 근거한 충칭모델은 북 경제체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을 견지할 때 농민과 노동자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출처 : 2014년 3월 20일자 통일뉴스>

 

조 성 찬 /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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