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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부동산 지옥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878 / 등록일 : 20-02-05 23:09

요 며칠 새 본 뉴스 가운데 내 눈길을 끈 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기존 주민들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이 아파트에 이사하는 걸 막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소식이었다. LH공사가 미분양 상태에 있는 이 아파트 52채를 분양 받아 한부모 가정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들에게 임대하자 집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기존 입주자들이 사회적 배려대상자들의 이사를 저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인데, 기사를 보는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하긴 한 아파트 단지나 주상복합 건물 안에서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대우는 이제 신기한 일도 아니다.

 

얼마 전에는 수도권 도처에서 건설사들이 미분양에 허덕이다 분양가 이하로 아파트를 매각하자 제 분양가를 내고 아파트를 매입한 기존 입주자들이 분양가 이하로 아파트를 매입한 신규 입주자들의 이사를 실력으로 저지하고, 몰래 이사하는 걸 막기 위해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는가 하면, 방어선을 뚫고 용케 입주한 집 밑에 몰려가 악다구니를 퍼붓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방송되기도 했다. 기존 입주자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소중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했다. 최저임금(1,399만 4,640원)으로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도 22년 5개월이 걸린다는 보도도 있다.

 

이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부동산 때문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사회, 부동산 부자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다른 사람들이 피땀흘려 생산한 가치들을 펌프질 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회, 재벌들이 제품의 질이나 디자인, 마케팅에 집중하기 보다 땅 투기에 혈안이 된 사회,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이 부동산 임대업자인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 리 없다. 그런 사회는 지옥의 다른 이름이다. 부동산 문제는 취업, 결혼, 육아, 교육, 소비, 노후 등 개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전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래 전 영국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나왔듯이 한국사회에서는 부동산이 사람을 삼키고 있다.

 

이건 사람의 삶이 아니다.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한국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고, 개인들의 행복도 담보될 수 없다. 부동산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시기의 부동산 철학과 정책패키지를 발전적으로 지양한다면 부동산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부 이래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경로의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듯도 보인다. 부동산 연관 산업이 지나치게 크고, 부동산 연관 산업에 종사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너무 많으며, 부동산이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분명한 건 부동산 문제의 해악과 폐해에 대한 계몽과 선전이 부동산에 삶 대부분을 건 시민들 앞에는 완전히 무력하다는 사실이다. 부동산에 삶을 저당 잡힌 시민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시민들로 하여금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단념하고 좋은 부동산 철학과 정책을 지지하도록 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그것이다.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 같은 것이 그 반대급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 혹은 메가딜(Mega Deal)인 셈이다. 모름지기 정치가라면 이런 수준의 담대한 제안을 사회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누가 그런 정치가가 될 것인가?

 

<출처 : 2014년 7월 14일자 허핑턴포스트(http://goo.gl/4igG4E)>

 

이 태 경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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