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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투기 권하는 정부, 가계부채는 어쩌려고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2,090 / 등록일 : 20-02-05 23:21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가계소득을 높여 경기를 부양한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3개월여 지난 현재 시점에서 초이노믹스(최경환식 경기 부양책)를 돌이켜보면 ‘가계소득 높이기’는 허황된 슬로건이었을 뿐이다. 최 부총리에게 진정성이 있었다면, 초이노믹스에는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높이는 방안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대책들은 없다. 그나마 가계소득 증대를 위한 방안이라고 내놓은 세제 개혁안(기업소득 환류세제,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역시 부유층이나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만 유리한 정책이다(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 ‘빛 좋은 개살구’일세 기사 참조). 더욱이 초이노믹스는 터무니없이 위험하기까지 하다. 부동산 투기를 사실상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기실 초이노믹스의 핵심은 부동산 투기를 통한 경기 부양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권들이 만들어놓은 ‘부동산 시장 정상화 조치’의 틀을 허물었다면, 이에 화룡점정을 한 사람은 최경환 부총리다. 가장 결정적인 조치는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다. 부동산 대출 규제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있다. LTV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을 때 해당 주택 가치의 일정 비율까지만 대출할 수 있는 제도다. 주택 가치가 1억원일 때 LTV가 60%라면 6000만원 이상은 대출할 수 없다는 의미다. DTI는 돈을 대출받은 뒤 매년 상환해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해당 채무자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을 넘기지 못하게 제한하는 제도다. 어떤 사람의 연간 소득이 5000만원인데 DTI가 40%라면, 그는 연간 상환금이 2000만원을 넘기지 않을 정도로만 대출받을 수 있다. 두 제도의 목표는, 시민들이 지나친 규모로 돈을 빌리지 못하게 규제해서 부동산 투기로 인한 국민경제의 파탄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았던 이유 역시 두 제도 덕분으로 알려졌다.

 

전·월세 대책 없이 집값 상승에 목매는 정부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7월 취임하자마자 대체로 50~60%였던 LTV를 70%로 높이고, DTI도 60%(이전엔 서울 50%, 인천·경기 60%)로 완화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자 지난 9월1일에는 재건축을 대폭 용이하게 만들고(‘재건축 가능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 ‘재개발 시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 완화’ 등), 주택 청약제도 역시 유주택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편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주택 청약제도는 당초 집 없는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 기회를 주기 위한 취지로 설계되었다. 이제 유주택자도 무주택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청약 경쟁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분양받은 주택을 일정 기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해서 투기를 막던 ‘전매제한 기간’도 2~8년에서 1~6년으로 단축했다.

 

한마디로 초이노믹스의 부동산 대책에 담긴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빚을 더 많이 더 쉽게 낼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재건축 규제 완화 등으로 더 많은 부동산 불로소득도 보장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동산에 돈 좀 쓰세요!’

 

이처럼 초이노믹스에는 집값 상승 및 유지 대책이 존재할 뿐이다. 중산층 및 서민들을 극심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전·월세 안정 대책은 없다.

 

지금까지의 정책으로 보면, 최경환 부총리는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주택 수요와 거래량도 많아지는 상황이 가능하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의 한국 부동산 시장은 그랬다. 그러나 이를 ‘정상적 시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오류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물건 값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들고 거래량도 하락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과 거래량이 함께 상승했던 예전의 부동산 시장이야말로 ‘비정상’이었던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가 정말 가계소득 높이기로 내수를 진작시키고 싶었다면, 그는 방향을 대단히 잘못 잡았다. 내수 진작의 수단으로 하필 부동산 경기 부양을 선택했다는 점이 그렇다. 집값이 오른다고 흥겨운 기분으로 소비를 늘릴 만한(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 시민이 얼마나 될까?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해도 문제다. 돈 풀고 각종 규제를 완화한 탓에 주택 가격이 오르고 투기 붐이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택 및 건설 연관 산업들이 기력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자산(주택) 가치의 상승으로 부유해진(?) 집주인들이 어느 정도 소비를 늘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경제 전반이 침체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부동산 거품은 머지않아 꺼지기 마련이다. 그 부작용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명백히 알 수 있다.

 

현재까지의 추이를 보면, 부동산 시장이 최경환 경제팀의 기대처럼 움직이지는 않고 있다. 10월16일 한국감정원의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10월13일 기준)’에 따르면, 매매 가격은 16주 연속, 전세 가격은 23주 연속 상승했다. 다만 매매 가격 상승 폭은 매우 미미하다. 그나마의 매매 가격 상승도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의 투기적 거래에 힘입은 바 크다. 거래량도 소강상태다. 반면 전세 가격은 치솟고 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 가격이 아파트 매매 가격의 70%(전세가율)를 웃돌아 2001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면, 시민들이 전세보다 주택 매입을 선호하게 되고, 이렇게 전세 수요가 줄면서 전세 가격 역시 내릴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이른바 초이노믹스가 부동산 시장에서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15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신제윤 금융위원장에 따르면, LTV와 DTI 완화 이후 약 2개월 동안 가계대출이 11조원이나 급증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8조3000억원이다. 폭증하는 주택담보대출이 주택 구입보다 생활비 및 채무 변제에 사용되는 현상도 대거 발견된다. 가계부채는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1040조원을 기록했으며 계속 증가 중이다.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부채 주도 성장’을 기획했던 이른바 초이노믹스의 결과다. 

 

<출처 : 시사인 372호(http://goo.gl/vOBB7z)>

 

이 태 경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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