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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피케티 열풍의 소멸 : 성장 지상주의에 가려 서민경제 피폐, 한국사회 불평등 문제 수십 년간 외면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711 / 등록일 : 20-02-06 15:31

작년 4월 ‘21세기 자본’ 영어판이 출간되자마자 수십만 권이 팔리면서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피케티 열풍은 곧바로 한국에도 상륙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이 피케티의 책을 앞다투어 다뤘고, 불평등 문제에 무관심했던 한국 경제학계도 뜨거운 관심을 표명했다. 피케티 이론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곳곳에서 개최되었고 관련 논문과 저서들도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의 피케티 열풍은 작년 9월 그의 방한에 즈음해 절정에 달했다. 첫 방한 행사였던 ‘1% 대 99% 대토론회: 피케티와의 대화’ 행사장에는 유명 경제학자, 경제관료, 금융계 유력인사, 정치인이 참석하여 그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고, 연세대에서 열린 대중 강연회에는 900석이 넘는 강연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청중이 몰려들었다. 야당은 피케티 열풍을 활용하여 정부`여당의 세제개편안과 2015년도 예산안이 ‘부자감세, 서민증세’를 꾀하고 있다고 공세를 가했고, 이에 발맞추어 야당 의원들은 자발적으로 피케티 배우기에 열을 올렸다.

 

열풍은 태풍으로 발전할 기세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피케티가 한국을 떠난 후 갑자기 열풍이 소멸해버린 것이다. 피케티 관련 기사는 언론에서 종적을 감췄고, 피케티에 대한 찬반 논평에 열을 올리던 경제학자와 정치인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피케티는 새해 들어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을 거부하고, 미국 보수 경제학계의 대표격인 맨큐와 논쟁을 벌이면서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이번 뉴스는 일과성 가십거리의 색깔이 짙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는 성장지상주의와 낙수효과론에 매몰되어 불평등 문제를 철저히 외면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률만 높이면, 대기업의 이익과 부유층의 소득만 증대시키면 서민과 중산층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져 모두가 잘살게 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했다. 작금의 한국 현실은 어떠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사이에,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불평등과 불균형이 심화되어 이런 사고방식이 근거가 없음을 드러낸다. 역설적이게도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것은 성장지상주의와 낙수효과론과 정반대로 진행된 경제현실의 방증이다.

 

한국 사회는 불평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피케티 이론을 천둥과 같은 경고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 국민소득에 비해 자산이 지속적으로 커졌고, 그 때문에 노동소득에 비해 자산소득의 비중이 점점 커졌으며, 이런 경향은 21세기 말까지 지속될 것이다.

 

또 상위계층이 차지하는 소득과 자산의 비중도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대했으며 그 경향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자산소득의 비중이 커지면서 상위계층에게 소득과 자산이 집중되는 현상은 한마디로 ‘불평등의 확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현대자본주의는 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피케티의 결론이다.

 

정책으로 불평등 확대를 억제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피케티의 정책 대안은 누진 소득세와 누진 상속세를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자산 소유자에게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부유층에게 소득과 자산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피케티 이론을 참고하여 한국 통계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다른 선진국에서 드러나는 불평등 확대 경향이 한국에서도 동일하게(아니, 더 심하게) 나타난다. 국민소득 대비 자산의 비율은 매우 높고, 상위계층에의 소득집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피케티 이론에 가장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할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물론 피케티 이론에 허점도 있다. 노력소득과 불로소득을 구분하지 않고, 토지와 토지가치를 무시하며 통계에 정확히 부합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불평등의 확대가 현대자본주의의 거역할 수 없는 경향이고 그것을 제대로 제어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미래가 어둡다는 그의 주장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천둥 같은 경고가 울려 퍼질 때 성숙한 사회는 성찰해서 잘못을 시정하려고 노력한다. 피케티 열풍의 소멸이 이런 성숙한 자세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우울하다.

 

<출처 : 2014년 1월 7일자 매일신문(http://goo.gl/AvFFEI)>

 

전 강 수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제금융부동산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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