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고

언론기고
이전 목록 다음

[남기업] 농업·농촌·농민에게 선포하는 희년, ‘농민기본소득’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525 / 등록일 : 20-02-06 15:31

토지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빚을 완전히 탕감해 주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희년에는 경작도 쉬어야 한다. 토지 반환, 부채 탕감, 노예해방이 다른 사람에 대한 착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한다면, 안식년과 희년의 휴경(休耕)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성경의 놀라운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와 해방으로 요약되는 희년 선포의 대상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본주의적 농업'은 자연에 대한 착취 내지는 고갈을 수반해 왔다. 자본주의적 농업은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에 기초하여 화학적 합성 물질로 만들어진 투입자재에 크게 의존하는 농업 방식, 즉 기계화·화학화·규모화로 요약되는 '공업적 농업(industrial agriculture)'인 것이다. 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공업적 농업은 결국 단일 작물 재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에 생물의 다양성은 축소되고 지력과 자연의 방제 능력은 떨어지게 되며, 그래서 결국 더 많은 비료와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석유 자원에 기초한 관행 농업에서 자연 순환에 기초한 생태환경의 소농(小農)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생태환경의 소농은 (특히 초기에) 투입 노동 대비 소득 비중이 높지 않다. 변화무쌍한 일기변화에 대처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병충해와의 싸움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최근 생태환경 농업에 대한 강조와 함께 농민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농민기본소득'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농민기본소득이 어려워서 시혜를 베푸는 '자선'이 아니라, 기여한 것에 대한 대가를 향유하는 '정의'라는 점이다. 농업이 담당하는 역할은 식량 생산을 크게 뛰어넘는다. 농업은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시키고, 홍수와 온도 및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대기를 정화하고, 토양을 보전하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정서의 함양에 도움을 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OECD는 1998년 농업 각료 회의에서 이 기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회원국이 확보해야 할 공동 목표로서 선언문까지 채택한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의 농업이 붕괴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농업이 해 왔던 홍수 조절과 수질 정화, 지하수 보전 기능은 사라질 것이고, 논과 밭에서 뿜어 냈었던 산소량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무서운 환경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 가격에는 농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와 같은 다양한 가치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농업의 다원적·공익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충남대 경제학과 박진도 교수에 따르면, 홍수 조절 효과 13조 원, 수자원 함양 및 수질 정화 4조 원, 대기 정화 및 기후순화 5조원, 토양보전 및 오염원 소화 1조 원, 경관적 가치 1조 원 등 논밭의 환경적 가치는 연간 약 24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농업의 가치를 생각하면 농민기본소득은 정당하고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농촌과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농민기본소득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과밀화는 엄청나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경제와 문화 등 거의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중앙의 주요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대처해 왔는데, 사실 이런 방법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꾀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 지방의 인구가 줄고 경제가 낙후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인은 농촌 붕괴에 있다. 농사짓는 것으로는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는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 균형 발전은 다른 무엇보다도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것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농민기본소득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을 통해 농업인구가 늘어나고 농가 소득이 증대되면 이것을 기반으로 한 각종 산업이 살아날 수 있게 되고 지역사회와 문화도 활기를 띄게 될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은 지급액과 지급 방법에 따라서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는데, 대충 필요한 예산은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농가 가구당 매월 5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2013년의 농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연 6조 8500억 원이 드는데(2013년 개인 농가 114.2만 가구), 이것은 2013년 농업 소득의 60%, 농가 소득의 17.4% 정도 되는 수입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태계의 보고인 강을 파괴하는 사업에 수십조 원의 돈을 쏟아 부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7조 원 정도는 국민 지지와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는 재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은, 농민기본소득은 '토지 정의'라는 플랫폼을 떠나서는 작동하기 힘들다는 것이다('토지 정의'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토지+자유연구소(http://landliberty.or.kr/)의 자료를 참조). 토지 정의 없는 농민기본소득은 부재지주(不在地主)문제, 위장농민 문제, 농지 투기 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지금의 토지 제도는 식량의 자급자족뿐만 아니라 생태환경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충돌하는 면이 너무도 많다. 효율적 이용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시장 경제의 장점인데, 현재의 토지 제도는 그 장점을 깎아먹는다. 농업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농지를 소유하도록 두는 반면, 농업에 관심이 있는 잠재적 귀농인들은 높은 농지 가격 때문에 진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생태환경의 가능성을 제고하고, 현재 20%을 약간 상회하는 식량 자급률을 끌어올리며, 농업에 열정 있는 청년이나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리고 무엇보다 농민기본소득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토지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 이렇듯 토지 정의는 모든 정의의 기초가 된다.

 

좀 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농민기본소득은 농가 부채에 신음하고 있는 농민에게 자유와 해방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농촌과 농업을 살리고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민기본소득은 자연에 대한 착취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도록 해 준다.

 

이제 우리는 농업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다다른 오늘날 청년들과 많은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농업은 자연에 대한 착취와 고갈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의 본래성'을 회복해야 하는데, 토지 정의와 결합된 농민기본소득이 이것의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안연히 살았더라"(열왕 4:25)라고 하는 희년의 이상이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2014년 1월 16일자 뉴스앤조이(http://goo.gl/AXZ0aI)>

 

남 기 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목록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 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 됨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SITE MAP

팀뷰어 설치파일 다운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