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고

언론기고
이전 목록 다음

[남기업] 막막한 한국 자본주의, 해법은 어디에?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958 / 등록일 : 20-02-07 17:08

'한국' 자본주의에 주목하자

 

한국 경제의 개혁 방안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운동 현장에도 깊숙이 참여해온 장하성 교수가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을 내놓은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저자의 바람은 이 책이 한국 경제의 성격과 그 개혁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논쟁이 전개되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 후 수개월 동안 저자 강연이 이어지고 신문 지상에서 책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희한하게 학문 영역에서는 조용했다. 왜 우리 학계는 토마 피케티에는 열을 올리면서 실제 우리의 문제를 규명하는 이론과 해법에 대해서는 이리도 냉담할까? 이 책의 내용이 대단치 않아서일까? 글쎄다. 한국의 자본주의를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구체적으로, 그것도 술술 읽히게 쓴 책이 또 있을까? 떠오르지 않는다. '학문적 사대주의'라는 용어가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당분간 없으니 자본주의를 고쳐 쓸 수밖에 없다는 것, 한국의 자본주의가 지나온 길과 현재의 모습은 다른 나라와 차이점이 많으니, 즉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이 있으니 이 특수한 문제들을 서구에서 건너온 이론 가지고 설명하면 안 된다는 것, 따라서 해법도 당연히 이것에 따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 고쳐 쓰기의 핵심 방향은 가계 소득 증대와 시장 규칙 바로 세우기라는 것 등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

 

이 책이 풀고자 하는 의문은 어째서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불평등 속도가 빠르고 그 내용이 더 안 좋냐는 것이다. 저자가 첫 번째로 지적한 것은 가계 소득의 비중이 줄어든 만큼 기업 소득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가계 소득의 주된 원천이 노동이므로 생산된 부를 나누는 데서 노동이 배제됐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경제 전체는 45.6% 성장했는데도 실질 임금은 23.2% 증가에 불가했다. 둘째로 질 낮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서비스업의 고용 비중이 이상하게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노동 간에 임금이 불평등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서 4번째로 최상위 10%와 최하위 10%보다 높고 그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급여는 정규직의 56%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면 이러한 한국 경제를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성격 규정은 처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시장 만능주의, 주주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기보다는 시장의 규칙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천민 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146쪽). 한국 자본주의를 주주 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서구의 시각을 즉자적으로 적용하려는 진보 좌파들의 지적 게으름의 산물이고, 한국 경제의 반칙왕인 재벌들은 오히려 진보 좌파들의 주주자본주의 비판을 자신의 지배구조 개혁 압력에 대한 방어책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주주자본주의의 특징이 한국과 무관하다는 각종 근거를 제시하고, 항간에 널리 퍼진 외국 자본의 먹튀 논란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반박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장하성 교수는 시장의 규칙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문제지 시장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권력은 시장이 아니라 재벌로 넘어간 것이다. "재벌을 집중 육성했었던 과거 권위주의 개발 방식과 관행들이 외환위기 이후에 교묘하게 시장 개혁 조치들과 맞물려서 더욱 증폭된 형태와 규모로 나타났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시각이다(99쪽). 


진단에 따른 처방


그러므로 저자가 제시한 처방은 가계 소득 증대와 시장 규칙 바로 세우기다. 먼저 가계 소득 증대를 위한 방안으로 초과 내부 유보세를 제안한다. 기업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유보한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면 임금 소득과 배당 소득의 비중이 늘고, 이것은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제안이다. 

 

두 번째는 정규직 임금의 50%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간제 노동자 보호법을, 업무가 2년 이상 필요하면 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으로, 즉 기간의 기준을 '사람 2년'에서 '일 2년'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또한 취약한 복지 확충을 위해 소득세 누진도 강화와 법인세 실효세율 강화도 제안한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통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가하는 반칙을 차단하자고 제안한다. 

 

이런 개혁 입법을 통해서 근 20년 동안 멈췄던 '소기업→중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동태적 발전 현상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기업 소득이 아니라 가계 소득 증대, 임금 소득 내부의 불평등 해소,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 근절을 통한 기업 생태계 복원으로 요약된다. 

 

한편 저자는 재벌 개혁에 오랫동안 집중해온 학자답게 반도체 회로보다 더 복잡한 재벌의 순환 출자 구조, 재벌의 지배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제시한다. 업무용 계열사 주식만을 보유하는 지주 회사 제도,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려면 100% 소유하게 하는 내부 회사 제도, 계열사에 경영권 확보의 목적으로 주식을 소유하는 경우 반드시 50%+1주의 주식 보유하는 계열사 주식 의무 매수 제도, 주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외 이사를 선출할 수 있는 집중 투표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한 논리 전개와 진단, 그리고 처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제시된 통계를 하나하나 음미하다보면 한국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겼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다가 그 처방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정치 철학(정의론)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비교했을 때 빛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지 부동산은 어디 갔지?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한국 경제와 사회를 그토록 괴롭혀왔던 토지 부동산 문제는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의 뇌관이라고 하는 가계 부채의 주 원인이기도 하고 기업의 생산 활동에 엄청난 장애를 가져올 뿐 아니라, 장하성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계의 실질 소득을 갉아먹는 토지 부동산이 이 책에 나오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실사구시 정신으로 해법을 찾는다는 이 책이 어찌 이런 허점을 보인 것일까? 아래의 칼럼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국도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재산 소득이 임금 소득보다 훨씬 더 불평등하다. 그러나 국세청의 개인 소득 총액 집계 중에서 배당·이자 등 재산 소득은 8% 미만이고, 나머지 92% 이상은 임금 소득이다. 임금 소득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임금이 지극히 불평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에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임금 불평등이다(중앙일보. 2015년 7월 9일. "임금도 불평등하고 고용도 불평등하다").

 

한마디로 말해 저자는 토지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재산 불평등이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계 소득의 주된 원천이 임금에서의 불평등이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먼저 한국의 엄청난 고(高)지가는 생산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을 저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토지가격(2012년)은 5604조 원이고 GDP 대비 토지 가격은 4.1배인데, 이것은 일본·호주·프랑스 2.4~2.8배, 네덜란드 1.6배, 캐나다 1.3배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 땅을 팔면 미국의 절반을 살 수 있고 캐나다 2배를 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토지 가격이 비싸면 공장을 짓고, 사무실을 임대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것은 생산의 용수철을 짓누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일자리(노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고 이것은 노동이 자본에 열세를 보이는, 달리 표현하면 노동 소득 분배율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한국의 토지 소유 불평등 정도도 심각한데, 이것을 통해서도 불평등의 상당한 원인이 여기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국토부가 2013년 1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50만 명(전체 인구의 1%)의 민유지 소유 비율이 55.2%이고 500만 명(전체 인구의 10%)의 소유 비율이 무려 97.3%나 되는 것으로 나온다. 

 

저자는 재산 소유 불평등, 즉 토지 소유 불평등이 별것 아닌 것으로 봤지만, 이와 같은 극도의 토지 소유 편중 상태에서 토지 가격이 투기적으로 급등하면 가진 자는 더 벌고 못 가진 자는 뺏기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이런 게임이 전국적 규모에서 장기간 계속되었고, 이것이 불평등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대다수가 체감하는 바다. 

 

한마디로 말해 토지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격차가 반세기 동안 줄기차게 확대돼 왔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1963~2007년 사이 실질 소득은 15배 증가했는데, 서울의 토지가격은 1176배, 대도시 토지 가격은 923배 올랐다는 것에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토지를 소유한 사람에게로 이동한 불로소득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경제 위기와 용산 참사와 같은 사회 갈등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이런 까닭에 경북대 이정우 교수는 "한국에서는 외국과는 달리 소득이라는 유량(flow) 이외에 토지·주택이라는 저량(stock)에서의 불평등이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든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이정우 교수에게 불평등을 묻다" 이정우·이창곤 외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후마니타스 487쪽). 그런데 이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한편 소득 분배를 가계 소득과 기업 소득과 정부 소득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3요소인 토지의 지대, 노동의 임금, 자본의 이윤(이자)로 분배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토지 소유 불평등이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자가 소유 토지에서 발생하는 귀속 임대료(imputed rent)까지 포함된 지대, 즉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전체 지대는 정부가 지대 소득을 발표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임을 생각했을 때, 토지 소유 불평등이 재산 불평등 뿐 아니라 소득 불평등의 주요한 요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 출처 : 2015년 8월 27일자 오마이뉴스(http://goo.gl/ov0fJS)>

 

남 기 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목록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 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 됨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SITE MAP

팀뷰어 설치파일 다운받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