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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업] 토지에 짓눌린 대한민국,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20 / 등록일 : 20-02-07 17:10

정치 철학에서도 빠진 토지

 

장하성 교수가 불평등의 주요 요인인 재산, 여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토지를 제외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저자가 토지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주류 경제학에 영향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정리한 정치 철학, 즉 정의론에서도 토지를 다루지 않은 것에서 추측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정책 이론과 처방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정치 철학이다. 설득력 있는 논리로 사유 재산 절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노직의 논리를 격파하는 부분에서는 통쾌하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노직의 논리를 통해 노직의 결론을 비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노직보다 더 노직적이다. 노직은 최초의 취득 과정과 이전·양도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 개인의 사적 소유권은 보장되어야 하고, 만약에 해를 주었다면 보상하면 된다는 간명한 논리를 전개한다. 그런데 장하성 교수가 지적했듯 취득의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완전 경쟁시장'이어야 한다.

 

완전 경쟁 시장이 아니라 과점 시장이나 독점 시장이 되면 시장 지배력을 가진 자가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의 경쟁은 반복되기 때문에 이러한 독점화 경향을 시정하지 않으면 노직의 분배 정의론은 성립이 불가능하게 된다(433~436쪽). 그러므로 취득의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라도 소득 재분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한 기여와 노력에 의한 기여를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여도가 분배 정의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449쪽)고 주장한 롤스의 주장을 통해서도 재분배를 정당화 한다. 

 

노직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초의 취득이다. 그러면 사람이 만들지 않았고 그 양을 늘릴 수도 없는 토지를 노직의 최초 취득 대상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토지에 대한 최초 취득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토지의 가치는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줬으므로 보상의 원칙에 회부돼 '지대'(land rent)를 사회 전체에 납부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장하성 교수는 삼성 부회장 이재용이 소유한 재산 중에 상당한 부분은 사유 재산을 옹호하는 노직의 논리로 봐도 취득의 정당성이 취약하다(473~475쪽)고 했지만, 사실 토지는 애초부터 취득의 원칙을 어긴 것이나 다름 없다. 노직의 논리로도 이런 결론이 날진대 롤스는 더 따질 것도 없다. 

 

정치 철학은 일종의 사고 실험이다. 백지 상태에서 사고를 전개하는 학문이 바로 정치 철학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 뿐만 아니라 토지도 당연히 사고 실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토지가 없으면 인간은 경제 활동 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고 나아가 토지에 대한 독점이 시장 독점화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중요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저자가 토지를 취급하지 않은 까닭은 그의 정치경제학 분석 틀 자체에 토지가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치철학에서 정립된 인식틀이 정치 경제학으로 구체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류 정치 경제학의 기본 분석 틀이 정치 철학을 검토하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쉬운 점은 토지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시장 규칙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 규칙과 특권 보호는 상극이다. 저자가 재벌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까닭도 다르게 표현하면 재벌이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도 당시 영국이 지금의 재벌과 유사한 대상공인에게만 특권을 줬고, 이 특권이 시장 질서를 유린한다고 봤기 때문에 혹독하게 비판한 것이다. 

 

토지 소유는 일종의 특권이다. 토지소유자와 비토지소유자의 경쟁이 공정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는 개별 토지 소유자의 노력과 무관하게 생기는 불로소득이다. 그러므로 시장 규칙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도 토지 특권이 낳는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첨언할 점은 저자가 세운 정치철학에 토지를 대입하면 자본주의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토지, 노동, 자본을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시장을 존중하는 것을 자본주의라고 한다면, 토지에 대해서는 공적 개념을 적용하는 반면 노동과 자본에 대해서는 사적 개념을 적용하면서 시장 경쟁을 존중하는 것은 자본주의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띠고, 분배 상태는 지금보다 훨씬 개선되며, 경기 변동의 위험은 크게 줄어들고, 환경 파괴도 억제된다. 

 

기업 지배 구조에 대한 더 좋은 해법

 

장하성 교수는 재벌 총수가 수십 개의 계열사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다시 말해서 주주 이익을 침해하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전횡을 바로 잡기 위해서 기업 지배 구조에 대한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기본 관점은 주주 자본주의다. 저자는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는 주자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회사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인 두 가지 방법인 주주 자본과 부채 자본의 특징과 장단점을 상세히 비교한다. 

 

이리 따지고 저리 따져 봐도 회사 입장에서는 주주자본이 훨씬 유리한 자금 조달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주주는 자본을 조달할 뿐만 아니라 회사가 파산했을 경우 손해를 무릅쓰는 까닭에 주주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독일의 감독 이사회를 설명하는 곳에서는 기업의 이해 당사자 중 하나인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는 하나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2012, 꾸리에)라는 책에서 김상봉 교수가 근본에서부터 철저한 방식으로 논증했듯 주주가 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근거는 없다. 황당한 말로 들리겠지만, 주주가 주식회사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법인인 까닭에 주인이 있을 수 없고 대표만 있을 뿐이다. 좀 바르트가 말했듯이 "누구도 그 기업이 이 사람 또는 이 사람들에게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주식회사의 본질에 속한 것이다."(김상봉, 146쪽)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것은 주주가 기업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주주들은 기업 활동을 떠맡아야 할 자들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할 맘도 없다. 이렇게 주식회사에 주인이 없는 까닭에 법률과 사회적 관습이 달라짐에 따라 경영권의 주체와 그 권한의 성격 역시 달라지는 것이다. 회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 사외이사 자리를 맡을 수 있는 이유도 주식 회사에 주인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김상봉 교수는 주식 회사의 활동 주체인 노동자들에게 이사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주주들에게는 배당금에 대한 권리와 경영에 대한 감사의 권한을 주어 노동자경영권과 균형을 맞추는 것도 덧붙인다. 노동자들이 사장을 뽑고, 주주들이 감사회를 조직하여 주식회사 내부 운영의 공정함과 투명함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내가 김상봉 교수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안에 더 주목하는 까닭은 논리의 철저함도 있지만, 노동자경영권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 때문이다. 우선 이렇게 하면 매년 초에 이건희가 삼성 계열사의 사장을 임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각 회사의 사장은 그 회사의 종업원 총회에서 선출하게 된다. 삼성과 엘리엇 간에 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종업원이 사장을 뽑는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가능성은 낮아지고,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경영권 보호'도 불필요해진다. 

 

하나의 주식회사도 아니고 80개가 넘는 주식회사에 전제 군주처럼, 그리고 분식회계 등을 통해 비자금을 마음대로 만드는 관행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이 존재하기 어렵다. 비정규직도 종업원 총회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렇게 기업지배구조를 바꾸게 되면 장하성 교수가 바라는 재벌 개혁을 더 확실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고,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사라지며, 다시 말해서 임금소득의 불평등이 완화되어 가계소득이 증가하며,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그룹들의 공격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노동자 경영권을 당장 실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자본금 2조 원 이상인 기업에서 이사의 절반을 노동자가 뽑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현행법에는 자본금 2조 원 이상의 경우엔 이사의 절반이 사외이사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획기적 사건을 위한 집단지성

 

장하성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 핵심 문제를 1차 분배의 왜곡에서 찾았다. 선진국에 비해서 노동 소득 분배율이 낮고 거기에 더해 노동 내부의 심각한 임금 격차가 불평등의 중요한 이유인데, 이것을 간과하고 복지 확대를 의미하는 2차 분배에 매달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로 인한 격차 확대와 초법적 존재인 재벌의 엄청난 시장 지배력 등도 불평등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가 제시한 처방은 시장의 규칙을 제대로 세우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자본주의 고쳐 쓰기의 요체다.

 

이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부 진보 개혁 그룹에서 제기하는 주주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반(反)비판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주주자본주의 비판론자들의 일면적 편견과 오해가 조합되어서 만들어 낸 '재벌과의 타협론'이라는 엉뚱한 대안에 대한 비판(151쪽)은 한국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저자는 토지가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했다. 모든 것을 백지 상태에서 검토하는 정치 철학에서도 토지가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봤을 때, 이것은 저자가 토지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이론 틀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대안은 토지 문제 해결과 결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자본주의 '고쳐 쓰기'가 아니라 '극복의 길'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정당성 면에서 저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주주 경영권보다 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저자가 제안한 방안보다 재벌개혁과 임금 불평등 해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노동자 경영권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토지에 짓눌려있고, 노동은 자본에 열세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 내부의 불평등도 심각하며, 복지는 너무나 취약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재벌과 대기업의 반칙은 여전하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의 전체적 문맥 속에서, 즉 총체성 속에서 배치하고 파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다. 

 

이런 이론적 틀이 있어야 체계적인 처방전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려면 각자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강조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지금은, 2017년 대선을 '획기적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집단지성의 힘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한국 자본주의>를 읽고 토론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출처 : 2015년 8월 26일자 오마이뉴스(http://goo.gl/9VWc7E)>


남 기 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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