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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찬]토지가치를 공유하는 상생도시로

작성자 : 관리자 (211.227.108.***)

조회 : 1,912 / 등록일 : 20-02-07 17:14

도시를 새롭게 되살리는 활동이 낳은 어두운 그늘, 젠트리피케이션. 2015년 우리 사회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이 된 듯하다. 빠르고도 거칠게 휩쓸고 있는 이 흐름을 늦추고, 막아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 토지소유권으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도심재생 문제를 다룬 <상생도시>(알트 펴냄) 글쓴이가 젠트리피케이션을 푸는 세 가지 해법을 제안한다.  

 

토지 소유권과 공동체가 이뤄낸 토지 가치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말로 '내쫓김 현상'이다.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세입자들을 내쫓으려는 토지소유권자와 자본의 폭력, 반대로 내쫓기지 않으려는 이들의 눈물겨운 싸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세입자들이 쫓겨나면 지역 주민이 함께 일군 마을까지 내쫓기게 된다. 

 

한국 상황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이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으로 환경이 개선되거나, 예술가들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둘째, 그 결과로 땅값과 임대료가 급등한다. 셋째,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주거세입자와 장사와 예술 활동을 하던 세입자들이 쫓겨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토지 소유자가 쫓겨나기도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오는 열쇳말로는 개발이익, 권리금, 임대료가 있다. 모두 돈이다. 그런데 더 중요하지만 잘 인식되지 않는 공통점이 또 있다. 바로 토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더 높은 용적률로 개발하면서 발생하는 개발이익, 주로 사회경제적·지역적 입지요인에 따라 발생하는 권리금, 상가 임대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지분 임대료, 모두 위치라는 속성을 가진 도시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인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행위를 '지대추구'라는 근사한 용어로 지칭하지만, 토지 가치는 무릇 사회와 마을공동체의 소산이다. 지대추구는 실은 도시 공동체가 이뤄낸 가치를 소유권자가 가로채는 일이다. 그 결과로 세입자들이 내쫓기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철저하게 '소유자 사회'로 자리매김했다. 토지라는 재산을 어떻게든 소유하기만 하면, '절대 갑' 위치에서 특권을 향유할 수 있다. 특권은 토지 소유에 따른 막대한 불로소득을 수반했다. 대신 '을' 위치로 떨어져 버린 사용자들, 이른바 주거와 상가 세입자가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한국에서 전개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너무 빠르게 진행된다. 세입자는 대응하기 어렵다. 사회제도 기반도 약해 임대료가 오르면 버틸 수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마을공동체를 지키는 해법  

 

어떻게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거나 출구를 찾을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먼저 '쫓겨남 현상'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본주의가 무력화시킨 마을공동체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을공동체는 개별 사안에 적합한 창조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한마디로 하면 '지역자산화' 전략이다. 

 

나는 최근 펴낸 책 <상생도시>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해 지역사회가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공공토지임대제, 토지협동조합, 마을협약이 그 본보기다. 첫째, 공공토지임대제는 토지사용자가 정부 소유 토지를 임차해 토지사용료를 치르는 방식이다. 사용자가 토지사용료를 치르기 때문에 개발이익 사유화 문제가 해결된다. 둘째, 토지협동조합은 지방정부와 함께 기존 토지소유자와 지역 주민이 사회자본 조합원으로 참여해 민간 토지를 지역자산으로 바꾼 뒤 지분에 따라 토지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공공토지 부족과 높은 매입지가라는 공공토지임대제 적용의 현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방안이다. 셋째, 마을협약형은 마을 이해관계자들이 협약을 체결해 스스로 재산권을 제한하고 소속 구성원들의 공간 사용 안정성을 꾀하는 방식이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모델의 공통점은 여러 층위로 토지가치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좀 더 자세히 세 가지 방법론을 들여다보자.  

 

첫째, '공공토지임대제'로 토지의 사유 영역을 넘어설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사유 토지재산권 체계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마을공동체가 정부로부터 공공토지를 임차 받아 장기간 안정되게 사용하면 내쫓기는 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지금 적용하기에 충분한 제도가 마련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공동체주택 사업자 '소행주'가 SH공사 부지를 40년 동안 임차해 협동조합 주택(8가구, 5층 건물)을 건축했다. 거주자들은 건축비만 부담했고, 토지이용료 32~35만 원을 달마다 부담하게 된다. 공동체 주택 사회적기업인 (주)녹색친구들도 최근 11월 12일, 서울시와 토지임대차 40년 사용 계약을 맺고 인근 시세보다 20~40% 싸면서도 품질 좋은 '더불어숲'이라는 사회주택을 건설할 예정이다. 현재 주택지를 대상으로 이러한 시도가 전개되고 있지만, 상업용지에도 내쫓김 현상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둘째, '토지협동조합'이다. 마을공동체가 자산을 사들이는 '지역자산화' 전략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 달가운 면이 있지만, 몇 가지 한계도 있다. 우선 마을공동체도 사유 재산권자와 같은 토지 불로소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사유 재산을 지역자산으로 사들이는 데 재정부담이 크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사유 재산을 지역자산화 하더라도 순수하게 지역공동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 지역 주민, 지역에 기반하는 사회적 자본이 공동 출자하는 토지협동조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토지협동조합은 예방 차원뿐만 아니라 내쫓길 위기에 처한 경우 일정 시간이 확보된다면 출구로도 쓰일 수 있다. 

 

셋째는 '마을협약'이다. 이 방법은 순수하게 마을 주민들, 재산권자와 세입자들이 추진 주체가 된다. 지방정부는 프로그램과 재원을 통해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도 주민들이 협약을 맺어 '임대료 인상자제'처럼 스스로 구속하면, 활용 폭이 훨씬 넓고 적용 가능성도 높다. 중요한 사례는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서 찾을 수 있다. 서울시가 30억 원을 들이고 헌신하는 연구자들과 운동가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적극 참여해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 열매를 부재지주를 포함하는 재산권자들이 독식하려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주민협정'이 제시됐고, 결국 서울시도 정책으로 주민협정을 지원했다. 서울시는 2013년 10월 2일 집수리 지원을 위한 공고(서울특별시공고 제2013-1558호)를 발표해 서울시가 수리비와 신축비를 지원하는 대신 혜택을 받는 건물주는 세입자보호에 대한 주민협정안, 4년 장기계약 체결과 임대료 인상 제한에 동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다른 사례는 2014년 2월 28일에 서대문구청 중재로 '신촌 상가 임대료 안정화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건물주가 최대 임대차 계약기간인 5년 동안 월세와 보증금을 올리지 않는 대신, 임차인은 호객행위, 바가지 상술, 보도에 물건을 쌓아두는 행위와 같이 신촌 상권 활성화를 저해하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일이다. 마을협약 모델은 마을공동체 단위에서 당장 시도할 수 있는 방식이다. 다만 부재지주들의 무임승차가 문제다. 마을협약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효과만 누리려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적절한 대처는 마을협약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핵심 사안이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도시가 지속가능하다 

 

'상생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토지가치를 공유하여 상생의 기초를 만들고, 재산의 소유와 사용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마을공동체가 파괴되지 않도록 지키면서 경제 활력을 유지하는 도시공간이다. 토지소유자가 개발업자와 결탁해 세입자 권리를 무시하고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고 지켜온 사용자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토지소유주, 세입자, 지방정부와 시민단체 같은 제3 섹터가 함께 대안 개발을 추진해야 상생이 가능하다는 철학이 바탕에 있다. 이러한 상생도시에서는 내쫓김 현상이 발생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도시에서 내쫓김은 일상이 되고 있다. 마을공동체는 토지가치 공유를 핵심 원리로 하여 지역에 적합한 사례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경작지인 토지는 사람과 자연을 잇는다. 사람과 자연이 만나 어우러진 곳에 농촌 마을이 만들어진다. 입지로서 토지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진 곳에 도시가 세워진다. 이처럼 토지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해석에는 '모두 함께 어울려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상생'은 우리가 순응해야 할 자연 질서이다. 그래야 문명이 진보한다. 

 

<출처 : 2015년 12월 18일 프레시안> 토지가치를 공유하는 상생도시로
 

조 성 찬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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