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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작성자 : 토지+자유연구소 (220.88.188.***)

조회 : 79 / 등록일 : 20-06-24 19:08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정의를 입에 달고 살면서 자기가 사는 동네 일에는 왜 이렇게 관심이 없느냐. 나라의 변화도 가장 작은 단위인 마을이 바뀌어야 가능한 것 아니냐.”


남기업(50)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저런 말을 듣게 됩니다. 때는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5년 9월이었죠. 아파트 동대표 선거에 출마하라는 요청이었는데 기업씨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어요. 아파트 동대표는 자신의 인생 계획표에 없던 항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작은 단위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말에 흔들려 출마를 결심했고 덜컥 당선까지 됩니다.


지인은 한술 더 떠서 동대표들의 대표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돼보라고 부추겼어요. 기업씨는 무슨 일이든 낙관하는 사람이었기에 선거에 뛰어들었죠. 상대 후보는 ‘아파트 회장’만 4차례 역임한, 그래서 직업이 ‘아파트 회장’이라고 알려진 아파트 단지의 “거물”이었습니다. 낙선이 예상됐지만 “투명한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기업씨의 공약이 주효했는지 기업씨는 당선증을 거머쥡니다. 한데 당시엔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의 앞에 악몽 같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업씨가 겪은 아파트 복마전


우선 기업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봅시다. 기업씨는 토지공개념을 주창한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사상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부터는 ‘토지+자유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을 “성실함 겸손함 집요함, 이 세 단어를 마음에 두고 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소개하는데, 실제로 그가 아파트 회장으로 벌인 활약상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2015년 선거에서 동대표에 선출된 사람은 기업씨를 포함해 15명이었어요. 그런데 중립적인 사람은 3명이고 나머지 11명은 “거물”에게 줄을 대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적폐세력이었죠. 이들은 관리비를 쌈짓돈처럼 쓰면서 각종 공사를 통해 잇속을 차리곤 했답니다. 이들에게 기업씨는 눈엣가시였어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려고 별의별 일을 다 벌입니다. 가장 먼저 ‘남기업 해임 작전’을 전개했어요. 관리소장에게 그날그날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소장에 대한 업무방해라고 지적했고, 아파트 공사 현장에 와보지 않은 건 업무 해태라고 비판했어요. 선거 출마 당시에 서류를 이메일로 제출한 것도 불법이라고 몰아세웠지요. 상당수 관리사무소 직원과 경비원, 미화원도 적폐 세력과 한통속이었습니다. 다행히 해임 투표는 부결됐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어요. 해임 투표는 이후에도 2번이나 더 진행됐으니까요.


기업씨한테는 실례가 되는 표현이겠지만 이때부터 이 아파트에선 코미디와 조폭 영화를 오가는 에피소드가 간단없이 이어졌어요. 회장 해임 작전이 번번이 헛물을 켜자 기업씨를 동대표에서 자르려는 작업이 진행됐고, 이마저도 실패하자 기업씨를 괴롭혀서 쫓아내려고 했어요. 적폐세력의 행동대장 격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는 시장에서나 볼 법한 핸드 마이크를 들고 나타나 고성을 질러댔고 논리가 밀릴 때면 사이렌을 울리는 방식으로 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지요.


기업씨는 수없이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어요. 아버지 상중(喪中)에도 괴롭힘을 당했지요. 2015년 1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기업씨는 저들로부터 15번이나 고소를 당했어요. 형사재판에 2번 증인으로 출석했고 각종 가처분소송을 3차례나 했으며 민사재판에도 원고로 2번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어요. 적폐세력의 설계자인 관리소장을 축출했고 행동대장인 감사를 주저앉혔으며 우두머리인 “거물”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기업씨는 무슨 영광을 보자고 끝까지 버텼을까요.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신이 사임을 하면 저들은 남기업이 불법을 저지르다 발각된 거라고 떠들 거라고, 또다시 불필요한 공사를 추진해 뒷돈을 챙길 게 불문가지였다고, 무엇보다 이대로 싸움터를 떠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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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민주주의 사각지대


그렇다면 ‘아파트 민주주의’는 기업씨의 무용담만 한가득 담긴 에세이일까요. 이 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업씨네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어서예요. 2018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50.1%)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마을=아파트’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죠. 주민자치운동이니 마을공동체운동이니 하는 슬로건이 겨냥해야 하는 지점은 ‘아파트 민주주의’예요.


한데 아파트는 “주민주권의 무덤”이 돼버린 지 오래입니다. ‘회장님’이라는 완장에 욕심을 내거나, 뒷돈을 탐내거나, 약간의 임원수당을 생활비에 보태려는 일부 사람이 아파트 관리를 좌우하고 있어요. 책에 담긴 내용을 보면 국내 아파트의 60~70%가 갈등이나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 아파트에선 관리비가 제멋대로 사용될 때가 많아요(우리나라 아파트의 연간 관리비 총액은 무려 15조원에 달한다고 해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이유는 주민들의 무관심 탓이에요. 그렇다면 주민들은 무슨 이유에서 아파트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을까요. 일상이 바쁘기 때문이겠지만 아파트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기도 해요. 아파트가 잘 관리되는 거랑 아파트 가격은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요.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위치’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아파트 관리 상태가 나쁠수록 재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지요. 기업씨는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됩니다. “아파트 가격이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위치와 무관하게 건물 가치로만 결정되면 어떻게 될까” “교통시설이 확충되어 편리해지고 공원이 들어서서 쾌적해지는 가치, 즉 사회가 만든 가치를 공공이 환수하면 어떻게 될까” “재건축을 한다고 해도 개발이익을 누리기 어렵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씨는 연임에 성공하면서 2019년까지 ‘아파트 회장’을 맡았어요. 첫 번째 임기(2015년 10월~2017년 9월)가 저항의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 임기(2017년 10월~2019년 9월)는 개혁의 시기였죠. 그는 아파트에 투명한 민주주의가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갖가지 프로그램을 추진했어요.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주민들과 아파트 단지에 화초를 심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해요.


기업씨는 아파트에 주민주권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주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냅니다. 핵심은 지방자치단체가 이 문제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파트 관리의 전문가인 관리소장이 ‘아파트 회장’한테 휘둘리지 않도록 지자체가 임면권을 가져야 한다” “지자체가 아파트 감사를 도맡는 감사공영제를 실시하자” “많은 돈이 들어간 공사의 경우 계약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살피는 계약심사제가 필요하다”…. 기업씨의 상상은, 그의 제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당신들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출처: 국민일보 2020년 6월 24일자>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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