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역대 최대…새 정부, 행여 집값 띄울 생각 말라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부채가 2000조 원에 바짝 다가가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가계부채 상승을 견인했다. 주담대는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3%에 육박할 정도로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오는 7월부터 도입 예정인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금리인하라는 복병 앞에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집값을 하향 안정시켜야 주담대 위주의 가계대출이 감소세로 전환될 것이다.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할 민주 정부는 집값 떠받칠 생각일랑 아예 머릿 속에서 지우고, 집값을 낮춰 가계대출 총량을 줄여나가야 한다.
1분기 가계빚 1928조 역대 최대치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28조 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말(1925조 9000억원)보다 2조 8000억 원 많고,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 공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보험사·대부업체·공적 금융기관 등에서 받은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 금액(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부채’를 말한다.
우리나라 가계신용은 통화 긴축 속에서도 2023년 2분기(+8조 2000억 원)·3분기(+17조 1000억 원)·4분기(+7조 원) 계속 늘다가 작년 1분기 들어서야 3조 1000억 원 줄었다. 하지만 이후 다시 방향을 틀어서 올해 1분기까지 네 분기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다만 1분기 증가 폭(+2조 8000억 원)은 전 분기(+11조 6000억 원)보다 크게 줄었다.
가계신용 중 판매신용(카드 대금)을 빼고 가계대출만 보면, 1분기 말 잔액이 1810조 3000억 원으로 전 분기 말(1805조 5000억 원)보다 4조 8000억 원 더 불었다. 역시 전 분기(+9조 1억 원)와 비교해 증가 폭은 절반으로 축소됐다.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잔액 1133조 5000억 원)이 9조 7000억 원 증가했다.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한 건 단연 주택담보대출이었음을 입증한다.
반대로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잔액 676조 7000억 원)의 경우 4조 9000억 원 줄어 14분기 연속 뒷걸음쳤다. 대출자들이 연초 상여금으로 신용대출을 상환한 데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김민수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가계대출 전망과 관련해 “2∼3월 늘어난 주택 거래가 1∼3개월 시차를 두고 주택담보대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5∼6월 주택담보대출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과 3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등으로 하반기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담대, 가계대출의 63%에 근접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의 폭증이 가계대출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도 명확하게 규명된다. 1996년 36조 4000억 원에 불과하던 주택담보대출이 2025년 1분기 현재 무려 1133조 5000억 원으로 폭증했다. 이에 따라 1996년 151조 원에 그치던 가계대출은 2025년 1분기 현재 무려 1810조 3000억 원으로 증가했다(한국은행 2025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 1996년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비중은 24.1%였는데 2025년 1분기에는 무려 62.6%로 증가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수치다. 이쯤되면 빚으로 지은 집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주목할 대목은 근래 주택담보대출 폭증을 견인하는 것이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08년~2023년 10월 정권별 국내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현황을 분석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3000억 원이었는데, 임기말에는 6조 1000억 원이 늘어 6조 4000억 원이 됐다. 또 박근혜 정부 동안에는 29조 6000억 원이 늘어 36조 원이 됐으며, 문재인 정부 때 무려 126조 원이 증가해 162조원이 됐다. 한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2년경 전세자금대출은 170조 5000억원까지 늘어났는데 이후 조금 감소해 2023년 10월 161조 4000억 원이 됐다(경실련. 2024. 3. 20. “전세자금대출 실태 분석 결과 발표 기자회견”).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의 폭발적 성장이 집값을 밀어올리고 가계부채를 팽창시키고 있다.

3단계 스트레스 DSR, 금리인하 장벽 뚫을 수 있을까?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라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예컨대 금융당국은 스트레스 DSR 적용을 통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려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오는 7월 1일부터 수도권 대출에 스트레스 금리 1.50%p를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스트레스 DSR 3단계 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연봉 1억 원의 직장인이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현재보다 2000만~3000만 원 수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큰만큼 3단계 스트레스 DSR의 효과가 반감될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주요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 가운데 어느 쪽의 영향을 더 받을지 미지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2023.6.7.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dn.mindlenews.com/news/photo/202505/13581_44114_4524.jpg)
집값을 낮추는 것이 가계대출 총량을 줄이는 첩경
위에서 살핀 것처럼 대한민국의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으뜸 원인은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의 증가다. 따라서 임계점을 넘어선 채 국민경제를 고사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가계대출 증가의 방향을 감소로 틀기 위해서는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총량을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한 최선의 처방은 집값의 하향 안정화다.
조기대선을 통해 출범할 민주정부가 해야 할 일들은 많지만, 집값 하향 안정화를 통한 가계대출 총량 감소만큼 중대한 일도 드물다. 부동산과 금융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무한대로 팽창하는 나라는 지대 추구에 골몰하는 나라다. 그런 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리 없다. 조만간 구성될 민주정부의 성패,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부동산·금융 카르텔’을 혁파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