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금융 당국이 금융의 부동산 쏠림을 완화하고 기업대출 여력을 확대하기 위해 금융권 자본규제 개선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이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신규 취급분부터 위험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높이고, 주식 위험가중치는 400%에서 250%로 낮춰 기업대출 확대를 유도한다.
위험가중치를 높이면 금융기관이 같은 자기자본으로 할 수 있는 대출이 줄어들고, 낮추면 대출을 더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이번 조치로 부동산 담보대출 공급총량은 줄고 자본시장에 공급되는 금융의 양은 더 늘어나게 된다. 금융이 부동산 투기의 화수분 노릇을 청산하고, 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금융위, 이자장사 제동걸고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 추동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제1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국가 경제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금융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성장을 주도해 재도약하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만들어야 할 때”라며 “정책금융·금융회사·자본시장 등 3대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회사 전환 과제로는 은행·보험 자본규제 합리화를 추진해 생산적 분야로 자금 공급을 유도하기로 했다.
은행권은 대출의 부동산 쏠림 완화를 위해 신규 주담대 취급분부터 위험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상향한다. 금융위는 주담대 위험가중치 조정으로 연간 최대 27조 원 규모의 주담대가 축소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또한 원칙적으로 400%를 적용하던 주식 위험가중치는 250%로 낮추고, 단기매매(보유 3년 미만)나 업력 5년 미만 벤처캐피탈 투자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400%를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 같은 조정으로 은행권의 자본비율이 높아지고, 기업대출 여력이 31조 6000억 원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에 기업대출 평균 위험가중치(43%) 적용하면 최대 73조 5000억 원의 투자 확대가 가능하다고도 분석했다. 국내은행의 총자본비율은 평균 약 24bp(0.24%포인트), 지주의 경우 19bp 올라갈 것으로 추산했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정책금융을 활용해 시중자금의 물꼬를 첨단·벤처기업과 지역경제로 전환한다. 올해 12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출범시켜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미래차 등 전략 산업과 관련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 게임·콘텐츠 분야 산업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추진하고, 장기 인내자본 투자가 필요한 벤처생태계도 적극 지원한다.
150조 원 펀드의 상징이 될 만한 메가 프로젝트 발굴에도 나선다. 산업 내 파급효과가 큰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규제·세제·재정·금융·인력양성’ 등 통합패키지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한편 자본시장 측면에서는 국민 벤처투자 확대를 위해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를 도입하고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자산이나 사업의 증권화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토큰증권(STO)을 제도화하고, 대형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도 의무화한다.
금융위는 정책금융·금융회사·자본시장 3개 분야에 대해 업계·전문가 등이 함께하는 실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이억원 위원장이 주재하는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통해 주요 방안들을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위가 금융의 물꼬를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지대추구부문에서 4차 산업 등의 생산적 부문으로 틀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모양새다.

위험가중치 상향해 부동산으로 쏠리는 금융 총량을 규제
이번 금융위의 발표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주담대에 대한 통제장치 마련이다. 금융회사들은 자산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자본비율은 위험자산을 가중 평가해 총자산을 산출하고, 총자산에서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 구하는데 위험가중치가 높아지면 자본비율을 산정할 때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위험가중치가 높아질수록 은행들의 자본 부담이 커져 주담대 공급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은행권의 연간 주담대 신규 취급액이 275조 원 선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번 조치로 은행들이 별도 자본 확충을 하지 않는다면, 종전 자본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26조~27조 원의 주담대 공급을 줄여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그 동안의 대출 규제는 주로 금융 소비자들을 겨냥해서 이뤄졌다면, 이번의 위험가중치 상향을 통한 대출 규제는 금융 공급자들을 겨냥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주식 및 벤처에 대한 위험가중치는 높여 생산적 투자를 유도
금융위는 금융의 유입을 부동산에는 억제하는 대신 주식 및 벤처에 대해서는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은행들의 상장·비상장 주식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최대 400%에서 250%로 낮춰 31조 6000억 원 규모의 기업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로 했다. 만약 이렇게 되면 한국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재무구조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산업은행이 HMM 등 대규모 보유 주식의 주가가 오를 때마다 위험가중치를 높게 적용받아 BIS 자기자본 비율이 하락하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금융이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대출에 나설 공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은행 대출 관리 (PG) [장현경 제작] 연합뉴스](https://cdn.mindlenews.com/news/photo/202509/15656_52259_1824.jpg)
금융이 지대추구가 아니라 성장 견인할 지 주목돼
4대 금융지주가 올해 상반기 거둔 순이익 규모는 역대 최대로 10조 원을 넘는다. 은행이 생산적 투자나 모험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천문학적 이익을 거뒀다면 칭찬한 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은행들은 여전히 부동산 등 지대추구를 통해 돈을 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금융위의 이번 결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다만 주담대에 대한 위험가중치 상향이 신규 주담대에만 적용돼 한계가 있다. 적절한 시점에 기존 주담대에도 적용하는 걸 적극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