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더 내려? 말아? 한국은행 ‘사면초가’





기준금리 더 내려? 말아? 한국은행 ‘사면초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인하를 놓고 사면초가 상태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쇼크 수준으로 나오고 믿었던 수출마저 여의치 않다. 여기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집권 가능성 상승 등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도 1400원을 위협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환율 관련해 변동성에 무게를 두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려 내수를 진작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내수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자니 환율이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일지 모른다. 설사 기준금리를 내린들 전 세계 금리의 토대라 할 미국의 국채수익률을 감안할 때 시장금리가 내려간다는 보장도 없다. 이게 다 미 연준을 따라 기준금리를 충분히 올려야 할 때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에 호응하느라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아 정책 선택의 여지를 스스로 좁힌 한은의 자업자득이다.


3분기 GPD 성장률 0.1%의 충격, 기준금리 인하 요구 쏟아져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Moody’s Analytics)는 3분기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부진한 탓에 한은이 다음 달 기준금리 인하를 논의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24일 보고서를 통해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해왔지만,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며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부진으로 한은의 올해 GDP 성장률 목표치인 2.4%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올해 3분기 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0.1% 증가에 그쳤다. 이는 한은이 지난 8월 발표한 전망치인 0.5%를 크게 하회하는 수치다. 부문별로 보면 수출이 0.4% 감소했고, 건설투자는 2.8% 줄었다. 반면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는 각각 0.5%, 6.9% 증가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최근 수출 데이터는 성장을 위해 외부 부문(수출)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진 가운데 GDP 성장의 구성이 점진적으로 (수출 중심에서) 내수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한 “수출은 모멘텀을 잃고 있다”며 “인공지능 호황으로 첨단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올해 초) 수출 증가율이 급등했으나, 반도체 사이클의 변동성은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은은 10월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전환했다”며 “기준금리 인하는 내수를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신용평가사의 분석은 차치하고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시점이 늦었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군데서 나오고 있다.


무섭게 상승하는 원달러 환율과 미 국채 수익률…깊어지는 한은의 고민

문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장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는 환율만 하더라도 한은의 섣부른 기준금리 인하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지난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8.5원 상승한 1388.7원을 기록했는데,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 7월 3일(1390.6원) 이후 가장 높았다.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체력 및 향후 전망에 대한 시장의 비관적인 전망이, 달러 강세는 세계에서 가장 견조한 미국 경제와 강달러를 초래할 트럼프 당선 가능성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 이런 마당에 한은이 내수를 부양한답시고 기준금리를 내리면 자칫 환율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한은을 근심스럽게 만드는 요소는 더 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시장금리가 오히려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국채 수익률 곡선, 출처 : 인베스팅닷컴

  미 국채 수익률 곡선, 출처 : 인베스팅닷컴

 

위 그래프가 보여주듯 미국 국채수익률은 단기물과 장기물을 가리지 않고 한달 전에 비해 모두 크게 상승했다. 인플레이션의 재발 가능성, 확실시되는 국채의 대량 공급 가능성,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확률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 시장금리, 아니 전 세계 시장금리의 토대인 미 국채 수익률을 밀어올리고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설사 한은이 내수 회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시장금리가 따라서 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한은은 사면초가에 놓인 것이다.


환율 목표치가 아닌 변동성에 촛점을 맞추겠다는 한은 총재

한편 이창용 총재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연차 총회에 참석한 뒤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환율이 너무 빨리 절상 또는 절하되지 않는가에 주목한다”며 “타깃(특정한 환율 목표치)보다 변동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어 외환시장 개입 여부에 대해 “환율이 어느 속도를 넘어서서 박스권을 벗어나면 조정이 필요한지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 4월의 원/달러 환율 급등 당시 “시장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최근의 변동성은 다소 과도하다”며 “환율 변동성이 계속될 경우 우리는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준비가 돼 있으며, 그렇게 할 충분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등 선명한 개입 메시지를 낸 바 있다.

그에 반해 이날 이 총재 간담회 발언에서 보듯, 아직 한은이 4월과는 달리 원론적인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의 배경면에서 당시와 지금이 다른 데다, 11월 5일 미국 대선이라는 중요 변수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4월의 경우 중동 사태 악화 속에 유독 일본 엔화 약세 경향과 동반해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등 상황이 국지적이었던 반면,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강달러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은은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와, 이어진 11월 6∼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지켜본 뒤 외환시장 개입이 필요한지 여부 등을 판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빈사상태에 있는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내리자니 환율이 폭등할지 모르고, 설사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시장금리가 따라서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은은 곤경에 빠졌다.

한은의 이런 처지는 한은의 자업자득이다. 한은은 미 연준이 금리 인상 드라이브를 걸 때 빠르게 따라가면서 기준금리를 올렸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가계대출 증가세도 완만했을 것이고 거의 전적으로 대출에 의존한 부동산 가격 상승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기준금리를 제법 큰 폭으로 내릴 수 있는 여력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은은 부동산 경기 부양에 올인한 윤석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기준금리 인상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결정에 대한 청구서를 받을 차례다. 하긴 우리가 지금 한은만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나라가 정말 큰일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4년 10월 27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