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업의 부동사니즘: 고위공직자의 투기용 부동산을 백지로 신탁한다고?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부동산 관련 제도는 선출직 공직자와 비선출직 고위공직자가 만든다. 다시 말해서 국회의원, 대통령, 도지사, 시장 및 군수, 광역의회 의원과 기초의회 의원, 교육감 등의 선출직 공무원과 장관과 1급 이상의 공무원들이 부동산 투기와 가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택지개발 지구, 산업단지 지구, 도로 설치,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전철역 위치를 결정하는 일, 아파트 용적률에 영향을 주는 도시계획 변경도 이들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고위공직자가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어서 임대인이기도 하고, 건물도 가지고 있어서 건물주이기도 하며, 농사짓지 않는 땅도 많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지주인 경우도 허다하다.
일반인보다 5배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한 고위공직자
경실련이 2023년 3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 37명의 1인당 재산은 평균 48.3억 원, 이중 부동산 재산이 평균 31.4억으로 국민 가구 평균의 10.5배, 7.5배, 장·차관의 재산 평균은 32.6억, 부동산 재산 평균 21.3억 원으로 일반 국민의 각각 7.1배, 5.1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21년 고위공직자 398명이 신고한 재산 등록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이 주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지역은 강남 3구와 마포, 용산, 성동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강남권 3개 구에 123채를 보유해 서울 전체(228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금천·강북·동대문구에 주택을 소유한 고위공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 또 고위공직자 중 상당수가 다주택자이기도 하다. 2020년 8월 경실련에 따르면 국토부와 기재부,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산하기관 등 부동산과 금융 세제 정책을 다루는 주요 부처 1급 이상 고위공직자 107명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발표했는데, 이 중 39명(36.4%)이 다주택 보유자였다.
가액 기준으로 일반인들보다 몇 배나 많은 부동산을 보유한 자들은 부동산 관련 법과 제도를 어떻게 바꾸려고 할까?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려고 할까?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방향으로 만들려고 할까? 물어보나 마나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의 행태대표적인 예로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 일가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에 밝혀진 것만 16,470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는데, 작년에 국토교통부는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을 원안인 양서면에서 ‘김건희 일가’의 땅이 널려 있는 강상면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개발정보를 미리 입수한 고위 관료나 정치인 혹은 그의 친인척이 개발 예정 지역 부근에 땅을 미리 사놓는 경우는 많았어도 이미 확정된 고속도로 종점을 사업의 목적을 훼손하면서까지, 심지어 노선을 55% 변경하면서까지 자기 땅 근처로 변경하는 경우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확실한 것은 현재 강상면 일대에 ‘김건희 일가’가 가지고 있는 땅의 가격은 125억 원인데, 만약 고속도로 종점이 강상면으로 변경된다면 땅값은 무려 600~1,200억 원으로 뛴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전남 광양시의 정현복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 선거 당시 후보였을 때 도로 건설을 공약했고 당선 후 그의 아내가 도로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직전 인근 땅을 대거 사들였다. 매입한 땅의 가격은 2억 902만 원에 달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 땅으로 도로가 날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더구나 보상을 위해 매입한 토지에 매실나무까지 심었는데, 그것은 보상금을 최대한 받아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도로가 수용되면 나무는 ‘이식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기 때문에 일반 땅보다 보상금액이 많게 된다. 물론 광양시 관계자는 시장의 부인이 도로 예정지 인근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고위공무원과 선출직 공무원은 도로 건설과 토지용도 변경에 영향을 미쳐서 자신이 소유한 땅값을 올린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는 개발정보를 자기가 직접 이용하지 않아도 지인이나 친척 등에게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필자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적어도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부동산 투기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안 된다는 인식을 정착시키기 위해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백지신탁제가 꼭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백지신탁’의 본래의 뜻은 공직자가 재임 기간에 주식 따위의 재산을 대리인(정부)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는 제도다. 그러면 부동산백지신탁제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까?
부동산백지신탁제의 내용은 이렇다!
대상부터 생각해 보자. 대상에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재산 공개 대상자인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방의원, 1급 공무원, 교육감 및 국토교통부 소속 공무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과 대상자의 배우자 및 자녀가 포함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대상자의 의무 사항에는 다음을 포함해야 한다. 보유 부동산에 대하여 공직 취임 전에 소유 부동산이 실수요임을 입증하고, 실수요임을 입증하지 못한 부동산은 기간 안에 스스로 매각하거나, 수탁기관에 백지로 신탁하는 것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실수요 부동산은 대상자가 거주 목적이나 영업 목적으로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과 선산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임대용 부동산은 제외해야 한다. 임대업과 고위공직 혹은 선출직 공무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탁기관은 ‘대상 부동산’의 관리·운용·처분 및 매각금액의 운용 등을 담당한다. 수탁 후 정해진 기간 이내에 최고가 매각의 원칙에 따라 ‘대상 부동산’을 매각하되, 매각하지 못했을 경우 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매각 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매각금액과 매각 때까지의 운용수익(임대료 등) 전부를 신탁자인 고위공직자에게 돌려줘야 할까? 아니다. 그렇게 하면 이 제도의 취지가 크게 반감된다. 신탁 당시의 감정가와 신탁 동안의 이자만 돌려주고 나머지는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 쉽게 말해 신탁 당시 부동산이 감정가로 10억 원이었는데 수탁기관이 1년 후 13억 원에 매각했다면, 13억 원을 다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10억 원과 10억 원에 대한 1년 동안의 이자만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매각되지 않거나 매각 추진 과정 중 신탁자가 공직을 떠나는 경우엔 신탁 당시의 감정가와 공직 사임까지의 법정이자만 돌려받고 대상 부동산을 반환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상자는 고위공직자 재임 기간 및 퇴임 후 최소 3년 동안은 실수요 목적이 아닌 부동산의 신규 취득을 금지해야 한다. 즉 현직에 있을 때 취득한 정보로 부동산 투기를 최대한 못 하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공직자 부패의 온상이자 치부의 수단이다. 부동산에 이해관계를 가진 고위공직자들로 인해 정책이 왜곡되고 각종 부패가 발생한 것을 우리는 수도 없이 겪었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투기 의혹에 대한 공방으로 국민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이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위 제도가 도입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은 부동산 문제 해결의 기폭제
첫째, 청렴한 고위공직자들이 공정한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전통이 확립되고,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다. 둘째, 고위공직자 후보 인재 풀이 넓어져서 국정 운영이 원활해질 것이다. 유능한 고위공직자 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부동산 투기를 해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동산백지신탁제는 이와 같은 유능한 인재 풀을 보호하는 기능을 해낼 것이다.
셋째, 이 제도는 보다 정의로운 사람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 인재들이 선출직 공무원과 고위공직에 오를 가능성을 높여준다. 아무래도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해 온 사람들에겐 투기용 부동산을 백지로 신탁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공직은 잠깐이지만 재산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공직자도 상당할 것이다. 특히 이 제도는 지역에서 부동산 부자들의 선출직 출마 가능성을 크게 낮추고, 지역 공동체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공심(公心) 가득한 사람들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진출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위와 같은 부동산백지신탁제는 필자가 처음 제안한 것은 아니다. 2005년에 경북대 김윤상 교수가 처음 제안했고, 지난 대선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현 정부에서 부동산백지신탁제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평화나무 쩌날리즘 2024년 11월 29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