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토지공개념과 주거권 실현, 그리고 대통령 선거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창세기에서 요셉이 차지하는 위상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인물이 누굴까? 흥미로운 점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누굴까? 요셉이다. 왜일까? 요셉의 이야기가 창세기뿐만 아니라 성서 전체에서, 나아가서 기독교 신앙 이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의 핵심을 구약은 ‘거룩한 나라’, 신약은 ‘하나님 나라’라고 요약한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 거룩한 나라는 어떻게 생긴 걸까? 이렇게 묻는 까닭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려면 그것을 머리에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가 요셉을 그토록 중요하게 다룬 이유를 알게 된다.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거룩한 나라 형성에 쓰이는지를 보여준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시내산 율법에 들어있는데, 거기서 핵심은 땅과 집에 대한 권리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는 것, 즉, 모두가 자기 집에서 살면서 자영농이 되고, 채무자가 부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며, 노예가 해방되어 자유인이 된 상태,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꽃피우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다.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시내산 율법은 거대한 신전과 신상이 특징인 당시의 우상 종교와는 완전히 다르다. 당시 우상 종교는 99%의 백성이 1%의 특권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뿐이다. 자유를 상실한 노예, 부채에 짓눌린 채무자, 그리고 땅과 집이 없어서 지주와 집주인에게 정신적·경제적으로 예속된 삶을 사는 자의 안위를 염려하고 탄식하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다.
이런 정신은 예수님에게로 그대로 이어지고 완성된다. 예수님은 (시내산)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고 자기의 사명이 희년을 이 땅에서 구현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누가복음 4장 18~19절)그리고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희년을 실천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토지공개념과 주거권 실현을 핵심으로 하는 희년의 실체가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요셉을 통해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것도 이스라엘이 아닌 이집트라는 이방 땅에서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요셉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 “불쌍한 이들을 한없이 측은히 여기며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면 가슴 아파 견디지 못하는 하나님”(출애굽기 34장 6절, 현대어성경)와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신다는 것이다. 관심사가 다른 사람과 동역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하나님도 자신과 관심사와 마음이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하신다.
요셉이 바로 이런 인물이다. 창세기가 이것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요셉은 말도 통하지 않는 이집트에서 기막힌 노예 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노예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을 것이고, 이들의 삶을 한없이 불쌍하게 여겼을 것이다. 또 나아가서 이들이 인간다운 삶,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방법이 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며 그 안타까운 마음을 기도로 승화시켰을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에게 지혜를 주신다. 성서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은 다 이런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가난을 청산하고 각자가 자기의 삶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거룩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기도했던 모세에게 시내산 율법이 주어진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는 모세를 하나님이 갑자기 시내산으로 불러내서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다.
성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요셉이 총리로 발탁된 계기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창세기 40장 6~7절에 보면 옥에 갇힌 요셉이 관원 두 사람의 근심 띤 얼굴을 보고 그들에게 다가가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이 측은지심이 몸에 배어있다는 걸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마음,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가 총리로 발탁된 계기였고, 결국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전 국민 주거권을 실현하는 요셉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요셉은 바로의 ‘해괴한’ 꿈을 해석하고 왕의 전권을 위임받는 총리가 된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닥쳐올 환난을 대비하고 해결할 수 있는 최적임자가 요셉이라고 봤기 때문이다(창세기 41장 37~43절). 여기에서 우리는 바로라는 인물이 자신의 정권을 지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왕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는 왕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요셉이 바로와 신하들에게 제시한 해법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풍년에 양식을 모아두었다가 흉년에 나눠주는 정책이었을까? 아니다. 요셉은 평소에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정리했던 방안들, 즉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노예처럼 시달리고 가난에 굶주리는 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가 그에게 전권을 위임할 필요도 없다.
그의 총체적 개혁 구상은 자신이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이집트의 온 땅을 순찰했고(41장 45~46절), 흉년이 들자, 양곡을 무상으로 분배하지 않고 팔면서 이집트의 모든 돈과 가축, 토지, 노동력을 확보해 나갔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또한 “이집트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창세기 47장 21절)다는 것에서 요셉이 백성들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국토종합개발에 나섰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경지를 정리하고 택지를 조성하고 주택을 건설한 후 백성들을 성읍으로 이주시킨 것이다. 백성들의 주택문제까지 해결하려는 것, 즉 전 국민 주거권을 실현하는 것이 요셉의 구상이었다.
요셉의 토지공개념 실현과 노예제도 철폐
경지 정리를 마친 요셉은 국유화한 토지를 백성들에게 임대료 20%만 받고 임대한다. 종자를 나눠주면서 “가족과 어린아이의 양식으로 삼으라”(47장 24절)고 명한다. 고대의 왕정 사회에서는 세금이 소출의 50%가 넘고 심지어 80%에 이르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임대료 20%는 파격적인 조치다. 이렇듯 토지국유화 및 임대, 오늘날로 말하면 토지공개념 실시는 지배자와 특권층이 아니라 철저히 백성들을 위한 법이다. 이렇게 요셉의 토지공개념 정책은 왕권 강화 차원이 아니라 대지주의 등장을 막고 땅과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목표였다.
나아가 그는 노예제도도 철폐한다. “바로를 위하여 몸과 토지를 샀노라”(47장 23절)라고 했지만, 이것은 백성들을 바로의 노예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신분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함, 즉, 신분제도 철폐를 위한 조치다. 대지주와 귀족의 특권을 폐지하고 왕권과 인권의 동시 강화가 요셉 개혁의 실체다.
요셉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세의 희년법
요셉의 토지공개념과 주거권 실현과 노예제도 철폐 정책은 400년 후에 모세의 시내산 율법으로 완성된다. 모세는 땅과 집을 팔았더라도 최장 50년이 되면 돌려받을 수 있도록(물론 그 전이라도 무르기 제도를 통해서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7년에 1번씩 노예와 채무에서 해방되고, 적어도 7일에 하루는 종과 가축까지 쉬게 하는 율법을 완성한다.
요셉의 개혁은 위대했지만 불완전했다. 어떤 왕이 등장하느냐에 따라서 토지공개념과 전 국민 주거권 정신은 후퇴할 수 있었고, 백성들의 자유는 제한되고 유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은 이런 한계를 보완한다. 시내산 율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명령한 법이었고, 이것이 계속 지켜지기 위해 그 내용을 날마다 자녀들에게 가르치도록 했다. 그뿐 아니라 모세는 땅과 집을 팔거나 노예로 전락했을 경우라도 그것을 되찾고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했다. 모세의 시내산 율법이 요셉의 개혁 프로젝트의 한계를 극복하고 완성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실현될 수 있는 토지공개념과 주거권 실현
마지막으로 요셉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요셉의 주거권과 토지공개념이 신정국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세속국가 이집트에서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성서의 정신을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 구현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것은 현실 속에서 성서의 이상을 구현하려는 요셉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말이다. 더구나 요셉이 방안을 찾아낸 것처럼 토지공개념과 주거권 실현 방안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러면 오늘날 요셉은 누구인가? 구체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요셉은 누구인가? 요셉처럼 정치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서 ‘양심 있는’ 일반시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심어 놓은 양심의 법을 성문화한 것이다.
부동산을 통해서 돈 버는 것은 땅과 집이 없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므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 땅값과 집값이 오르면 청년과 신혼부부들에게 고통이 되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과 출산이 연기 혹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이런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 그런 양심 있는 시민의 목소리가 토지공개념과 전 국민 주거권 실현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그게 뭘까? 바로 6월 3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요셉이 되자! 잠잠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자! 토지공개념과 전 국민 주거권을 실현하는 나라를 만들자고.
<이 칼럼의 요셉에 대한 해석은 아래 글에 크게 의존했음을 밝혀둡니다.>
– 길동무. 2012. 『창세기』. 케노시스영성원.
– 민종기. 2017. “요셉의 토지제도와 희년법의 사회정의”. in 김수정 외 『고엘, 교회에 말걸다 :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성서적 모델』. 홍성사. pp. 2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