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급격한 금리인하를 기대하기 힘든 까닭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글로벌 증시를 강타한 충격과 공포의 지진이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글로벌 증시를 급락시키고 시장참여자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간 방아쇠는 다름 아닌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촉발시킨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사태였다. 거의 동시에 미국 경기가 침체상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고용지표들이 발표됐고 AI혁명 거품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대형 악재가 동시에 불거진 셈인데 여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사태가 자산시장에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심대하다. 미 연준이 급격한 금리 인하를 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발행하기만 하면 흥행 대박이라는 미 국채의 신화는 옛말?
불패를 자랑하던 미국 재무부의 국채 입찰이 흥행에 실패했다.
7일(현지시간) 미 재무부는 420억 달러(약 58조 원) 규모의 10년 만기 미 국채 입찰에 나섰다. 입찰 금리는 3.96%로 결정됐는데, 이는 트레이더들의 예상치보다 0.03%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거기에 더해 잔여 국채를 인수하는 프라이머리 딜러의 입찰 비중은 최근 평균보다 높은 17.9%였다. 프라이머리 딜러 비중이 높다는 건 국채 수요가 그만큼 부진하다는 의미다.
시장에서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부진하다 보니 미 국채수익률도 상승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날 회사채 발행이 폭증한 것도 국채 시장에 압력으로 작용한 건 사실이다. 우량 기업 17개 사가 올해 투자 등급 발행액 최대규모인 318억 달러(약 44조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국채발행 흥행 실패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미 증시가 하락 반전하는 등 시장은 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미국 정부도 시름이 더해졌다.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촉발시킨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공포
지난달 31일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현재 0~0.1%에서 0.2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한 이후 4개월 만의 금리인상이자 크나큰 인상 폭이었다. 금리 동결을 예상한 시장의 전망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금리 결정 이후 질의응답 자리에서 “향후 정책 금리 수준으로 0.5%를 벽으로 의식하고 있냐”는 질문에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고 답해 시장을 경악케 했다. 그 이상으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폭탄 발언이었다. 일본은 1999년 제로금리를 도입한 후 한 번도 0.5%를 넘긴 적이 없다.
우에다 총재는 “(금리인상이) 경기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엔화는 급등했고 닛케이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도 역대급으로 급락했다.
일본은행의 기습적 기준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엔화 급등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초래한 탓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의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기법을 일컫는다. 시장에선 대략 2경 가까운 규모로 추산한다. 그런데 일본은행이 금리를 높이고 엔화가 급등하자 해외 자산을 급하게 매각하고 일본으로 환류하려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엔화급등과 증시 급락에 화들짝 놀란 일본은행은 급거 행동에 나섰다. 8월 7일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는 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정도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근심되는 미 연준
지금 미 연준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할 것이다. 국채 시장 상황도 녹록치 않아 신경이 쓰이는데 기준금리를 얼마나 내려야 할지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조금 올렸는데, 그래서 미국의 기준금리와 차이가 아주 조금 좁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관찰됐다는 사실이다.
만약 연준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수준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연준이 더 잘 알 것이다. 어쩌면 연준 주요 인사들이 ‘연준은 하나의 지표만 보고 금리를 결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사태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글로벌 시장의 태풍의 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