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GDP’ 세계 유일의 국가 대한민국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폭증하고 은행권 가계대출 규모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가계대출이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대한민국은 가계부채를 대폭 축소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데, 오히려 가계대출이 증가 추세에 있다. 윤석열 정부가 총력을 쏟고 있는 집값 떠받치기, 대출 확대, 은행권 대출금리 인하 요구 등은 모두 디레버리징과는 대척점에 있는 정책방향이다. 윤 정부는 가계부채 축소는 도외시한 채 부채의 습격을 총선 뒤로 미루는 데만 열중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집값 떠받치기를 위해 가계대출 확대를 택한 윤 정부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6월 말 기준 1062조 3000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5조 9000억 원 증가했다. 잔액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다. 전달 대비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다가 4월(+2조 3000억 원) 증가세로 돌아선 뒤 5월(+4조 2000억 원)과 6월까지 석 달 연속 증가했다. 특히 6월 가계대출 증가 폭은 2021년 9월(+6조 4000억 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가장 컸다.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늘어났다. 가계대출이 6월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한데에는 주담대의 증가가 결정적이었다. 6월 주담대는 7조 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0년 2월(+7조 8000억 원)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 폭 증가였다. 주담대의 추세적 증가는 괄목할 만하다. 주담대는 올해 들어 2월(-3000억 원) 반짝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3월(+2조 3000억 원)과 4월(+2조 8000억 원), 5월(+4조 2000억 원), 6월(+7조 원) 등 4개월 연속 증가했다. 시간이 갈수록 증가 추세도 매우 가팔라지고 있다. 아래 그래프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감 추이를 잘 보여준다. 신용대출이나 상업용부동산 담보대출 등으로 구성된 기타 대출에 비해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감 추이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 주담대 증가세 확대는 주택구입 목적의 대출이 증가한 이유도 있지만, 전세보증금 반환·생계자금 등 주택구입 이외 목적의 대출 비중도 크다”며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택시장 투기수요로 인한 과열을 우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주담대는 올 3월부터 증가 폭을 키우며 4개월 연속 확대일로에 있는데, 이 무렵은 윤석열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 올인 대책들의 영향으로 집값 바닥론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때다. 특례보금자리론의 공급과 대출확대 등도 집값 바닥론에 현혹된 수요자들이 존재했기에 유효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분명한 건 윤석열 정부가 가계대출 축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윤 정부가 규제지역 해제·전방위적 부동산 관련 세금 인하시도·대출 확대·40조원에 달하는 특례보금자리론의 공급·둔촌주공 일병구하기·역전세 임대인에 대한 대출완화 등의 정책수단들을 통해 실현하려는 집값 떠받치기와 은행권 대출금리 인하 요구는 가계대출 축소와는 정확히 반대편에 자리한다.
빚으로 쌓은 바벨탑의 나라, 대한민국
윤 정부의 대출확대 정책이 진정으로 근심스러운 건 이미 대한민국이 가계부채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34개 나라(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2.2%로 단연 높았다. 이어 홍콩(95.1%), 태국(85.7%), 영국(81.6%), 미국(73.0%), 말레이시아(66.1%), 일본(65.2%), 중국(63.6%), 유로 지역(55.8%), 싱가포르(48.2%)가 10위 안에 들었다. 아래 그래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충격적인 건 대한민국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가계 부채가 경제 규모(GDP)를 상회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1년 전인 작년 1분기와 비교할 때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이 105.5%에서 102.2%로 3.3%p 낮아진 대목이 위안이라 할 것인데 가계부채가 다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으니 이 위안 또한 금방 사라질 듯 싶다.
미국은 성공한 가계부채 다이어트, 한국은 요원한가?
가계부채를 디레버리징하는 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가계부채 다이어트에 성공한 나라가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2008년 GDP대비 100%에 육박하던 가계부채를 73%까지 줄인 경험이 있다. 아래 그래프가 GDP대비 미국 가계부채 추이를 잘 보여준다.

출처 : 국제결재은행
반면 아래 그래프가 극명히 보여주듯 2000년 무렵 GDP대비 50%언저리이던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끝도 없이 우상향을 거듭해 100%를 가볍게 넘는 지경에 도달했다.

출처 : 국제결재은행
따지고 보면 지난 20여년 동안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의 폭발적 성장은 천문학적인 가계부채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가계부채로 쌓아올린 자산의 바벨탑이었다. 성서의 바벨탑은 무너졌고, 빚더미 위에 우뚝 솟은 자산의 바벨탑도 위태롭기만 하다. 부채의 산을 낮춰야 할 의무가 있는 윤 정부는 오히려 부채를 늘려 부채를 갚고, 부채를 통해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저지하는 데만 온통 혈안이 돼 있다. 부채의 시한폭탄은 오늘도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부채의 시한폭탄이 총선 이후에 터지면 윤 정부는 성공한 것일까?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