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환율·고금리’ 3종 세트 쓰나미가 닥쳤다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예상을 상회하면서 미 연준의 기준금리 6월 인하설이 완전히 물건너가자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국채금리도 상승하는 등 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조합은 가뜩이나 휘청거리는 국민경제의 숨통을 조이는 악재다. 트리플 조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주목된다.
한국은행은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고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3%대에 이르고, 특히 생활물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게 결정의 근거다. 더구나 미국이 금리 인하를 늦추고 있는 마당에 굳이 앞서 외국인 자금 유출과 환율 불안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 CPI쇼크가 야기한 환율의 폭등
미국 3월 CPI가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면서 시장참여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미국 노동부는 10일(현지시간)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헤드라인 CPI는 전월대비 0.4%(예상치 +0.3%, 전월치 +0.4%) 상승해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 특히 근원에서 주거비를 제외한 서비스물가가 전월비 0.8% 오르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연준의 고금리 기조 유지와 양적 긴축 등에 힘입어 꺾이는 듯하던 CPI 상승률은 △1월 3.1% △2월 3.2% △3월 3.5%로 올해 들어 고개를 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노동시장 상황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미국은 3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30만 3000명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20만명 증가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한-미 소비자물가 지수 및 기준금리 추이
물가 관련 지표들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어렵게 만드는 데 더해 CPI마저 시장의 예상을 배반하면서 시장에선 연준이 6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 시장은 이날 미 증시 마감 무렵 연준이 6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5.25∼5.50%로 동결할 확률을 83%로 반영했다. 하루 전만 해도 이 확률은 43%에 머물렀다. 7월 회의에서도 금리를 동결할 확률도 전날 25%에서 이날 59%로 치솟았다.
물가 관련 지표들의 급등으로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자꾸 뒤로 미뤄지고 인하 폭 관련 전망도 보수적으로 바뀌자 당장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고 있다.
11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9.2원 오른 1364.1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10.1원 상승한 1365.0원으로 출발했다. 장중 소폭 내리며 1360원대 중반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22년 11월 10일(1378.5원) 이후 17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당시는 김진태 발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발작이 일어나던 때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연기 전망에 국채수익률도 우상향 중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연기 전망이 강해지자, 환율만 폭등하는 것이 아니라 국채 수익률도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10일(현지시간) 오후 3시 50분께 4.55%로 전날 뉴욕증시 마감 무렵(4.36%) 대비 19bp(1bp=0.01%포인트) 급등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통화정책 변화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같은 시간 4.96%로 전날 뉴욕증시 마감 무렵(4.73%) 대비 23bp 급등했다.
미 국채수익률, 출처: Investing.com
미국의 국채 수익률이 우상향 중인데 한국의 국채 수익률이 제자리를 지킬 리 없다. 한국의 국채 수익률도 상승 중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금리의 근간이자 토대라 할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 시장금리도 들썩일 수밖에 없다.
한국 국채수익률, 출처 : Investing.com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의 습격 가뜩이나 허약한 경제 숨통 조여
한은의 이날 기준금리 3.5%를 유지함으로써 지난해 1월 말부터 14개월 동안 10회 연속 동결했다. 이는 물가·가계부채·부동산 PF·경제성장률 등 상충적 요소들이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 경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만신창이 신세로 전락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무역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누적되고 있고 필요한 재정지출을 죄다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자 감세로 국가재정은 너덜너덜해졌다. 물가는 뛰고 금리도 뛴다. 모든 지표가 뛰는데 경제성장률만 바닥을 긴다.
한마디로 한국경제는 혼수상태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미국발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트리플 악재가 쓰나미처럼 몰려왔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치고 눈 위에 서리가 쌓인다더니 한국 경제가 딱 그런 상황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