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부동산PF 구조조정에 과감히 나서라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금융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과 연체율이 모두 빠르게 상승하는 등 부동산PF의 부실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복현 금감원장이 부동산PF부실사업장 정리를 시사하고 나서 주목된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PF부실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이 아닌 만기연장 등 미봉책으로 부동산PF 위기를 유예시키는데 골몰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부동산PF시장에 쌓인 부실을 정리하고 부동산PF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자기책임원칙’을 강조하며 부동산PF부실정리를 시사한 이복현 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마침내 부동산PF부실정리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 원장은 12일 ‘금융감독원장-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금융 사이드에서는 옥석가리기와 관련해 옥으로 판명되는 사업장이라든가 회사에 대해서는 유동성 공급이 잘 지원될 수 있도록 협력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규제 완화 등 조치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업성이 미비한 사업장이나 재무적 영속성에 문제가 있는 건설사·금융사의 경우에는 시장원칙에 따라 적절한 조정·정리, 자구노력, 손실부담 등을 전제로 한 자기 책임 원칙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부동산PF 부실 정리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낸 건 윤석열 정부에서 이 원장의 발언이 사실상 처음이다. 그간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대주단 협약을 통한 만기 연장 등을 통해 부동산 PF 부실을 이연해왔다.
또한 이 원장은 “최근 감독당국 내에서 그런(자기 책임 원칙 등) 것들에 대한 기본 원칙을 강하게 확인하는 논의가 있었다”면서 “감독당국이 이미 갖고 있는 30조 상당의 시장조성 프로그램을 사용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지만 시장 원리에 따라 특정 사업장과 안건이 정리될 때 시장 원칙을 훼손하는 방법으로 개입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금감원장이 부실정리를 언급할 정도로 상태가 나쁜 부동산PF
앞서 지난 9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금융권이 21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PF 정상화 펀드를 조성하고 부실 사업장에 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바가 있을만큼 부동산PF 구하기에 진심이던 게 윤석열 정부다.
그랬던 윤 정부의 금감원장이 부동산PF 부실 정리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는 건 부동산PF 시장의 부실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말 1%대 초반에 불과했던 부동산 PF 연체율이 2%대 중반까지 오르는 등 부동산PF시장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9월 말 기준 2.42%로 6월 말(2.17%) 대비 0.24%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1.19%) 대비로는 무려 1.23%포인트 오른 것이다. 대출 잔액도 134조 30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1조 2000억 원 늘었다.

미봉책이 아니라 강도높은 구조조정만이 부동산PF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길
부동산PF 사업은 분양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부동산 시장의 2차 조정이 본격화되고 분양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는 시간문제일 뿐 반드시 탈이 나게 마련이다.
예컨대 지금 부동산PF시장에 있는 많은 사업장들은 이른바 브릿지론(시행사가 사업 초기 사업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금융사에서 대출을 일으키는 단계)에 머문 채 본PF(시공사가 선정돼 착공한 후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브릿지론 단계는 리스크가 훨씬 크기 때문에 금리가 대략 17%내외에 이를 정도로 고금리인데, 본PF단계로 돌입하면 사업이 궤도에 오른 것으로 평가되는 터라 금리가 7%내외로 떨어지고, 통상 저리의 본PF대출을 일으켜 고리의 브릿지론을 상환하는게 업계 관행이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 전망이 극단적으로 어둡다 보니 브릿지론 단계에서 본PF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 사업장이 너무 많은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브릿지론 단계에서 멈춘 사업장들의 대출 만기를 연장시켜주고 이자도 본PF 이후에 일시상환하는 식의 미봉책을 투사한 바 있는데, 이게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만일 윤 정부의 브릿지론 이자를 본PF 이후에 상환하는 식의 미봉책이 아니었다면 부동산PF 연체율은 2.4%를 아득히 상회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름이 살이 되지 않듯 부실 부동산PF는 단호한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원금과 이자를 유예하고, 정책 자금들을 밀어넣어 봐야 부실의 규모만 커지고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확률만 높아진다.
때마침 이복현 금감원장이 ‘자기책임원칙’을 운운하며 부동산PF 부실 정리를 시사하고 나섰으니 한 번 기대해 보겠다. 가뜩이나 세간에선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에겐 시장경제의 ‘자기책임원칙’을 가혹하게 적용하면서도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에겐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혜택과 지원을 퍼붓고 있다는 의혹이 짙게 퍼져있다. 이 원장이 부실 부동산PF 사업장들을 단호하게 구조조정한다면 세간의 그런 의혹도 한결 옅어질 것이다. 부실 부동산PF 사업장도 정리하고 여론도 일정 정도 돌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가 이 원장에게 찾아왔다. 그가 이 기회를 잡을 역량과 의지가 있는지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