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기업도 가계도 쓸 돈이 없는데 정부마저 지갑을 닫겠다니




기업도 가계도 쓸 돈이 없는데 정부마저 지갑을 닫겠다니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국세 수입이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세수를 늘릴 생각은 전혀 없이 극도의 긴축재정 기조만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역대급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가계는 빚더미에 짓눌려 소비할 여력이 없고, 기업들도 불확실한 경기전망에 투자할 의욕을 잃은 상태다. 무역수지와 가계소비와 기업투자가 전부 부진하다면 정부라도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쳐 경기를 지탱해야 하는데 윤 정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추경 예산 편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년 예산 증가율도 3~4% 이하로 낮출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총지출 예산 증가율 5.1%와 비교해 절반 가까이 낮아지는 증가율이다. 이럴 경우 내년 총지출 예산은 660조 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올해 총지출 예산은 638조 7000억 원이다.

 
 

국가예산 추이

 

 

기재부는 이를 위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20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평년의 지출 구조조정 규모는 10조 원 안팎이었다.

기재부는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강력한 재정긴축 지시 이후 각 부처의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조정실장 회의를 소집해 지난 5월 제출했던 내년 예산안을 다시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작년 동기 보다 36조원 이상 덜 걷힌 국세수입

기재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5월 국세수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세수입은 160조 2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점 대비 무려 36조 4000억 원 감소했다. 5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가장 큰 폭 세수 감소다.

또한 5월 국세수입 예산 대비 진도율은 40%에 그쳤다. 이는 정부가 관련 수치를 보유한 2000년 이후 가장 낮다. 지난해 5월의 49.7%, 최근 5년 평균 5월 진도율 47.5%보다 많이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5월 이후 연말까지 작년과 똑같은 수준의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400조 5000억 원) 대비 41조 원 이상 부족하다. 그것도 5월 이후 연말까지 작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세금을 걷는다는 가정 하에서 추산한 것이기 때문에 연말 기준 세수 결손은 41조 원을 훌쩍 넘을 가능성이 높다.
 

국세수입 현황

 


세수가 이렇게 펑크가 난데에는 법인세의 기여(?)가 크다. 법인세는 5월까지 누적으로 43조 6000억 원으로 작년 같은 시점보다 17조 3000억 원( 28.4%)이나 덜 걷혔다. 작년 대비 전체 세수 감소 폭인 36조 4000억 원의 거의 절반이 법인세의 몫이다. 또한 소득세는 1∼5월에 51조 2000억 원이 걷혔다. 1년 전과 대비하면 9조 6000억 원(15.8%)이 덜 걷힌 것이다. 법인세가 급감한 데에는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격감한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소득세의 급감은 부동산 양도소득세의 격감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부가가치세는 5월까지 3조 8000억 원 덜 걷혔다.  국세수입 현황 그래프는 전년 동기 대비 세목별 감소 현황을 잘 보여준다.

한편 정부는 5월까지 실질적인 세수 감소분이 36조 4000억 원이 아닌 26조 2000억 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하반기 세정 지원 이연세수 감소 등에서 발생한 기저효과 10조 2000억 원을 빼야 한다는 것이 정부 주장의 요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6월이나 7월은 세수 상황에 개선 여지가 있지만 8월 법인세 중간예납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면서 “정부는 올해 세수를 재추계해 8월 말 또는 9월 초에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갑을 열 생각이 전혀 없는 윤 정부

국세수입이 격감하는 마당에 윤석열 정부는 세수를 늘릴 방법을 찾거나 경기를 활성화시켜 세수기반을 넓힐 생각은커녕 정부 재정을 더 긴축적으로 가져갈 것을 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28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 모두발언에서 “인기 없는 긴축 재정, 건전 재정을 좋아할 정치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정치적 야욕이 아니라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긴축·건전 재정이 지금 불가피하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날 회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간 재정 운용 성과를 평가하고, 2023∼2027년 중기재정운용과 2024년도 예산 편성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전 정부의 무분별한 방만 재정을 건전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며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했고, 무분별한 현금 살포와 정치 포퓰리즘 배격으로 절감한 재원으로 진정한 약자복지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여전히 재정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빚을 내서라도 현금성 재정 지출을 늘려야 된다고 주장한다”며 “이것은 전형적인 미래세대 약탈이므로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윤 대통령은 “말도 안 되는 정치 보조금은 없애야 한다”며 “경제 보조금은 살리고, 사회 보조금은 효율화·합리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에 이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임기 말까지 건전 재정 기조를 흔들림 없이 견지하고, 세수 부족이 있더라도 올해는 적자국채 발행 없이 즉 추경 없이 재정을 운영하고, 내년 이후 국정운영 필수 소요는 차질 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구구절절 평가할 가치는 없다. 다만 윤 대통령의 국가재정에 대한 인식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돈 안 쓰는 것이 지고의 선이다’정도 될 듯싶다. 재정을 쓸 필요가 없다고 확신해서인지, 재벌과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세수가 줄어드니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정부 지출규모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윤 대통령이 세수를 늘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세수증대는커녕 세수부족분을 국채를 발행해서 보전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이 추 부총리의 발언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경기침체기에 긴축재정을 단행하는 정부가 있었나?

윤 대통령과 추 부총리 등이 금과옥조처럼 모시는 재정 건전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올해 1%대 성장이 확실시되는 대한민국 경제를 생각할 때 윤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는 납득하기 어렵다. 경제학 교과서도 경기침체 시에는 정부가 적극적 재정정책을 사용해 경기를 부양하라고 가르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기침체가 도래했을 때 지갑을 닫은 정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연도별 예산증가율

연도별 총지출 예산 증가율

 


주지하다피시 국민소득은 정부의 재정지출과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와 경상수지의 합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지금 가계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GDP대비 100%가 훨씬 넘는 가계부채와 고금리와 고물가에 짓눌려 소비를 할 여력이 전혀 없으며, 기업은 영업이익이 격감한데 더해 장래의 불확실성 탓에 투자할 의욕이 사라졌고, 올해 들어 누적된 무역적자가 290억 4400만 달러(연간 기준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무역적자 478억 달러의 60.8%에 해당)에 달할 정도로 경상수지도 악화일로다. 따라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경제주체는 정부뿐이다.

한데 참으로 놀랍게도 입만 열면 성장을 외치는 윤석열 정부는 성장을 위해서라도 정부 재정지출을 늘려야 할 시기에 오히려 지갑을 닫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경기라는 것이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수축의 시기를 잘 견디면 확장국면이 도래하기 마련이다. 확장국면이 도래하면 가계소비도 늘고, 기업 투자도 늘며, 경상수지도 호전된다. 그럴 때는 정부가 돈을 풀 필요가 없다. 관건은 경기수축국면을 경제주체들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다. 기이하게도 윤 정부는 그런 역할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겨울이 지나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경기 사이클에 놓인 가계와 기업이 자연스럽게 경기수축 국면을 지나 확장국면에 진입하는 건 결코 아니다. 정부가 경기 수축국면에서 일종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많은 가계와 기업이 질식사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가계와 기업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생각이 도통 없는 것 같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정부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년 7월 2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