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강 영끌족’ 사면초가…현혹시킨 언론은 책임 없나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부동산 시장 2차 대세하락이 진행 중인 가운데 특히 대세상승의 막바지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뛰어든 이른바 ‘영끌족’이 궤멸적 타격을 입고 있다. ‘영끌족’의 성지라 불리는 노·도·강(노원구, 도봉구, 강북구)에 위치한 아파트 가운데 고점 대비 40%넘게 폭락하는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금리도 좀체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터라 이들은 사면초가 상태에 놓였다.
물론 주택 구입은 본인의 선택이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영끌족’이 대세상승의 막바지 혹은 대세하락의 초입에 주택구입을 결심한 데에는 ‘오늘이 제일 싸다’, ‘시장이 상승추세로 전환했다’며 그들을 세뇌시키고 현혹시킨 레거시 미디어와 유투버들의 책임도 크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주로 2030세대인 ‘영끌족’들이 투기에 쉽게 현혹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누칼협’? …영끌의 성지라던 ‘노도강’은 지금 피바다
1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기침체와 고금리 기조 지속 등으로 인해 ‘노도강’ 지역 집값이 고점 대비 40% 넘게 폭락한 곳이 속출 중이다. 아울러 경매물건도 쏟아지고 있다.
‘노도강’은 서울 25개구 중에선 주택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데다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단지들이 많아 주로 2030세대로 구성된 ‘영끌족’이 대세상승 막바지에 집중적으로 매수한 지역이다.
대부분 상투 혹은 눈썹에서 주택을 구입했을 ‘영끌족’은 녹아내리는 집값에다, 이자 폭탄의 협공에 신음 중이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에는 ‘영끌족’의 사연과 하소연이 가득하지만, 이들에 대한 냉담한 반응도 많다.
대표적인 게 ‘누칼협’이다. ‘누칼협’은 ‘누가 그거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를 줄인 신조어로, 본디 온라인 게임판에서 쓰이던 용어였는데 투자의 세계로 진입했다. 물론 이 말에도 일리는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주택을 구입하는 결정은 개별 가계가 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그것이 이익이건 손실이건, 개별 가계가 책임지는 것이 온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끌족’이 대세상승의 막바지에 영끌을 하도록 결심하게 만든 데에는 레거시 미디어와 유투버들의 책임도 엄청나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건 불공정한 일이다.
영끌족에 투기 부추기던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버들은 무죄?
복기해 보면 참여정부 당시에도 참여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종이신문 등의 레거시(legacy) 미디어였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줄기차게 탄핵하고(대표적인 게 ‘세금폭탄론’과 ‘공급부족론’이다) 투기심리를 시장참여자들에게 전파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레거시 미디어들의 여론조작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부동산 대책의 효과를 반감시켰고, 참여정부가 끝난 후에는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정부라는 낙인을 찍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기와 비교하면 참여정부 당시의 미디어 환경은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종이신문과 종편 등의 레거시 미디어에 더해 포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메신저 등의 뉴미디어가 일치단결해 시장참여자들을 잠재적인 부동산 투기꾼으로 만들고 있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는 부동산 관련 각종 통계와 정보, 프레임(예컨대 서울 새 아파트 부족론, 똘똘한 1채론, 비규제지역 투자론, 인허가·착공 감소로 인한 향후 주택공급부족론 등), 투기기법(예컨대, 갭투기 방법 및 임대사업자, 법인, 신탁, 증여 등을 통한 투기와 세금탈루 방법 소개 등), 투자대상(이른바 투기원정대가 공략할 만한 위치와 규모와 가격대의 아파트 단지를 소개)의 생성, 유통, 소비 체인을 사이좋게 분점하면서 시장참여자들을 투기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지난 2021년 3월 당시 서울 지역 아파트의 1년간 가격 상승률. 노원 도봉 강북구 지역의 상승률이 강남4구를 압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픽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시장참여자들의 눈과 귀와 뇌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마당이니 시장참여자들이 ‘내일이면 늦으리’를 외치며 시장에 계속 뛰어드는 건 당연지사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에 세뇌된 시장참여자들의 부동산 구매가 시장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면, 과열된 시장을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열심히 보도한다. 이런 보도는 시장참여자들의 투심(投心)을 재차 자극하며 부동산 구매를 재촉한다. 이렇게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가 합작해 세운 영겁회귀와도 같은 부동산 투기의 물레방아는 오늘도 돌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한다. 이건 내 생각이라고. 하지만 자기만의 생각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의 생각은 실상은 권위 있는 누군가의 판단이거나 의지할 만한 레퍼런스의 의견이다. 피 같은 돈을 투자하는 투자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 한국사회의 비극은 시장참여자들의 투자에 관한 생각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90% 이상이 불로소득을 예찬하고, 부동산 투기를 권장한다는 데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비웃음을 사고 있는 ‘영끌족’도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버 등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일 수 있다. 2019~2021년 당시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벼락거지’로 조롱하며 ‘지금 빚내서 투자 안 하면 바보’라는 콘텐츠를 주야장천 만들어 유통시키던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버 등은 현재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어떤 반성도 없다. ‘오늘이 가장 싸다’며 마치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무주택자들을 조바심하게 만들던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버 중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등으로 투기가 필요 없는 세상 만들어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버 등은 언제나 투기를 부추기고 권장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선동에 현혹당할 사람들은 늘 널려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건 2030 세대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투기에 현혹당할 필요를 덜 느끼게 대한민국을 재편해야 한다.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시장소득 이외의 소득을 정부에서 보장받고, 주거를 시장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금융에 대한 접근성도 권리 차원에서 바라 볼 수 있다면 투기의 유혹에 견디는 힘이 한결 강해질 것은 자명하다.
토지보유세 등을 재원으로 하는 전 국민 기본소득, 중산층도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기본주택, 일인당 1천만원씩을 신용 1등급으로 은행에서 대출하는 기본금융 등이 제도적으로 안착된다고 해보자. 투기를 부추기고 선동하는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버 등의 속삭임이 아무리 달콤하다 해도 주권자의 압도적 다수는 그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투기를 이길 수 있는 힘은 마음 수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서 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