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인가? ‘1기 신도시 특혜법’인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인가? ‘1기 신도시 특혜법’인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경기 고양·분당 등 1기 신도시의 정비 사업을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게 하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안전진단 완화 및 용적률 상향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이 법안이 여야의 협치(?)를 통해 소위를 통과한 건 내년 총선이 임박한 까닭이다. 하지만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은 표만을 의식한 1기 신도시 특혜법에 가깝다. 


안전진단 완화 및 용적률 상향이 골자인 ‘노후계획 도시 특별법’

여야는 11월 29일 국회 국토법안소위에서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등 택지조성사업을 마치고 20년이 넘은 100만㎡ 이상 택지에 대해 정비사업의 ‘첫 관문’인 안전 진단 규제를 완화하고 용적률 특례를 제공하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1기 신도시의 평균 용적률은 169∼226%로, 법정 용적률 상한선을 거의 다 채웠다.

이에 따라 특별법이 이대로 제정되면 정부는 2종 주거지역을 3종 주거지역으로, 3종 주거지역은 준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으로 변경해 곳에 따라 최대 500%까지 용적률을 높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현재 15∼20층인 아파트를 30층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본디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은 처리가 지지부진했으나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힘을 모아 처리에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이 ‘1기 신도시 특혜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여야가 협치에 열중인 까닭은 1기 신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표를 의식해서다.

한편 국토부는 특별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12월 중엔 법 집행에 필요한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 예고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중에는 정비사업을 가장 먼저 진행하는 선도 지구가 선정된다.


타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이번에 국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은 치명적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타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다. 

앞에서 말했듯이 특별법 적용 대상이 되는 ‘노후계획도시’는 택지조성사업을 마치고 20년이 넘은 면적 100만㎡ 이상 택지다. 1기 신도시를 비롯해 서울 상계·중계·목동·개포, 경기 고양 화정, 수원 영통, 인천 연수, 부산 해운대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열거된 곳들만이 재건축 등을 추진할 때 안전진단 완화 및 용적률 상향의 특혜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법 적용 대상이 되는 ‘노후계획도시’이외의  지역에서도 안전진단 완화 및 용적률 상향 혜택을 달라고 떼를 지어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 들어 줄 것인가? 아니면 ‘너희들은 안 된다’고 말할 것인가? 안 된다면 어떤 근거와 명분을 들이밀 것인가? 모든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 용적률 500%를 부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면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시민들이 흔히 간과하지만, 용적률은 사회전체의 재산이라는 성격과 미래세대의 재산이라는 성격이 중첩되어 있다. 특정지역과 현 세대가 독식할 수 있는 성격의 재화가 아니다. 용적률을 사유재산처럼 인식하는 건 대한민국의 특수성이다. 


용적률 높이면 기존 도시기반시설이 감당할 수 있을까?

1기 신도시 등에 용적률 500%를 부여할 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도시기능의 교란이다. 현재 1기 신도시 안에는 대략 30만호의 주택이 들어가 있고 거기에 상응하는 상하수도, 전기, 가스, 도로, 통신, 철도 등의 기반시설이 계획되고 건설됐다. 그런데 만약 1기 신도시에 용적률 500%를 부여해 30만호를 훨씬 상회하는 가구들이 들어선다면 30만호 가량을 예상하고 구축됐던 도시기반시설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가 도시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애초 계획됐던 인구 수를 크게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구가 통제되어야 한다. 도시에 애초 계획됐던 인구를 아득히 상회하는 인구를 집어넣겠다는 생각은 도시기능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사실상의 ‘1기 신도시 특혜법’은 탐욕의 결정판

기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은 ‘1기 신도시 특혜법’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온당하다. 그리고 ‘1시 신도시 특혜법’에는 대한민국을 망국으로 몰고 가고 있는 음험한 욕망이 집결해 있다. 

‘1기 신도시 특혜법’의 핵심은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분담금을 낮출 욕심에 용적률 상향을 줄기차게 요구한 것이고, 여야는 그들의 표를 얻을 욕심에 용적률이라는 사회전체의 재산이자 미래세대의 재산을 교환선물로 내놓은 것이다.

거기에는 대한민국이 반드시 완화시켜야 할 자산불평등도, 강력히 추진해야 할 국토균형발전도, 바람직한 도시계획도 담겨 있지 않다. 오직 자기 돈을 최대한 적게 들여 새집을 갖고 싶다는 집합적 욕망과 그 집합적 욕망을 표로 환원하는 정치권의 음험한 욕망만이 또아리를 틀고 있을 따름이다. 겨울  바람이 더 차게 느껴진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년 12월 2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