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매정하게 들리겠지만…한계기업 정리할 때 됐다

 

 

 

매정하게 들리겠지만…한계기업 정리할 때 됐다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부채 쓰나미가 대한민국에 밀어닥치고 있다.

강력한 긴축적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율이 여전히 주요 34개국 중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경제의 가장 치명적 뇌관이라 할 가계부채 문제가 좀체 나아지고 있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부채는 증가 속도가 세계 4위에 오를 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 격으로 금융권의 연체율 역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가계부채가 GDP를 넘는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2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34개 나라(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2.2%로 가장 높았다. 충격적인 것은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만이 가계부채 규모가 경제 규모(GDP)를 상회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 이어 홍콩(95.1%), 태국(85.7%), 영국(81.6%), 미국(73.0%), 말레이시아(66.1%), 일본(65.2%), 중국(63.6%), 유로 지역(55.8%), 싱가포르(48.2%)가 뒤를 이었다.

희망의 불씨가 없는 것은 아니다. 1년 전인 작년 1분기와 비교하면,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은 105.5%에서 102.2%로 3.3%p 낮아졌는데, 이 하락 폭은 주요국 중 여섯 번째에 해당한다. 긴축적 통화정책 효과가 일부 발휘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너무 빠르게 상승 중인 기업부채

가계부채만 문제가 아니다. 가계부채는 줄기라도 했지, 기업부채는 되레 더 증가했다. GDP 대비 한국 비(非)금융기업의 부채비율은 1분기 현재 118.4%로 홍콩(269.0%), 중국(163.7%), 싱가포르(126.0%)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기업들의 부채비율 상승 폭이 34개국 중 4위에 해당할 정도로 가팔랐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세계적 긴축 기조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기업 부채비율이 거꾸로 높아진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10개국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대목은 정부 부문 부채 지표다. 정부 부문 부채의 GDP 대비 비율(44.1%)은 22위, 1년간 정부 부채비율 등락 폭(-3.2%p·47.3→44.1%)은 18위로 모두 중하위권에 해당한다.


설상가상으로 불어나는 금융권 연체율, 다시 증가하는 대출

국민경제가 부채에 깔려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가장 치명적이라 할 연체율도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4월 말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평균 0.304%로 집계됐다. 3월(0.272%)보다 0.032%p 올랐을 뿐 아니라, 지난해 같은 달(0.186%)과 비교하면 0.118%p나 높다. 대출 주체별로 나눠보면 가계(0.270%)와 기업(0.328%) 연체율은 한 달 사이 각 0.032%p, 0.034%p 올랐고 1년 새 각 0.116%p, 0.118%p 상승했다.

은행별 내부 집계에 따르면 현재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 비율 등은 이미 3∼5년 만에 최고 수준이고, “국내 대출 특성상 변동금리 비중이 커 작년 하반기 급등한 금리에 따른 직접적 상환 부담은 올해 2분기 이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은행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연체율이 더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건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이 모두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사실이다.

한은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52조 3000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2조 3000억 원 늘었는데, 이는 4개월 만의 반등이다. 기업대출의 증가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 중이다. 5대 은행의 25일 현재 기업대출 잔액(725조 6767억 원)은 4월 말보다 5조 5989억 원이나 불었다. 기업대출 잔액은 올해 1월 이후 5개월 연속 늘었을 뿐 아니라, 이달 증가 폭이 1∼4월의 3조 3193억∼5조 4031억 원보다 크다.


부동산 시장 하향 안정화 등 가계부채 축소에 총력 쏟아야

한은이 최근 1960∼2020년 39개 국가 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가계부채 증가가 GDP 성장률과 경기침체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결과,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3년 누적)이 1%p 오르면 4∼5년 시차를 두고 GDP 성장률(3년 누적)은 0.25∼0.28%p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가계신용이 늘어나면 3∼5년 시차를 두고 ‘경기 침체'(연간 GDP 성장률 마이너스)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는데, 특히 가계신용 비율이 80%를 넘는 경우에는 경기침체 (recession) 발생 확률이 더 높았다. 사실 과도한 가계부채가 나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100%를 초과한 가계부채를 최소 80% 아래로 끌어내리는 건 지난한 일이나, 피해서는 안될 일이다. 가계부채의 획기적 축소를 위해서는 우선 가계부채의 주된 원인인 부동산 시장의 하향 안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른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에 대한 빚투를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 대출관리가 긴요하다. 또한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대출이 가계부채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공평과세와 2차 분배와 적극적 복지정책을 통한 내수 활성화가 긴급히 요구된다.

기업대출의 폭발적 증가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한계기업의 생명 연장을 위한 대출이 주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박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자보상배율 1이 되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은 대출을 통해 좀비기업으로 연명시킬 것이 아니라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옳다. 시간이 지난다고 고름이 살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계만 상대로 과단성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한계기업들을 상대로도 과단성을 보여줘야 한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기업대출은 그럴 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년 5월 30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