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리인하 지연의 진원은 ‘슈퍼근원물가’ 급등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많은 자산시장참여자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전망이 자꾸 뒤로 밀리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미국의 물가관련 지표들이 시장의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건 식료품과 에너지, 주거비를 제외한 이른바 슈퍼근원물가지수의 상승세다. 근원물가지수보다 서비스물가의 등락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 이 슈퍼근원물가지수가 2022년 4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강력한 금리인상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조함을 의미한다. 서비스물가 상승률이 인플레이션의 본진이라 할 때 연준의 조속한 기준금리 인하 결정은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리는 듯한 신호들이 감지되자 시장금리의 근간이라 할 미 국채수익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여전히 매우 견조한 미국의 물가상승세, CPI와 PPI 모두 시장전망치 웃돌아
미 노동부가 지난 13일(현지시간)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CPI) 보고서에 따르면 1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전월 상승률(3.4%) 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월가가 집계한 예상치 2.9%는 웃돌았다. 전월 대비로는 0.3% 올랐는데, 이 역시 시장 예상치인 0.2%보다 높았다.
또한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9%, 전월 대비 0.4% 각각 상승했다. 이 또한 시장예상치(3.7%, 0.3%)를 웃돌았다.
CPI가 상승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주거비다. CPI 가중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전월보다 0.6% 올랐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6%나 폭등했다. 미 노동부는 주거비가 CPI 상승분의 3분의 2 이상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물가상승세는 소비자물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노동부는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계절 조정 기준으로 전월 대비 0.3% 상승하며 5개월 내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0.1% 상승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슈퍼근원물가지수 2022년 4월 이후 최대폭 상승
미국의 물가상승세가 CPI와 PPI를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데 더해 연준을 비롯한 경제전문가들의 관심을 모으는 지표가 더 있으니 이른바 ‘슈퍼근원물가지수’다. ‘슈퍼근원물가지수’는 각 구성요소 중 인건비의 비중이 커 고용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이다. 예컨대 이발사나 변호사, 배관공 같은 서비스 이용료가 크게 반영된다. 통상 ‘슈퍼근원물가지수’는 서비스물가의 흐름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평가된다.
마켓워치 계산에 따르면 1월 ‘슈퍼근원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0.9% 올라 2022년 4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나타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4.4% 오르며 8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서비스물가지수의 흐름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슈퍼근원물가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것은 연준의 긴축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의 본진이라 할 서비스물가는 잡히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슈퍼근원물가지수’를 주시하는 까닭이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미 국채수익률 곡선, 출처 : 인베스팅닷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짐에 따라 고개를 드는 미 국채수익률
물가 관련 지표들의 폭주(?)로 인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예상시점이 점점 뒤로 밀리자 꺾이는 듯하던 미 국채수익률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미 국채시장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 할 10년물은 얼마전까지 수익률이 4% 아래에 있었는데 어느새 4.3%를 터치 중이다. 장단기물 수익률이 모두 고개를 들고 있다. 미 국채수익률이 시장금리의 토대임을 감안할 때 이는 심상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물가, 파도가 아닌 바람을 봐야할 때
연준이 기준금리를 언제, 얼마만큼 내릴지는 누구도 모른다. 연준 자신도 모를 것이다. 연준도 물가를 비롯한 거시지표들의 추이를 보면서 전망과 결심을 수시로 수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물가를 비롯한 거시지표들의 향방이다. 점쟁이처럼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시점과 인하폭을 예상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파도(금리)를 결정하는 건 바람(물가)이라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