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사고 폭증…유동성 확보에 올인 중인 HUG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전세보증사고와 분양보증사고가 폭증하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뒤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증책임을 진 HUG가 천문학적 금액을 대위변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문제에 봉착한 HUG는 법정자본금을 크게 늘리고 공사채를 직접 발행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올인 중이다. 하지만 HUG의 유동성 확보방안은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HUG의 유동성 확보에 매달릴 게 아니라 부동산 시장을 하향안정화시켜 HUG가 보증책임을 덜 지도록 유도해야 옳다.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등은 15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국제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일방적인 보증보험 취소를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2023.11.15. 연합뉴스
보증사고의 쓰나미에 사색이 된 주택도시보증공사
5일 HU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사고액은 4조 3347억 원, 사고 건수는 1만 9350건에 달한다. 1년새 무려 세입자 2만 명가량이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HUG에 대신 달라고 청구한 것이다. 한편 HUG가 지난해 세입자에게 내준 돈(대위변제액)은 3조 5540억 원이다. 모두 1만 6038가구가 HUG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충격적인 건 지난해 보증사고액이 전년(1조 1726억 원)보다 무려 3.7배나 많다는 사실이다. 당초 HUG가 예상한 연간 보증사고액 3조 8000억 원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다. HUG의 대위변제액은 2018년 583억 원에 불과했으나 2019년 2837억 원, 2020년 4415억 원, 2021년 5041억 원, 2022년 9241억 원으로 수직상승했다. 대위변제액이 5년 새 무려 61배나 폭증했다. HUG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HUG를 더 경악하게 만드는 건 HUG의 보증사고액이 2025년까지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전세보증사고만 HUG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분양보증사고도 HUG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 중단, 공정 지연 등으로 인한 보증사고 건수는 12건으로, 2012년(12건) 이후 11년 만에 가장 많았다. 사고 금액은 물경 8512억 6200만 원 규모였다. 직전 5년 동안의 보증사고 건수는 2018년 1건, 2019년 1건, 2020년 8건, 2021년 0건, 2022년 0건이다.
현행법상 30가구 이상의 주택 분양 사업장은 반드시 HUG 분양보증에 가입해야 한다. 이후 주채무자의 정상적인 주택 분양계획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일정 요건에 따라 보증사고 사업장으로 분류한다.
바야흐로 HUG가 전세보증사고와 분양보증사고의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진행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HUG의 시름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자본금 늘리고 공사채 발행하면 결국 부담은 국민에게 귀착돼
전세보증사고와 분양보증사고가 상상 이상으로 폭증하자 시장에선 HUG의 전세 보증보험 가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HUG의 보증배수를 현 70배에서 90배로 확대하고 법정자본금을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늘리는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작년 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HUG의 법정자본금을 늘린다는 건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되는 듯 싶다. 개정된 주택도시기금법 19조를 보면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
제19조(자본금 등) ① 공사의 자본금은 10조원으로 하고, 그 2분의 1 이상을 정부가 출자한다. <개정 2024. 1. 16.>
② 공사에 대하여 국가가 출자한 주식의 주주권은 국토교통부장관이 행사한다.
③ 제1항에 따라 공사가 발행할 주식의 종류, 1주의 금액,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정관으로 정한다.
④ 공사가 주식을 소각하거나 병합하여 자본감소를 결의하는 경우 「상법」 제439조제2항에도 불구하고 채권자에게 10일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이의를 제출할 것을 2개 이상의 일간신문(「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가목에 따른 일반일간신문을 말한다)에 공고할 수 있다. 이 경우 개별채권자에 대한 최고(催告)는 생략할 수 있다.
상기 조문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듯 HUG의 법정자본금이 10조 원으로 늘어난다는 건 정부가 HUG가 출자해야 하는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는 의미다. HUG의 법정자본금 중 2분의 1 이상을 정부가 출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을 보면 HUG의 주주현황을 알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자본금 및 주주현황, 출처 :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위의 자료를 보면 현재 HUG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70.25%를 가지고 있는 정부다. HUG와 국민은행도 적지 않는 지분을 들고 있지만 정부 앞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처지다. 결국 HUG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법정자본금을 10조 원으로 늘리고 납입자본금을 지금의 3조 6920억 원에서 크게 늘린다면 정부의 추가 출자금액이 엄청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부가 조세에서 출자금을 마련하건 조세 이외의 방법을 통해 출자금을 마련하건 종국적으로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귀착될 수 밖에 없다.
채권 직접 발행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HUG는 6일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정관으로는 주식 전환이 가능한 전환사채나 주식을 인수할 권리가 부여된 신주인수권부 사채만 발행할 수 있지만, 정관이 변경되면 공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HUG 관계자는 “이번 정관 변경은 자금 조달 통로를 열어 놓은 것”이라며 “당장 채권 발행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증사고의 추세를 볼 때 조만간 HUG는 채권을 발행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보증을 해서 이율이 낮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HUG가 발행한 채권의 원리금상환 부담분 역시 결국에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혜택의 축소 내지는 국민들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당장 분양보증이나 전세보증 등 보증상품의 이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을 하향 안정화시켜 보증사고 줄이는 게 최선
HUG가 보증한 전세 및 분양 관련해 사고가 발행하면 HUG가 유동성을 확보해 대위변제하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 HUG의 유동성을 늘리는 것은 부작용이 큰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해법은 보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의 하향안정화가 긴절하다. 전세건, 분양이건 보증사고의 압도적 다수가 부동산 시장의 대세상승기 끝물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HUG의 유동성 확보에만 올인하지 말고 부동산 시장의 하향안정화에 힘을 쏟아 보증사고의 발생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게 이런 주문을 하는 것이 부질 없음을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