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매 사태…연체기준 6개월로 늘리면 막아지나?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고금리와 대세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경매에 넘어가는 물건들이 흡사 눈사태처럼 쏟아지고 있다. 담보권 실행을 통한 임의경매 물건들이 11년만에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폭증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권 등이 담보가 설정된 물건을 임의경매에 넘길 수 있는 연체기준을 완화해 경매물건이 불어나는 속도를 늦추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헛된 시도일 뿐 아니라 부실만 더 키우는 어리석은 기획이다. 윤 정부는 차라리 이 기회를 활용해 시장가격에 비해 현저하게 저렴한 물건들을 매수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고민해야 옳다.
흡사 눈사태처럼 쏟아지고 있는 부동산 경매 건수
13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월 집합건물(아파트,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등)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총 5117건으로 전월(3910건)에 비해 무려 30.8% 늘어났다. 이는 2013년 1월(5407건) 이후 월간 기준 최다 기록이다.

경매/공매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 추이. 자료 : 법원 등기정보광장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가 대출금 회수를 위해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임의경매는 재판을 통해 판결문과 집행문으로 구성된 채무명의를 획득해야 신청할 수 있는 강제경매와 달리 재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신청할 수 있다.
작년 한 해 집합건물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는 총 3만 9059건으로 전년도(2만 4101건)에 비해 무려 62%나 급증했다. 더욱이 올해 들어서는 증가 추세가 훨씬 가팔라지고 있다. 작년 월평균 3000여 건이었던 신청 건수가 올해 1월 50000건으로 늘어날 정도다.
지난 1월 임의경매 개시결정등기 신청 건수를 지역별로 보면 경기가 1639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이 751건으로 전월보다 76%나 늘어났다. 서울(510건), 인천(363건)이 뒤를 이었다.
작년부터 폭증하던 임의경매 개시건수가 올해 들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는 까닭은 2년 이상 지속 중인 고금리에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이 겹친 탓으로 풀이된다. 현금 흐름이 원활한 주택소유자들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위 ‘영끌족’을 위시한 주택소유자들은 더 이상 소유 주택을 지킬 여력이 없다.
‘연체 일수’ 기준을 늘려준다고 경매에 갈 물건이 들어가나?
임의경매 물건이 쏟아지자 화들짝 놀란 윤석열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런데 그 대책이란 것이 언제나 그렇듯 폭탄돌리기에 불과하다.
금융위원회는 주택 경매를 신청할 수 있는 주담대 연체 기준을 설정해 10월 시행되는 ‘개인채무자보호법’의 시행령에 못 박을 방침이다. 현재는 주담대를 실행한 채무자의 대출 상환이 연체될 경우 금융사가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해당 주택을 경매로 넘길 수 있는데, 연체 기준과 관련한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금융사별로 2개월에서 6개월 등 자의적인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 연체기준을 일률적으로 6개월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이해불가인 것은 금융당국이 기한의 이익 상실 기준을 일률적으로 6개월로 늘리겠다고 천명하면서 내세운 근거가 연체 채무자의 주거권 보호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임의경매 신청부터 낙찰을 거쳐 명도까지는 유찰횟수에 따라 상이하긴 하나,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된다. 명도 전까진 그 누구도 연체 채무자를 길바닥으로 쫓아낼 수 없다. 따라서 연체기준을 현재의 2~6개월에서 6개월로 고정시킨들 연체 채무자의 주거권이 얼마나 두텁게 보호될지는 극히 회의적이다.
오히려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는 기간을 늘려줌으로써 부실만 더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이미 연체를 2개월 이상 한 채무자가 기한의 이익 상실 기간을 늘려준다고 해서 연체를 면할 확률은 현실적으로 매우 희박하다. 금융당국이 내세우는 연체 채무자의 주거권 보호 운운하는 소리는 당최 이치에 닿지 않아 보인다. 그 보단 총선 전까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으로 해석하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감정가 대비 낙폭 과대한 물건 정부가 매수해 공공임대로 활용이 타당
윤석열 정부는 부실만 더 키울 폭탄돌리기를 멈추고, 차제에 감정가 대비 낙폭이 과대한 물건들을 공공이 매수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감정가 대비 낙폭이 과대한 물건들을 공공이 매수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고 기존 연체 채무자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다면 그 길이 진정으로 연체 채무자의 주거권을 보호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한번 전향적으로 검토해 보기 바란다. 민생대책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