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특례대출, 저출산 대책으로 포장한 집값 부양책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윤석열 정부가 내년 신설하는 신생아 특례구입대출 공급 목표금액을 물경 27조 원 규모로 설정했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저출산 대책이라는 그럴싸한 미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올해 윤 정부가 집값 떠받치기의 일환으로 동원했던 특례보금자리론 및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후속작품이라는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 윤 정부가 진정 저출산이 염려된다면 낮은 이자를 미끼로 무주택자들에게 빚내 집 살 것을 권유할 것이 아니라 집값을 하향안정화시키고 양질의 공공임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백번 옳다.
신생아 특례구입대출로 내년에 27조원을 풀 결심한 윤 정부
지난달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4년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안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는 내년 주택구입자금 대출 소요 34조 9000억 원 중 26조 6000억 원이 신생아 특례대출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체 주택구입대출 수요 중 약 76%를 신생아 특례대출 수요로 예상하는 것이다. 전세자금 대출 규모도 엄청나다.

정부는 가계부채 폭등으로 인해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줄일 수 밖에 없게 되자 신생아 특례구입대출을 신설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은행 점포에 걸려있는 특례보금자리론 현수막. 2023. 1.30. 연합뉴스
예산정책처의 분석을 직접 인용해 보자!
“주택구입 · 전세자금(융자) 사업의 경우 신생아를 출산한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소득기준을 완화하는 신생아특례대출을 새롭게 추진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국토교통부는 2024년 주택구입자금 대출소요 34.9조원 중 26.6조원이 신생아특례 대출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전 · 월세자금 대출소요 22조원 중 7.6조원이 신생아특례대출, 전세사기피해가구 임차보증금대출 등에 소진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동 사업을 통해 주택 구입자금 8조 7670억 원, 전월세자금 3조 5975억 원을 직접 융자하는 한편, 그 외의 대출소요에 대해서는 시중은행을 통해 대응하되 이차보전 지원사업을 통해 직접 융자와 동일한 수준의 금리 적용이 이루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예산정책처는 신생아특례대출의 신설취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 하고 있다.
“신생아특례대출을 기존대출상품과 비교할 경우 소득요건이 상향되고 출산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이는 소득요건 상향을 통해 지원대상을 확대하되 실제로 아이를 출산한 가구로 지원대상을 한정하려는 취지로 판단된다.”
특기할 대목은 예산정책처가 신생아 특례대출이 소득 5개 분위 가운데 가장 높은 5분위 가구까지 포섭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연소득을 부부의 근로 · 연금소득 등 모든 종합소득(세전)을 합산하여 산정하도록 하고, 소득발생기간이 12개월 미만인 경우 1년 기준으로 환산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자산소득은 부부의 부동산, 일반자산, 자동차 등에서 부채를 차감하여 산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자산기준 5.06억원은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른 소득 5분위별 자산 및 부채현황 중 소득 4분위 가구의 평균값 이하로 설정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2)에 따르면 소득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분위 1323만 원, 2분위 3080만 원, 3분위 5036만 원, 4분위 7649만 원, 5분위 1억 4973만 원으로, 신생아특례대출의 연소득 상한선 1.3억 원은 4분위 가구의 평균값보다는 5분위 가구의 평균값에 가깝게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의 시행과 관련해서 혼인 여부 확인 등을 포함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합성이 높은 기준들이 보완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다만, 중요한 건 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목 하에 직접 융자와 시중은행에 대한 보전 등을 망라해(천문학적 세금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파격적인 저리로 주택 구입을 위한 수십조 원 규모의 대출상품을 출시한다는 사실이다. 아래 표에서 잘 알 수 있듯 신생아특례대출은 구입자금이건 전세자금이건 간에 기존의 대출 상품보다 소득, 대상주택, 대출한도, 소득별 금리 등의 모든 면에서 파격에 파격을 더한 상품이다.

주택구입, 전세자금 대출 개요 출처 : 국토교통부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 빈자리 신생아 특례대출이 메우나?
신생아특례대출은 대출신청일 기준 2년 이내 출산한 무주택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구입자금 대출의 경우 소득 1억3000만 원 이하 가구가 9억 원 이하 주택을 살 때 최대 5억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시중 금리보다 약 1~3%포인트 저렴한 연 1.6%~3.3%의 파격적 금리를 적용할 예정이다.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소득 1억 3000만 원 이하 가구가 수도권 5억 원, 지방 4억 원 이하 보증금 전세를 들어 갈 때 1.1~3.0%의 저리를 적용받게 된다.
만약 윤 정부의 계획대로 내년 27조 원에 육박하는 신생아특례구입대출과 8조 원에 가까운 신생아특례전세대출이 시장에 풀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물론 신생아 출산 등의 조건이 있기 때문에 예정금액이 전부 소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정금액 중 상당액만 판매된다고 해도 주택구매와 전세 양 날개에서 시장을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윤석열 정부가 집값 떠받치기의 주요 수단으로 동원한 정책수단이 특례보금자리론(목표 금액이 39조 6000억 원)과 50년 만기 주담대였다.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가 쌍끌이를 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반등을 견인한 바 있다. 하지만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로 인해 가뜩이나 임계점을 넘은 가계대출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닫자 윤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의 판매를 중단하고 50년 만기 주담대도 조였다. 그러자 시장은 마약을 끊은 환자처럼 기력을 잃었다.
한데 내년에 출시될 예정인 신생아 특례대출이 특례보금자리론과 50년 만기 주담대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염려된다.
진정한 저출산 대책은 집값의 하향안정과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대량 공급
윤석열 정부는 신생아특례대출이라는 상품의 출시에 저출산 대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런데 세금을 투입해 억지로 이자를 낮추고 저리에 대출을 해 줄테니 무주택 가구는 하루 속히 아이를 출산한 후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것이 무슨 저출산 대책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윤 정부에게 진정한 저출산 대책을 알려주겠다. 효과 만점의 저출산 대책은 집값을 지금보다 훨씬 떨어뜨리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국가재정을 집중 투입해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면 금상첨화다. 집값의 하향안정화와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대량 공급은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효과가 큰 저출산대책이다.
윤 정부는 이제라도 대출정책에서 집값 하향안정화와 양질의 공공임대 주택 대량 공급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기 바란다. 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이 아니라 집값 떠받치기에만 진심이라는 오해를 받기 싫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