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경매, 얼어붙은 청약시장…미 금리 인하 고대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집합건물의 12월 임의경매 건수가 근 10년 이래 최다를 기록하고 높은 경쟁률을 통해 완판됐던 서울 아파트 청약단지에서도 계약포기자가 속출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엄동설한을 방불케 하고 있다. 시장참여자들이 학수고대하는 건 미국 연준이 조속히 그리고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하해 통화완화의 훈풍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도 미치는 것이겠지만 연준 의사록이나 고용지표 등을 감안할 때 그게 그리 녹녹하지 않을 성 싶다.
10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집합건물 임의경매 건수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에서 임의경매 개시 결정 등기가 신청된 집합건물(아파트·다세대·오피스텔 등)은 388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4년 4월(4609건) 이후 9년 8개월 만에 월간 기준 최고치다. 특히 지난달 서울 임의경매는 163건으로 340건이었던 지난해 2월 이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판을 통한 채무명의가 필요한 강제경매와 달리 임의경매는 근저당권 등을 설정한 채권자가 바로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임의경매가 증가하는 주된 이유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한 2030 ‘영끌족’(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받은 사람들)들이 치솟는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거나 반환해야 할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하고 경매시장에 내몰린 탓으로 풀이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2030의 서울 아파트 매수 비율은 2010년대 말까지만 해도 20%대 중후반에 머물렀지만, 부동산시장이 상승기에 접어들던 2020년 하반기에는 40.2%까지 급증한 바 있다.
경매물건 건수만 급증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낙찰가율도 떨어지고 있다. 7일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80.1%로 지난해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 76.5%였던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다음달인 5월 81.1%를 기록하며 80%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86.3%까지 상승하며 줄곧 80%대에 머물렀지만 지난달 80.1%를 기록하며 다시 70%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선행지표 중 하나인 경매시장이 얼음왕국으로 변한 것인데,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거시지표들을 봤을 때 경매건수가 급증하고 낙찰가율이 떨어지는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더 이상 불패가 아닌 서울 아파트 청약시장
이제 더 이상 서울 아파트 청약 시장은 불패가 아니다. 5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e편한세상 답십리 아르테포레(국민주택)’와 ‘이문 아이파크 자이’가 지난 2일과 3일 각각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두 단지는 각각 지난해 10월과 11월 진행한 1순위 청약에서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흥행했지만 막상 계약기간이 도래하자 계약 포기가 쏟아졌다. e편한세상 답십리 아르테포레는 전체 121가구 중 54가구가, 이문 아이파크 자이는 1467가구 중 122가구가 각각 미계약 물량으로 남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청약에 당첨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계약 포기자가 속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변 시세 대비 비싼 분양가 때문이다. e편한세상 답십리 아르테포레의 전용 84㎡ 분양가는 10억4300만~11억5400만원에 책정됐다. 통상 공공분양인 ‘국민주택’은 민간분양과 달리 분양가가 저렴하지만, 이 단지는 수도권 비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에서 공급돼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인근에 위치한 두산위브(2006년 준공) 전용 84㎡은 지난 10월 9억5000만원에 실거래 된 바 있다.
또한 이문 아이파크 자이 같은 평형은 분양가가 12억599만원~14억4026만원에 달했는데, 이는 앞서 인근에서 분양한 최고 분양가 9억7600만원 수준의 ‘휘경자이 디센시아’, 10억9900만원 수준의 ‘래미안 라그란데’와 비교하면 최대 3억~4억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청약시장이 인기인 까닭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을 분양받아 시세차익을 깔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신규주택이라는 장점도 분명있지만 대한민국 청약시장에서 신축이라는 장점은 차라리 부차적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최근 신규청약아파트 단지에서 청약에 성공한 후 계약포기자가 속출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주변 시세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조만간 집값이 상승추세로 전환할 것이란 확신이라도 있으면 과감히 계약을 하겠지만 그런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미 연준의 조속하고도 급격한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건 위험천만
이처럼 부동산 시장이 사면초가 상태에 놓이다보니 시장참여자들 상당수는 미 연준(FED)이 하루라도 빨리 기준금리를 그것도 과격하게(?) 내리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세계 중앙은행격인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완화적 통화정책의 훈풍이 대한민국에도 미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희망은 위험천만이다. 3일(현지시간) 미 연준은 2023년 12월 12~13일 열린 FOMC 의사록을 공개했다.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하고 올해 3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의사록에 따르면 연준 위원들은 향후 통화정책 전망을 논의하면서 “기준금리가 이번 긴축 사이클의 고점이거나 고점 부근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실제 통화정책 경로는 경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의 모든 연준 위원은 인플레이션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을 반영해 “2024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낮추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 전환 시기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심지어 일부 위원은 인플레이션이 기대만큼 내려오지 않으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며, 심지어 어떤 위원은 상황 변화에 따라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조만간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는 시장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의사록은 “인플레이션이 분명히 위원회의 목표치로 꾸준히 하락할 때까지 한동안 제한적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시장의 기대와 거리가 있는 연준 의사록이 공개되자 미 증시가 하락하는 등 시장은 침울한 분위기다.
그 뿐 아니다. 파월 의장을 비롯해 연준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데이터 중 하나인 미국의 고용지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12월 미국 비농업 일자리가 전월 대비 21만6천건 늘었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는 지난 10월(10만5천건) 및 11월(17만3천건)의 고용 증가 폭과 비교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17만건도 아득히 웃돌았다. 12월 실업률은 3.7%로 전월과 같았으며, 역시 전문가 예상치(3.8%)를 밑돌았다. 한편 시간당 평균임금은 전월 대비 0.4% 올라 전문가 예상치(0.3%)를 상회했다. 일자리의 양과 질이 모두 시장의 예측을 상회한 것이다.
12월 고용 증가 폭이 시장 예상을 크게 뛰어넘으면서 연준이 올해 이르면 3월부터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시장의 조기 금리인하 전망도 후퇴할 전망이다. 당장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 밖 호조를 보이면서 미 국채 수익률이 상승했다. 5일(현지시간) 미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글로벌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이날 오후 3시께(미 동부시간 기준) 연 4.05%를 나타내며 4%대 안착을 시도하고 있다.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미 노동부가 작년 12월 고용지표를 발표한 직후인 이날 오전 8시 30분 4.09%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는 지난달 13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낙관을 불허하는 연준 의사록, 시장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미국의 고용지표 등을 감안할 때 연준이 조속하고도 급진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는 건 현 시점에서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미 연준의 조속하고도 급진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전제하고 부동산 시장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건 삼가는 편이 타당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