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찬’ 1.10 부동산 대책…미동도 하지 않는 시장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윤석열 정부가 ‘1.10 부동산 대책’을 야심차게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혹한의 겨울에 머물러 있다. 준공 30년 초과 주택에 대한 재건축 가능·재개발 요건 완화·신축 오피스텔 및 지방미분양 주택 구입에 대한 세제혜택 등의 일견 파격적으로 보이는 대책들이 빼곡히 담았는데 이런 시장의 반응이 윤 정부로선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1.10 부동산 대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장의 반응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10대책’에도 수억원씩 뚝뚝 떨어지는 강남 아파트
한국부동산원이 19일 발표한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1월 셋째주(15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대비 0.04% 하락했다. 지난주(-0.05%)에 비해 하락 폭은 다소 줄었지만, 작년 11월 마지막 주 이후 지속된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과 서울은 매매 가격이 각각 0.06%, 0.04% 내리면서 전주와 같은 하락률을 유지했고, 지방은 하락 폭이 -0.04%에서 -0.03%로 축소됐다.
부동산 시장 상황의 바로미터라 할 서울은 침체일로다. 서울에선 강남(-0.01%)·서초(-0.04%)·송파구(-0.13%)가 속한 동남권(-0.06%) 아파트값 하락세가 가장 컸다. 특히 충격적인 건 서열화한 부동산 시장의 맨꼭대기에 위치한 강남 아파트들이 몇억원씩 뚝뚝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남구 일원동 우성7차 전용면적 84㎡ 아파트(4층)는 최근 14억 5,000만 원에 팔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억 원 안팎에 거래됐지만, 올 들어 6억 원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이는 집값 급등 전인 2019년 수준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건축 조합 설립이 임박해 정부의 재건축 대책 수혜를 예상했지만 예상외로 투자 문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낙폭이 가장 컸던 송파구 대표 아파트들도 줄줄이 흘러내렸다.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는 지난 11일 23억원(22층)에 거래됐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였던 24억 6000만 원(29층)과 비교하면 약 2주 만에 1억 6000만 원 내려갔다. 하루 전에는 ‘잠실엘스’ 전용 84㎡가 18억 7000만 원(12층)에 팔렸다. 이 역시 직전 거래인 지난해 12월 19억 3000만 원(24층)에 비하면 6000만 원 하락한 가격이다.
지난해 안전진단을 통과하며 재건축 훈풍을 몰고 왔던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도 전용 117㎡가 이달 18억 7000만 원(11층)에 매매됐다. 직전 거래인 20억 5000만원(10층)에서 1억 8000만원이나 주저앉은 가격이다. 마찬가지로 안전진단을 통과한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전용 83㎡도 이달 18억 원(20층)에 팔리면서 지난해 11월 19억 9500만 원(9층) 이후 거의 2억 원이 빠졌다. 안전진단이 통과된 강남의 대표 아파트들이 속절 없이 무너져내릴만큼 부동산 시장은 빙하기를 통과 중이다.
강남이 무너지는데 영끌의 성지 노·도·강이 무사할 리 없다. 서울 노원구 재건축 대표 단지 상계주공 5단지 전용 31㎡는 재건축 기대감에 2년 전 최고 8억 원까지 치솟았지만 최근 4억 4,000만 원에 실거래된 이후 4억 원대 후반 매물이 속속 나오고 있다.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포기자들이 속출하는 분양시장
19일 업계에 따르면 3월 입주를 앞둔 서울 동작구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지난 16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해 전체 771가구 중 미분양 158가구에 대한 임의공급(무순위) 2차 청약접수를 실시했다. 앞서 작년 12월 말 미분양 197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1차 무순위 청약에서 총 291명이 접수했지만, 당첨자 중 상당수가 계약을 포기하면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39가구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 단지는 작년 9월 1, 2순위 청약 당시 평균 14대 1의 경쟁률로 접수를 마감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당첨자 중 계약을 포기한 사례가 대거 발생했고, 이후 3개월간 진행된 선착순 계약에서도 197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해 결국 청약홈을 통해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게 됐다. 지난 16일 실시된 2차 무순위 청약에는 총 696명이 신청해 4.4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앞서 두 차례 ‘무더기 미계약’ 사태가 벌어진지라 ‘완판’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단지에 미계약이 속출하는 까닭은 주변 시세보다 높은 분양가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청약을 통해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이유 중 가장 압도적인 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를 통한 시세차익의 확보다. 이런 기대가 배반당하니 미계약이 속출할 수 밖에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양시장에서 불패를 자랑하던 서울에선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이외에도 미계약 물량이 줄을 잇고 있다.
작년 10월 분양에 나선 동대문구 ‘이문 아이파크 자이’ 역시 1, 2차 청약에서 평균 17.7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미계약 물량이 대거 나오면서 최근 미분양 물량 152가구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무순위 청약을 받았다. 하지만 무순위 청약에서도 계약 포기가 잇따르면서 여전히 미분양 물량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같은 시기 분양된 동대문구 ‘e편한세상 답십리 아르테포레’도 계약 포기 사례가 속출하면서 지난 2일 무순위 청약을 실시했고, 여전히 15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2차 무순위 청약에 들어가기로 했다. 강동구 ‘중앙하이츠 시티’와 남구로역 ‘동일 센타시아’는 지난 15∼16일 각각 5차, 8차 무순위 계약을 진행했다.
주변 시세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은 분양가에, 부동산 시장에 대한 미래 전망의 암울함까지 더해져 청약불패의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건설업계의 자업자득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맹탕에 가까운 ‘1.10 부동산 대책’
강남을 비롯한 아파트 시장이 내리막길을 걷는 건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 가격을 큰 틀에서 규율하는 금리, 성장, 경기 등의 거시지표가 부동산 시장의 가격하락을 견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야단법석을 떨며 환영하던 ‘1.10 부동산 대책’ 자체에도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훈풍을 불어넣기에는 내장된 문제점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먼저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는 ‘1.10 부동산 대책’은 실거주의무제 폐지처럼 공허한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1.10 부동산 대책’ 관련 세부 추진 과제는 총 79개로 이 중 절반 이상인 46개가 법 또는 시행령 개정 사안이다.
특히 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야당인 민주당의 협력을 받는 일이 난망이다. 당장 ‘1.10 부동산 대책’의 중핵이라 할 재건축에 대한 ‘패스트 트랙’이 가능하기 위해선 도시정비법 개정이 필수다. 또한 소형 비아파트의 공급을 활성화하고 지방 미분양 주택 소진을 위한 세금 감면도 지방세 특례 제한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
입법보다 더 큰 문제는 재건축 및 재개발을 추진하는 단지들의 사업성이다. 설혹 안전진단을 사실상 없애고 재개발 요건을 완화해준다고 해서 없던 사업성이 생길 리 없다. 사업성을 바꿔 말하면 조합원이 분담금을 내지 않거나 최소화 할 가능성이라고 해야 할텐데, 이 사업성은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쉽게 할 수 있게 풀어준다고 생기지 않는다. 단적으로 서울시가 지난 1~2년간 신속 통합기획(정비계획 수립의 복잡한 절차를 줄이고 신속한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재건축·개발 규제 완화책) 재개발 후보지 총 57곳을 선정한 바 있으나 서울 강남, 용산, 여의도 등을 제외하곤 현재 본격적인 사업절차에 들어간 곳이 없다.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업성이 없거나 낮기 때문이다.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지하고 재건축 추진 단지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운들 없는 사업성이 생기는 건 아니다. 어쩌면 ‘1.10부동산대책’으로 인해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 아파트들의 호가만 올라 재건축 수익성을 깎아먹고 이게 도리어 재건축 추진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신축 오피스텔, 빌라, 지방 미분양 주택 등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당해 주택을 매수하려고 이미 결심한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지 모르나 고작 세금 감면 혜택 때문에 주택을 매수할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레거시 미디어와 건설업계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입을 모아 상찬한 ‘1.10 부동산 대책’은 이처럼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을 되돌리거나 저지할 재료가 부재하다. 현명한 시장참여자라면 윤석열 정부의 낚시질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