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총선 득표 위해 공시가격 현실화 포기하나
정부는 21일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와 동일한 69.0%(공동주택 기준)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국토교통부는 21일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수립 방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공시가격은 정부가 과세 등을 위해 매년 1월 1일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거쳐 정하는 평가 가격이다.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현실화율은 공시가격이 시세를 얼마나 반영하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공시가격 산정의 중요 요소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낮아지면 보유세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2020년 수준의 현실화율을 적용하면 내년 아파트 등 공동주택 현실화율은 평균 69.0%, 단독주택은 53.6%, 토지는 65.5%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아파트의 경우 내년 현실화율이 75.7%가 돼야 하는데, 6.7%포인트 낮춘 것이다.
국토부는 금리 인상, 물가 상승,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공시가격 인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 거시경제 여건의 불안정성이 여전하다는 점을 고려해 현실화율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 대비 실제 비교 (2020~2024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 수순을 밟는 윤 정부?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도 동결이지만, 더 중요한 건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가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재수립 방안을 의결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세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사실상 폐기한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도입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현실화율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 2035년(공동주택 10년, 단독주택 15년, 토지 8년으로 각각 달성연도가 상이함)까지 90%로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임기 중에 수립한 것은 기존의 부동산공시가격 제도가 시세와의 간격이 너무 커 사실상 감세를 위한 장치로 기능하는데다 부동산 유형별·지역별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내장되어 있었기에 이를 개혁하기 위함이었다.
예컨대 부촌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의 시세 반영률은 40∼50% 선에 그치고, 지방 저가 주택은 70∼80%라 형평성에 어긋나는 등 서울과 지방, 아파트와 단독주택, 고가와 저가주택 등 지역별·유형별·가격대별로 벌어진 시세 반영률을 공평하게 보정해야 한다.
한데 윤석열 정부는 한국사회의 대표적 개혁과제 중 하나인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의 개혁을 형해화하려 하고 있다. 이미 20일 열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공청회에서 “필요성 및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열린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2023.11.20. 연합뉴스
윤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형해화의 주된 이유로 주택분 재산세 및 종합부동산세의 급증을 들고 있다. 확실히 주택분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근년 들어 크게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주택분 재산세는 2019년 5조 1000억 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는 6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역시 2019년 1조 원에서 지난해 4조 1000억 원으로 불었다. 그런데 재산세 및 종부세가 이렇게 급증한 건 무엇보다 3년 사이에 주택 가격이 하늘로 치솟은 때문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따름이다.
‘세금은 문명의 대가’라는 격언을 명심해야 할 때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하고 수정하면 될 일이다. 헌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문재인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기하려는 윤 정부를 보면서 그 배경에 부자감세와 총선승리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강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연방대법원 대법관인 올리버 홈즈는 “세금은 문명사회에 대한 대가”라는 위대한 격언을 남긴 바 있다. 세금에 경기를 일으키는 윤석열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곱씹어 볼 명언이다. 세금은 내기 싫고 국가가 제공하는 편익은 누리고 싶은 사람이 많은 사회나 나라는 반드시 사멸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