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칼럼] 증여세 감면해 주면 결혼하고 아이 낳는다고?




 증여세 감면해 주면 결혼하고 아이 낳는다고?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기획재정부는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를 상향하겠다면서, 이를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결혼자금 증여세 한도는 정작 경제사정 때문에 혼인과 출산을 못하는 서민들과는 무관하다. 상위 10% 이상의 부자들만 수혜를 입을 대책에 불과하다. 진정한 저출산 대책은 주거를 안정시키고 복지를 확충하는 것이다.


증여세 공제한도를 상향하려는 윤 정부

이미 현행 세법은 통상적으로 인정할 만한 혼수용품(살림살이 구매비용이나 예식비용 등)에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택, 자동차, 초고가 명품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증여세 과세 대상에 해당된다. 현행 세법상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세 없이 물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10년간 5000만 원이다. 공제한도 5000만 원을 넘는 경우 1억 원 까지는 10%, 그 이상 초과분에는 20~50%의 5단계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한데 윤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해 직계존속이 자녀에게 증여하는 주택에 대해 증여세 한도액을 상향하겠다는 심산이다. 적용 시점은 혼인신고를 기준 전후 1년간이고 자녀가 부모로부터 전세나 주택 매입 자금을 증여받는 경우 ‘1인당 5000만 원’이었던 무상 증여 금액이 최대 1억 5000만 원까지 늘어날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만약 지배적 예측이 현실이 될 경우 각자의 부모로부터 주거 관련해 각각 1억 5000만 원씩 증여받는 예비부부는 공제한도 이내여서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벗어난다. 현행 세법으로는 총 1940만 원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윤 정부는 증여세 공제한도를 추진하는 배경으로 ‘저출산’과 ‘현실성’ 등을 꼽았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결혼이나 출산을 위한 인센티브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천만 원으로 정해진 건 2014년으로 10년이나 됐다. 물가상승 등을 고려해 한도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결혼자금 공제 확대해도 상위 10% 부자만 수혜

비혼주의자를 제외하면 혼인과 출산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주된 기피 이유는 경제다. 경제적 이유로 혼인과 출산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지원받을 현금이 있을 리 없고 따라서 증여세 공제한도 상향은 그들과 완전히 무관한 이슈다. 따라서 윤 정부가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확대’를 저출산 대책이라고 소개하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윤 정부의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확대’는 저출산 대책이라기보단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평균적인 소득 가구는 대부분 공제 한도 확대의 혜택을 얻지 못하고 그나마 소득 상위 10%의 증여 수준은 돼야 감면 혜택이 300만 원 정도가 된다”며 “부모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윤택한 가구에게만 혜택을 안겨주는 정책”이라고 직격했다.

장 의원이 신한은행의 ‘2017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내용을 물가 수준에 맞춰 보정한 결과, 2022년 기준으로 부모가 자녀 한 명에 지원하는 평균 결혼비용은 7217만 원으로 추산됐다. 현행 세법상 이에 대한 증여세는 221만 7000원이다. 하지만 7217만원에는 비과세 대상인 혼수비용(5073만 원 추산)이 포함돼 있다. 7217만 원에서 혼수비용을 뺀 금액(2144만원)이 현행 증여세 공제 한도(5000만원)보다 낮은 만큼 평균적인 가정은 현행 세법 아래서도 증여세 자체를 낼 일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윤 정부가 추진하는 것처럼 증여세 공제한도를 1억 원 이상으로 상향하면 그 혜택이 고스란히 고소득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 보고서상 월 소득이 800만 원인 가구의 평균 결혼 자금 지원액은 2022년 기준 1억 3023만 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서 평균적인 혼수비용(5073만 원)을 빼면 증여액은 7950만 원이 된다. 이에 해당하는 현행 증여세는 295만원이다. 하지만 공제한도를 1억 원으로 높이면 증여세는 전액 면제된다. 장 의원은 “가구 소득 월 800만 원은 상위 10% 수준”이라고 밝혔다.


부동산값 안정, 복지 확충이 진정한 저출산 대책

2012년 약 33만 건이던 혼인건수가 10년 후인 2022년에는 19만 건 정도로 격감했다. 또한 15살부터 49살까지, 가임 연령 여성의 평균 자녀의 수를 가리키는 합계출산율도 1.297명에서 0.78명으로 폭락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나 사회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현상 유지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을 2.1명 정도로 추산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1명 이하가 붕괴됐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혼인과 출산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죽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혼인과 출산이 와해하고 있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통상 선진국일수록 비혼이 많고 합계출산율도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혼인이건 출산이건 떨어지는 기울기가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너무나 가파르다. 대한민국에서 진행 중인 혼인 및 출산 파업의 주원인은 무엇보다 생존의 위협에서 기인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DNA의 복제라는 유전자의 명령조차 거부하면서 개체의 생존에 급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혼인 및 출산 파업을 종식시키기 위해선 개체의 생존과 DNA복제가 가능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국가가 만들어줘야 한다.

대뜸 생각나는 것이 부동산 안정과 복지의 대대적 확충이다. 부동산 시장이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되고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이 접근 가능한 수준으로 공급된다면 주거의 안정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됨과 동시에 가처분소득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각종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충한다면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주거의 안정성이 비약적으로 개선되고, 가처분소득이 늘며, 복지시스템이 쿠션을 제공하는 나라에서 연애와 혼인과 출산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아야 할 저출산 대책은 저출산 대책으로 포장된 부자감세 정책이 아니고, 부동산 시장 하향안정화와 공공임대주택 확충 그리고 복지의 획기적 제고 대책이다. 무참한 것은 윤 정부가 역으로 부동산 시장 부양과 공공임대주택 축소와 복지예산 축소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사람에겐 의원이 필요 없는 것처럼 부자들에게는 저출산 대책이 필요 없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년 7월 16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