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뻔한데 재건축 규제 확 푼 정부…대놓고 관권 선거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윤석열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았다. 재건축과 재개발 관련 시장 정상화조치에 대한 무제한에 가까운 규제 완화, 신축 오피스텔·빌라·지방미분양 주택 구입에 대한 과도한 특혜, 부동산PF 살리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1.10대책’은 철저히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대책들로 빼곡하다. 보유세를 비롯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원수보듯 하며 유권자들의 표를 겨냥한 부동산 투기 조장책을 집중투사 중인 윤석열 대통령에겐 대한민국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안전진단 생략하고 지은지 30년만 넘으면 재건축으로 직진?
윤석열 정부가 10일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크게 △도심공급확대 △다양한 유형의 주택공급 확대 △신도시 등 공공주택공급 △건설경기 활력 회복으로 구성돼 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대목은 단연 도심공급확대다. 재건축·재개발과 1기 신도시 재정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먼저 재건축·재개발 관련 대책을 살펴보자. 윤 정부는 아파트를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재건축의 첫 관문’이 안전진단이 아닌 주민들의 정비계획 입안 제안으로 바뀌는 것인데, 서울의 경우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까지 적용하면 재건축 사업 기간이 최대 5∼6년가량 단축될 전망이다.
이를 좀더 상술하면 지금은 아파트를 재건축하려면 먼저 안전진단에서 위험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조건을 충족할 때까지 수년간 재건축 절차를 밟지 못하고 기다리거나, 리모델링으로 사업 방식을 바꿔야 했다. 앞으로는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않아도 정비계획 수립과 추진위원회 구성, 조합 설립 등 재건축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 안전진단은 사업인가 전까지만 통과하면 된다.
재건축 연한 30년을 넘겼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는 서울에서는 노원·강남·강서·도봉, 경기에선 안산·수원·광명·평택 순으로 많다. 준공 30년이 지났다면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는 지난해 대폭 완화한 안전진단 기준을 추가 완화하기로 했다. 당장 안전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주차난, 층간소음, 배관 문제 등으로 거주 환경이 나쁘다면 재건축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름은 ‘안전진단’이지만 ‘생활환경진단’이 되는 셈이다. 사실상 안전진단을 폐지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재건축조합 설립 시기를 앞당겨 사업 기간을 단축한다. 지금은 ‘안전진단→정비계획 입안 제안→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 수립→추진위 구성→조합 신청→조합 설립→사업인가’ 순으로 한 단계씩 절차를 밟아 재건축이 이뤄진다. 앞으로는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아파트 준공 30년이 지났다면 바로 추진위를 구성하고 조합 설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안전진단과 정비구역 지정, 조합 설립 추진 등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밟아도 되는 것이다.
재건축 패스트트랙 절차, 국토교통부 제공
국토부는 통상 안전진단에 1년, 추진위 구성부터 조합 설립까지 2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평균 13년가량 걸리는 사업 기간을 이른바 ‘재건축 패스트트랙’으로 3년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신통기획을 적용하는 서울 내 단지는 5∼6년 단축이 가능하다. 다만 재건축 절차 조정을 위해선 도시정비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의 입법사항이란 뜻이다.
윤 정부는 재개발 대책도 내놓았다. 지금은 30년 넘은 건물이 전체의 3분의 2(66.7%) 이상이어야 노후도 요건을 충족해 재개발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데, 이를 60%로 완화한다. 재정비촉진지구는 30년 넘은 건물이 50%만 돼도 재개발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 유휴지와 자투리 부지도 재개발 구역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정비구역 지정·동의 요건도 바꾼다. 이를 통해 재개발이 가능한 대상지가 10%가량 늘어난다.
재건축·재개발조합 설립 때는 공공성 확보 여부 등을 심사해 정부 기금에서 초기사업비를 구역당 50억 원까지 융자해준다. 초기 단계에서 추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윤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형해화하려고 시도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10대책’에 포함된 재건축·재개발 관련 대책은 총선을 앞둔 시장정상화 조치 형해화의 종합판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싶다.
재개발 노후도 요건 완화, 국토교통부 제공
윤 정부는 1기 신도시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윤 정부는 1기 신도시와 관련해 올해 안에 재건축을 가장 먼저 추진할 선도지구를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에서 각각 1곳 이상 지정한다. 윤 대통령 임기 내 선도지구에서 첫 착공을 하고, 2030년 첫 입주를 목표로 잡았다.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정비를 위해 12조원 규모의 ‘미래도시펀드’를 조성하고, 전용 보증상품을 출시해 자금 조달을 지원한다.
신축오피스텔 등 구입하면 주택수에서 제외돼
윤 정부는 또 강력한 수요유인 대책도 발표했다. 올해와 내년 2년간 신축된 빌라·오피스텔 등 소형 주택(60㎡ 이하)을 구입하면 취득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 산정 때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특례를 주겠다는 것이다. 대상은 수도권 6억원, 지방 3억원 이하 다가구·다세대주택, 도시형생활주택, 주거용 오피스텔이다. 아파트는 제외된다. 다만 1가구 1주택자가 소형 신축주택을 추가로 매입할 때는 양도세·종부세 1가구 1주택 특례를 적용받을 수 없다.
또한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구입할 경우에도 세제 산정 때 주택 수에서 제외한다. 85㎡, 6억원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의 경우 소형 주택과 달리 1가구 1주택자가 구입할 때도 양도세·종부세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시민들에게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매수하라고 특혜를 주는 셈인데,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부동산PF살리기에 진심인 윤 정부
부동산PF 대책도 포함됐다. 윤 정부는 부동산PF 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건설사 자금 흐름 개선과 사업장별 재구조화·정상화도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25조 원 규모의 공적 PF 대출 보증 25조원을 차질 없이 공급한다.
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PF 대출 대환보증을 발급해 높은 이율의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대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아가 시행사와 대출기관 간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한 보증기관 상설협의체를 구성하고 PF 관련 정보를 주택 관련 단체에 제공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준공기한이 지난 시공사에 대해서는 책임분담을 전제로 대주단 협약을 통해 시공사의 채무 인수 시점 연장을 독려하고, 정상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시 유동성 공급과 과도한 수수료 책정을 시정할 방침이다. 건설사 보증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에 대한 대출 전환 확대 등도 추진한다.
이와 함께 PF 대출 시 건설사의 책임준공 의무에 대한 이행보증 확대(3조원→6조원)와 비주택 PF 보증 도입 확대(3조원→4조원),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에 대한 특별융자 확대(3천억원→4천억원) 등의 조치도 취할 예정이다.
정부는 사업장별 갈등 해소와 정상화 지원 차원에서 공공 참여 사업장의 경우 민관합동PF 조정위원회를 통해 사업 기한 연장이나 지체상금·위약금 감면 등을 조정키로 했다. 또 민간 사업장에 대해서는 건설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기능을 강화해 시공사와 시행사 간 공사비 분쟁 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민간 사업장은 공공주택사업으로 전환해 LH가 직접 사업을 시행하거나 다른 시행사나 건설사에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는 나아가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협력업체는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을 신속히 지원키로 했다.
세금을 죄악시하며 사실상의 관권선거에 열중인 윤석열 대통령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와 건설사 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총력을 경주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보유세 등의 세금에 대해선 강렬한 적의를 숨김 없이 드러냈다. 그는 “어떤 물건에 대해 보유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보유세, 거래세, 양도세 등을 중과세하면 전체적으로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마무리 발언에서 ”‘(재산이) 있는 사람들한테 더 세금을 뜯어내야지’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사실은 중산층과 서민을 죽이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보유세를 막 때리고 하는 것은 사실 어떤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이고, 시장경제에 아주 해롭다”며 “우리 경제 발전에, 또 많은 국민의 소득 창출에 정말 좋지 않은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서민과 중산층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과세하더라도 수익에 대해서, 이익이 발생해 (돈을) 많이 번 사람한테 과세한다는 개념으로 우리가 생각을 바꿔나가야 한다”며 “우리 정부의 정책 타깃은 어디까지나 중산층과 서민”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10
술주정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하는 건 괴로운 일이다. 보유세가 무언지, 세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시장경제와 소유권이 무언지 등에 대해 완벽히 문외한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경제를 부자 감세로 등식화하는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사실만은 명확하다.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 형해화를 통해 올해부터 2027년까지 4년간 전국에서 95만 가구가 정비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건축 75만 가구(수도권 55만가구·지방 20만가구), 재개발 20만 가구(수도권 14만가구·지방 6만가구)다. 과연 윤 정부가 95만 가구와 총선을 연결시키지 않을까? 과거 독재정부들을 제외하고 이처럼 노골적으로 사실상의 관권 선거를 자행한 정부가 윤석열 정부 말고 또 있었던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