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시장의 힘에 굴복…”2%물가 확신 더 걸릴 듯”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마침내 시장에 투항했다. 그 동안 고수해 온 ‘기준금리 인하가 멀지 않았다’는 태도를 바꿔 통화긴축 쪽으로 선회했다. 파월의 관점을 바꿔 놓은 건 미국의 인플레이션 관련 각종 지표들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관련 지표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 반복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파월마저 매파로 변신하자 미국의 국채수익률이 치솟고 있다. 국채수익률이 올라가면 시장금리를 밀어올린다. 영끌족들은 아비규환의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2%로 낮아진다는 더 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존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2024.04.17
성급한 비둘기파에서 매파로 전향한 파월 의장
파월 의장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포럼 행사에서 “최근 경제 지표는 확실히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하던 것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 통화정책 수준이 우리가 직면한 위험에 대처하기에 좋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파월 의장은 또 “최근 지표는 견조한 성장과 지속적으로 강한 노동시장을 보여준다”면서도 “동시에 올해 현재까지 2% 물가 목표로 복귀하는 데 추가적인 진전의 부족(lack of further progress)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현재의 긴축적인 통화정책 수준을 필요한 만큼 길게 유지할 수 있으며, 동시에 노동시장이 예상 밖으로 위축된다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상당한 완화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공적 발언들이 늘 그렇듯 이번 발언도 모호하고 다의적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파월 의장의 관점이 기존과 달라진 점은 분명하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연방상원 청문회에서 “더 큰 확신을 갖기까지 멀지 않았다(not far)”라고 말해 시장에 금리인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준 바 있다.
게다가 파월 의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최근 물가 지표가 단순한 요철(bump) 이상을 의미하는지 판단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라고 말하며 인플레이션이 둔화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기존 전망을 수정하지 않아 왔다.
그러던 파월 의장이 더 오랜 기간 운운하는 소릴했으니 확실히 인플레이션에 관한 기존 관점을 수정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진전을 보일 때까지 현 5.25∼5.50%인 기준금리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급한 비둘기파였던 파월 의장이 온건한(?) 매파로 변신한 셈이다.
미국 국채 금리 추이
파월의 관점을 변화시킨 미 거시지표의 힘
작년 11월부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던 파월 의장이 생각을 바꾼 건 데이터 때문이다. 물가 관련 미국의 거시지표들이 불타오르고 있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더 나아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엄두를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1월부터 3월까지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물론이거니와 구매자관리지수(PMI)도 시장의 예상을 상회했고, 비농업신규일자리의 증가세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거기에 미국의 3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7% 늘자 파월도 인플레이션에 관한 관점을 바꾸는 것 말고 다른 도리가 없었다.
미국 소비자물가 추이
이미 연준이사들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더 늦게, 더 적게'(later and fewer) 금리를 내릴 것이란 컨센서스에 파월 의장도 합류한 셈이다. 온 사방에 불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부정하던 파월 의장은 불길이 여전히 맹렬한데도 불길이 사그라들고 있다고 경솔하게 말하다 태도를 바꿨다. 파월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치솟는 미 국채수익률…영끌족들은 아비규환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능성이 희미해지는데 더해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까지 더해지자 시장금리의 토대인 미 국채수익률이 상승 중이다.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장 중 한때 5.01%로 고점을 높이기도 했다. 2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5% 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5개월 만이다. 미 국채의 랜드마크라 할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도 장중 4.687%를 터치하기도 했다.
전 세계 시장 금리의 토대인 미국의 국채수익률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시장금리를 밀어올릴 수 밖에 없다. 오매불망 금리인하만을 학수고대하던 영끌족들은 잠 못 드는 날들이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 국채수익률, 출처 : 인베스팅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