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증하는 가계대출, 금리 맹폭을 견딜 수 있나?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최근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8월 말에 비해 8000억 원 이상 증가하는 등 가계대출 폭증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계대출의 양과 질이 모두 문제인데, 시장금리조차 우상향 중이라 가계대출 사태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무리하게 빚을 낸 가계들이 지금과 같은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때도 견딜 체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8월말 대비 8천억원 이상 불어난 가계대출 잔액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4일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681조 6216억 원으로, 8월 말(680조 8120억 원)보다 8096억 원 증가했다. 5월 이후 5개월 연속 증가세로, 이 추세대로라면 9월 증가 폭이 8월(1조 5912억 원)을 상회할 가능성도 있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주택담보대출 추이
대출 종류별로는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주택담보대출이 보름 사이 6176억원(514조 9997억 원→515조 6173억 원) 불었다. 이달 들어 은행들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연령 제한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기준 조정을 통한 한도 축소 등으로 증가세는 지난달(2조 1122억 원)보다 다소 둔화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대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충격적인 건 신용대출까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용대출은 3445억원(108조 4171억 원→108조 7616억 원) 늘었다. 만약 월말까지 증가세가 유지되면 2021년 11월(+3059억 원)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처음 5대 은행의 신용대출이 반등하게 된다.
5대 시중은행의 흐름으로 보건대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9월까지 6개월째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과 금융권 가계대출은 각 6조 9000억 원, 6조 2000억원 늘었다. 은행권 증가 폭(6조 9000억 원)은 2021년 7월(9조 7000억 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가장 컸다.
무섭게 상승하는 각종 채권 금리
가계대출 폭증세가 더 우려되는 건 시장금리의 토대라 할 각종 채권금리가 우상향 중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8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891%로 고공행진 중이다. 연초 연 3.782%로 출발, 금리인상이 종료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3월에는 연 3.1%대까지 떨어졌으나 다시 무섭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연 3.982%로, 4.0%가 코 앞이다. 단기물 금리 상승 압력 또한 채권시장에는 부담이다.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금리는 이달 초 3.68%였으나 현재는 3.79%를 가리키고 있다.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도 3.99%에서 4.02%로 올랐다.

채권최종호가수익률(20230918 종가기준), 금융투자협회
한편 은행들의 수신경쟁이 심화되면서 자금조달비용도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거래일 은행채(무보증·AAA) 1년물 금리는 4.006%로 집계됐다. 4%대 재진입은 올해 1월 10일 4.027% 이후 처음이다. 은행채 금리는 지난 4월 14일 3.521%를 저점으로 계속 상승 중이다. 통상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정기예금 금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은행채 5년물은 주담대와 관련이 크다고 알려졌다. 참고로 은행채 5년물 금리도 4.4%를 찍었다.
주지하다시피 은행채는 은행들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채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작년 11월 레고랜드 사태 당시의 유동성 위기라도 재현된다면 은행채가 시중의 자금을 전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견조한 인플레이션, 국제유가 폭등, 최악의 무역수지 누적 등과 같은 악재와 더불어 미 국채 금리의 폭등도 국내 국채금리를 밀어올리고 있다. 미 국채금리는 기준금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단기물은 물론이거니와 장기물조차 모두 우상향 중이다.
인터넷은행마저 주담대 상단 7%터치, 고금리 부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한편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주담대 변동금리를 올려 금리 상단이 연 5.6%대로 올라선 가운데, 시장에서 ‘주담대 블랙홀’로 불리는 카카오뱅크의 금리 상단이 이미 7%를 터치했다.
견고한 인플레이션의 장기지속, 100달러 돌파가 기정사실화 되는 국제유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무역수지, 자금유치를 위한 금융기관들 간의 예금금리 인상 경쟁, 채권시장의 수급불균형, 상승하기만 하는 미 국채금리 등등.
시장에는 고금리를 압박하는 요인들만 빼곡한 형국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시장금리가 곧 내릴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을 붙들고 주담대와 신용대출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으로 근심스럽다. 과도한 부채를 일으킨 사람들이 언제까지 고금리 부담을 견딜 수 있을까? 1년 정도야 라면만 먹으며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