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출현한 ‘마이너스피’…늘어나는 악성 미분양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분양불패를 자랑하던 서울에서도 아파트 분양권이 ‘마이너스피’가 붙어 시장에 나오고 있다. 마이너스피는 분양가보다 분양권 가격이 낮게 거래되는 상황을 일컫는 용어로 ‘마이너스 프리미엄’의 준말이고 ‘마피’라고도 한다. 악성 미분양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수도권과 지방을 망라해 증가하는 추세다. 주거 유형 가운데 가장 상위에 위치한 아파트 분양시장이 동요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 우호적인 재료는 찾기 힘든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분양불패 서울에 등장한 아파트 분양권 마이너스피
3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 전용 84㎡는 분양가 11억2299만 원보다 2000만 원 낮게 나왔다. 같은 단지의 다른 매물 중에서도 마이너스피가 붙은 매물이 붙지 않은 매물보다 많았다.
얼마 전에는 구로구 가리봉동 ‘남구로역동일센타시아’ 전용 42㎡가 마피 5500만 원을 내걸고 4억 7000만 원에 매물로 나왔다. 전용 34㎡ 역시 분양가 대비 5000만 원 저렴한 4억 8000만 원에 시장에 나왔다. 이 단지는 2022년 9월 분양 당시 52가구 모집에 396명이 몰려 평균 7.6대 1을 기록했지만 미분양이 발생했다.
한편 도시형생활주택의 분위기는 아파트보다 더 나쁘다. 역세권에 입지조건이 좋더라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 ‘신설동역자이르네’ 전용 45㎡는 분양가 8억 5400만 원보다 1억 1000만 원 낮은 7억 4400만 원에 가격이 형성됐다. 주변 시세 대비 저렴한 고급형 주거단지임에도 가격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같은 면적 다른 매물들에도 마피가 2000만~1억 원 사이에 다양하게 형성됐다. 이 단지 매물 대부분이 마피가 붙거나 프리미엄이 전혀 붙지 않은 분양가 그대로 ‘무피’ 상태다. 전용 43㎡는 분양가 8억 6800만 원보다 5000만 원 낮은 8억 1800만 원에 최초 등록됐다. 이달 23일 2000만 원을 추가로 내려 총 7000만 원 마피가 붙기도 했다. 또한 인근 ‘힐스테이트청량리메트로블’ 전용 48㎡도 분양가 대비 8952만 원 낮게 등록됐다.
입지조건이 좋지 못한 오피스텔은 아파트나 도시형생활주택에 비해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위에 언급된 단지들은 입지가 좋거나 그리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분양권에 적지 않은 마이너스피가 붙었다. 시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이 감지된다.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증가하는 악성 미분양 물량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석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지만,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은 계속해서 쌓이는 모습이다.
국토부가 31일 발표한 ‘9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9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1만 7262가구로 한 달 새 4.9%(801가구) 증가했다. 이런 규모는 2020년 8월(1만 7781가구) 이후 4년 1개월 만에 가장 많은 것이다.
지난달에는 수도권과 지방의 악성 미분양이 동시에 늘었다. 수도권은 2887가구로 전월보다 2.3%(66가구) 증가했고, 지방은 1만 4375가구로 5.4%(735가구) 늘었다.
한편 지난달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6만 6776가구로 전월보다 1.1%(774가구) 줄었다. 미분양은 지난 7월부터 석 달 연속 감소했다. 수도권 미분양이 1만 3898가구로 10.2%(1282가구) 늘었지만 지방 미분양은 5만 2878가구로 3.7% 감소했다.
최악의 미분양 물량이라 할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정확한 통계가 생성되지 않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증가 중이다. 아파트 분양시장이 활기를 잃고 있음을 방증한다 할 것이다.
호재가 전무한 부동산 시장
마이너스피가 속속 등장하는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 수도권과 지방을 망라해 증가하는 악성 미분양 물량 등은 빚투에 의존했던 아파트 분양시장의 체력이 고갈상태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사정이 더욱 나쁜 건 부동산 시장에 호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환율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는 건 쉽지 않을 뿐더러 설령 기준금리를 낮추더라도 시장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민간소비, 민간투자, 정부지출, 순수출 중 어디를 보더라도 성장이 나아지긴 힘겹다. 폭발 일보 직전인 가계대출 상태를 볼 때 대출관리 기조를 선회하는 건 자살행위다.
세계경제의 심장이라 할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누가 되건 인플레이션 재발과 고금리와 강달러의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당분간 부동산 시장은 눈 위에 서리가 깔리는 형국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