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아파트 매물에 건설사 절반이 좀비기업




쏟아지는 아파트 매물에 건설사 절반이 좀비기업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서울 아파트 매물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사흘 연속 9만건대를 기록했다. 이러다 서울 아파트 9만건대가 정착할지도 모르겠다. 건설업계는 쑥대밭이다.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 중에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건설사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내는 좀비 기업이다. 폐업하는 건설사들도 줄을 잇고 있다. 사면초가 상태의 건설업계는 미국 기준금리 인하를 학수고대 중인데 소비자물가지수(CPI) 충격이 발생하며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는 매물 9만건대가 뉴노멀? 

부동산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서울아파트 매물 건수(인터넷 매물, 자체 집계 기준)는 9만 929건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아실이 파악한 2022년 2월 이후 매물 건수 중 최대치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는 22%(1만 6366건) 늘어난 것이다. 2022년 같은 날(4만 7467건)과 대비했을 때는 2배에 가깝다.

더 충격적인 건 매물 건수가 사흘 연속 9만건을 돌파했다는 사실이다. 서울 아파트 매물건수는 12일 9만 929건을 기록한데 이어 13일 9만 238건, 14일 9만 860건을 각각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매물 건수가 사흘 연속으로 9만건 대를 기록한 건 아실이 통계를 작성한 후 최초다. 이러다 9만건대가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매물 적체는 무엇보다 거래 절벽과 연관돼 있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거래된 서울 아파트는 총 3656건으로 전월 대비 3.1% 줄었다. 12월 거래량 최근 5년 평균과 비교했을 때는 무려 33.1% 감소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비수도권 아파트의 경우 같은 달 1만 1566건이 거래돼 전월과 5년 12월 평균 대비 각각 9%와 47.2% 줄었다. 주지하다시피 거래량 격감과 매물 폭증은 시장 내면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건설사가 절반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건 건설사들의 실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최근 펴낸 ‘2023년도 건설 외감기업 경영실적 및 한계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업체가 2023년 기준 1089개사로 집계됐다. 건설 외감기업 2292개사 가운데 47.5%로, 10곳 중 약 5곳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즉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는 건설사(건설 외감기업) 10개사 가운데 5개 업체가 이른바 ‘좀비기업’인 것이다.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분류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 업체가 4년 만에 2배가량 늘어나는 최악의 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부채비율 상승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 2023년 기준으로 건설 외감기업 부채비율은 152.4%로 조사됐다. 부채비율은 2019년에는 125.3%에 불과했는데 2022년 140%대를 넘더니 결국 150% 벽을 뚫었다. 이런 추세는 작년과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늘어나는 미분양 물량에 문 닫는 건설사들 속출 

설상가상으로 건설사 입장에선 최악인 미분양 물량이 장래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이 발표한 2월 전국 미분양 물량 전망지수는 113.5로 전월(102.8) 대비 10.7포인트(p) 상승했다. 지난해 1월 115.7을 기록한 뒤 약 1년 만에 최고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설사들이 줄지어 문을 닫고 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업체는 516곳으로 1년 전 대비 23% 늘었다. 같은 기간 부도 처리된 업체는 29곳으로 2019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았다. 

 

미국 금리 인하 가능성은 점점 옅어져

매물은 폭증하고, 거래는 얼어붙고, 미분양과 폐업이 속출하는 등 복합악재에 신음하는 건설업계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만 목이 빠져라 고대하는 형국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내릴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의 이런 소망은 물거품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는 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월과 비교해선 0.5%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다시 올라선 것은 지난해 6월(3.0%)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물가의 최근 동향을 반영하는 전월 대비 상승률도 2023년 8월(0.5%) 이후 1년 5개월 만에 가장 컸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전년 동월 대비 3.3%, 전월 대비 0.4% 각각 상승했다. 근원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3.2∼3.3% 수준에서 정체된 모습을 지속하고 있다.

물가 쇼크라고 불러도 좋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터라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관세정책과 감세, 이민자 정책 등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 요인들이 본격화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인플레이션이 살아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미국의 소매판매마저 불타오르는 중이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1월 소매 판매지수는 그 전달은 물론 뉴욕증시의 예상치 보다 높았다. 이제 기준금리 인하는 고사하고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금리 인하 가능성마저 희미해진 올해 건설업계와 부동산 시장의 고난은 계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5년 2월 15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