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피봇’ 연내 실행?…통화긴축 이유만 넘친다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시장참여자들이 학수고대하는 ‘연준 피봇'(Fed Pivot‧미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전환, 현 상황은 금리인하를 의미)의 연내 실행 가능성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호주중앙은행에 이어 캐나다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에 나서는 등 글로벌 긴축기조가 부활하는 데다 미국에는 1조 달러가 넘는 국채 폭탄이 투하될 예정이다. 난공불락처럼 견고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와 꺼질 줄 모르고 불타오르는 고용시장도 미 연준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연준 피봇은 고사하고 통화 긴축의 재료들만 두드러져 보인다.
금리 인상 단행한 호주와 캐나다
캐나다중앙은행이 7일(현지시간) 월가의 예상을 뒤엎고 지난 2개월의 금리동결을 뒤로한 채 기준금리인 오버나이트 금리목표치를 기존 4.5%에서 4.75%로 0.25%p 인상했다. 이번 금리 인상은 근원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다,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를 상당히 웃도는 수준에서 고착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캐나다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전날에는 호주중앙은행(RBA)이 기준금리를 3.85%에서 4.1%로 0.25%p 인상한 바 있다.
캐나다중앙은행과 호주중앙은행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올린 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녹록지 않음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재차 강화되는 글로벌 긴축기조의 파도가 연준이라고 비켜 가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미 국채 폭탄의 비가 쏟아진다
미국 연방정부가 디폴트를 모면했다고 안도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근심거리가 생겼다. 연방정부의 부채한도가 증액됨에 따라 9월까지 1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채가 시장에 투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7일(현지시간) JP모건은 미 재무부가 올해 말까지 1조 1000억 달러(약 1438조 원) 규모의 단기 국채를 발행할 것으로 추산했다. 여타 은행 전망을 종합하면 오는 9월까지 국채 발행 규모만 1조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주지하다시피 단기간에 대규모의 국채가 시장에 쏟아지면 이른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에 의해 시중의 유동성이 채권시장으로 흡수되고 그에 따라 시장금리는 오르게 마련이다. 벌써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위기 상황 이후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국채 발행이 금리를 0.25~0.5%포인트 인상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그뿐 아니다. 1조 달러가 넘는 대규모 국채 발행은 은행들의 자금 조달 비용을 상승시키고 은행들의 예적금 중 일부가 국채 매입으로 이탈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기준금리 인상의 후폭풍에 휘청거리는 미국의 중소은행들 가운데 일부가 파산할 수도 있다. 이처럼 대규모 국채 발행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는 법이다.
견고하기만 한 근원 PCE, 불타오르는 고용시장
연준을 고민스럽게 하는 건 이뿐이 아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높인 가장 중요한 이유인 인플레이션이 생각만큼 떨어지지 않고 있다. 거기다 더해 연준이 인플레이션의 중핵이라고 생각하는 서비스 물가의 중추인 고용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5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4월 근원 PCE 물가지수가 전월보다 0.4% 상승했다고 밝혔다. 미 월가의 예상치(0.3%)를 상회한 수치였다. 더 심각한 건 근원 PCE가 도리어 고개를 들었다는 것이다. 전년 대비 근원 PCE 물가지수는 4.7%로 전달의 4.6%에 비해 다시 상승했다. 주지하다시피 근원 PCE 물가지수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정책목표 기준으로 삼는 지표로 연준의 정책 타겟은 연 2%다. 물론 연 2%가 금과옥조도 아니고, 근거도 단단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튼 내려와도 시원치 않을 근원 PCE가 반등했다는 사실은 연준의 주름살을 더할 소재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노동시장은 기이할 만큼 뜨겁다. 미 노동부가 5월 31일(현지시간) 공개한 4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4월 미국 민간 기업들의 구인 건수는 1010만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3월 975만 건에서 1000만 건대로 재진입한 것인데,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는 940만 건에 불과했다.
특히 연준이 주목하는 실업자 1명당 구인 건수 배율은 1.8건으로 전월(1.7건)보다 더 늘어났다. 노동 공급에 비해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인데, 실업자 대비 구인 건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1.2명에 불과했다. 현재 미국의 노동시장은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이른바 노동 비축 등의 원인으로 수요가 공급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한 상태다.
철옹성처럼 버티는 인플레이션의 핵심이 서비스 물가이고, 서비스 물가의 근간이 임금이며, 임금은 고용시장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불가사의할 만큼 강한 미국의 고용시장은 서비스 물가가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글로벌 긴축기조의 부활, 미 국채의 융단폭격, 근원 PCE의 반등 및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노동시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은행시스템의 위기나 자산시장의 급격한 붕괴 같은 불측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연준의 조속한 피봇은 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