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의 경제 제대로 보기]
태풍으로 변한 레고랜드 사태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태풍을 몰고 올 나비의 날갯짓으로 커지고 있다. 우량 공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속속 실패하는데 더해 부동산PF시장이 급속도로 경색되고 있으며 급기야 뒤늦게 정부가 나서서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시장에 쓰나미처럼 몰려온 레고랜드 사태
레고랜드 사태는 사업자인 강원도 산하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자금 조달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아이원제일차)에서 발행한 2,050억 원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지난 9월 말 만기가 돌아왔지만 연장이 되지 않고 미상환 상태에서 지난 6일 부도 처리된 것을 이름.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도에서 지급보증한 GJC의 자산유동화증권(ABCP)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였기 때문.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연초 1.55%였던 기업어음(CP)금리는 21일 기준 4.25%로 급등했는데, 지난달 말 3.27% 수준에서 레고랜드 사태 이후 1%포인트 급등한 것.
레고랜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지는 중. 최고신용등급인 지자체가 보증한 어음까지 부도가 나자 너도나도 채권을 던지면서 금리가 급격히 오르고 있으며, 아무도 채권을 매입하지 않으려하고 있음. 한국전력 등 최우량 공기업조차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
한편 레고랜드 사태는 부동산PF시장을 해일처럼 강타 중. 지난해까지 경쟁적으로 PF 대출을 내주던 금융권도 최근 부실화 우려가 커지자 돈줄을 죄는 중. 심지어 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장인 서울 둔촌주공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차환 발행에 실패할 지경. 부동산PF시장의 경색은 건설·부동산 업계를 직격. 충남 지역 6위 종합건설업체인 우석건설은 지난달 말 납부기한인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가 난 데 이어 이달 말 유예기간까지도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 대형 건설사 가운데는 시공능력평가 8위인 롯데건설이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피에프 상환 대금 7천억원을 시장에서 마련하지 못해 롯데케미칼로부터 차입하는 등 고육책을 사용.
선제적 조치를 못한 정부는 뒤늦게서야 유동성 공급에 나서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지급보증연장 거부 선언을 막지도, 선제적 조치를 하지도 않은 윤석열 정부는 뒤늦게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가동에 나서.
정부가 가동하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은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
시사점
유례없이 빠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뜩이나 휘청거리는 금융시장에 강원도의 지급보증 거절이 방아쇠가 된 레고랜드 사태가 더해짐. 설상가상에, 점입가경의 형국임.
정부가 뒤늦게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가동을 천명했지만, 회사채 시장 및 부동산PF시장이 안정을 찾을지는 지켜봐야 함. 회사채 발행이 시장에서 실패하면 상대적으로 덜 우량한 회사부터 부도 위험에 노출될 것이고, 부동산PF시장의 경색이 길어질 경우 신규주택 공급도 큰 차질을 빚을 것임.
설사 회사채 시장 및 부동산PF시장이 안정을 찾더라도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은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은행에겐 악재일 가능성이 높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