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의 토지와 자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 적절한 결정일까
기대인플레이션을 꺾어야 할 때 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 금통위는 물가안정 보단 경기위축을 염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물가상승률이 확연히 꺾인 신호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마당에 금리를 동결한 결정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이 아닐지 우려된다.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
한은 금통위가 23일 오전 9시부터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금통위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금통위의 우려가 기우(杞憂)는 아니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은 수출 부진 등에 이미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로 돌아섰고, 심지어 올해 1분기까지 역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경상수지도 배당 증가에 힘입어 겨우 26억8천만달러(약 3조3천822억원) 흑자를 냈지만, 반도체 수출 급감 등으로 상품수지는 석 달 연속 적자에서 허덕이는 중이다.
한은은 우선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이전 금리 인상의 물가 안정 효과 등을 면밀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한은이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꺾일 줄 모르는 미국의 물가, 역대급으로 활황인 고용시장
24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직전 월인 지난해 12월 당시 상승률(5.3%)보다 높았으며, 한 달 전(0.2%)과 비교한 PCE 지수는 0.6% 급등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 가격지수는 1년 전보다 4.7% 상승했는데, 이는 금융정보업체 팻트셋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4.3%)를 상회한 것으로 전월 4.6%보다도 더 높았다. 또한 전월과 비교하면 0.6% 오르면서 월가 예상치(0.4%)를 상회했다. PCE지수와 근원PCE지수의 상승률이 다시 가팔라지는 건 그만큼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이고 견조하다는 뜻이다.
더욱 사정이 녹녹치 않은 건 개인 소득과 소비 지출이 동시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개인 소득은 전월 대비 0.6% 증가했는데 이는 지난해 12월(0.3%)보다 더 높은 상승률이다. 충격적인 건 지난달 소비 지출이 무려 1.8% 뛰었다는 사실이다. 소비 지출은 지난해 11~12월 두 달간 마이너스(-) 행진을 벌였다가, 갑자기 반등했다. 미국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개인 소득과 소비 지출이 동시에 늘었다는 건 미국의 고용시장이 역대급일 정도로 탄탄하기 때문으로 이 역시 인플레이션을 강하게 견인하는 요인이다.
단기 기대인플레이션도 반등했다. 추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은 이번 달 4.1%를 기록하면서 한 달 전 3.9%보다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4.4%에서 한풀 꺾이나 했는데, 다시 반등한 것이다.
CPI, PPI에 이어 PCE지수마저 급등세로 돌아섬에 따라 연준이 다음 달 FOMC에서 기준금리를 베이비스텝(0.25%P)가 아닌 빅스텝(0.50%P)을 단행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개인소득과 소비지출이 동시에 증가한 것이나 단기기대인플레이션 등이 모두 상승하고 있는 건 미국의 고용시장이 역대급으로 활황임을 의미하며, 미국의 고용시장이 지금과 같은 활황세를 이어간다면 인플레이션의 급락은 기대난망이다.
기준금리 6% 얘기가 나오는 미국
도무지 꺾일 줄 모르는 미국의 물가를 두고 기준금리 상단에 대한 전망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기준금리가 6%에 도달할 수도 있다”며 “파월 Fed 의장을 존중하지만, 우리는 인플레이션 통제력을 다소 잃었다”고 CNBC에 말한 바 있다.
또한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스티븐 체체티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 교수를 포함한 5명의 경제학자와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시카고경영대학원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서 “물가를 통제하려면 다소간 경제적 고통을 촉발해야만 한다”고 밝히며, “약한 침체도 없이 2025년 말까지 인플레이션을 연준 목표 2%로 되돌린다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강조했다.
55페이지 분량의 이 연구 보고서는 연준의 금리 전망에 따라 시뮬레이션을 제시했는데 연준 금리가 올 하반기 각각 5.6%, 6%, 6.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이제 미국에서 기준금리 6%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상당 기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은은 물가안정에 방점을 찍어야
한은 금통위가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인해 금리를 동결했지만, 이 금리동결이 경기침체를 완화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무척 회의적이다. 오히려 상승세가 전혀 꺾이지 않고 있는 물가에 나쁜 신호를 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물가는 심리적 요인이 크며 통화당국은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 보다 높은 기준금리를 결정해 기대인플레이션을 과감히 꺾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행에게선 그런 과단성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 입장에서 더 곤혹스러운 건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5월까지 최소한 50bp 이상 올릴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1.75%포인트 이상 벌어질 것이어서 자본유출 등에 따른 환율 불안정 가능성이 증폭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연준이 올해 안에 기준금리 상단을 6%까지 높인다면 한국은행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은행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가안정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운용함에 있어 이점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은 엑셀레이터를 밟아야 할 때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를 정확히 분별하고 그 분별을 실행에 옮길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라고 주권자들이 세금으로 한국은행을 유지하고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