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경] 정의로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불가능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효율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악마의 맷돌처럼 부자를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분명 이들의 지적이 옳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룬 빛나는 경제적 성취와 생산력의 비약적 향상의 결과를 소수의 사람들이 독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소수의 사람들은 호사스럽기 그지 없는 생활을 즐기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끼니를 근심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이런 체제가 장기지속하기란 어렵다. 혁명의 기운이 도처에서 꿈틀거렸고, 대안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대안의 형식은 경제학일 수밖에 없는데, 기존의 고전주의 경제학을 발전적으로 지양하려는 야심찬 포부를 지닌 대가 2명이 출현했다. 마르크스(1818~1883)와 헨리조지(1839~1897)가 그들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본모순을 임노동과 자본에서 찾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이 임금노동이라는 상품을 임금노동자에게 구입하고, 임금노동자에겐 임금노동자의 생존에 필요한 임금만을 지급하고(생존비임금론), 임금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중 생존비를 상회하는 가치는 자본이 빼앗아 간다(잉여가치론)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가 존속하는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영원히 불의한 제체일 수 밖에 없다고 봤다.

 

헨리 조지의 생각은 마르크스와는 달랐다. 헨리 조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신뢰했다. 다만 헨리 조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정의롭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이유가 토지를 소유한 지주계급이 자본과 노동이 생산한 가치를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지대(rent)의 형식으로 약탈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따라서 헨리 조지는 지주들이 부당하게 전유하는 지대(불로소득)를 세금으로 환수하고 다른 세금을 없애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정의롭고 효율적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마르크스와 헨리 조지 중에 누가 옳은지를 논증할 능력이 없다. 다만 누구나 동의할 정의의 원칙 중 하나가 가치의 생산에 기여하는 자가 기여하는 만큼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문제는 누가, 얼마만큼 가치의 생산에 기여하는지를 엄밀하고 정확하게 계측할 도구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들이 가치의 생산에 정확히 얼마만큼 기여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노동과 자본의 소유자인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노동과 자본의 사용댓가인 임금과 이윤을 기여한 바에 따라 배분할 수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갈등축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 불행히도 경제학은 아직까지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단을 발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다른 정의의 원칙을 찾아야 한다. 그런 원칙 중 하나가 사람이 만들거나 생산하거나 가치를 창출한 것이 아닌 자연자원의 경우 그 가치를 만인이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토지 등의 자연자원은 자연이 인류에게 베푼 선물이며, 자연자원이 지닌 가치는 만인이 평등하게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단지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연자원의 가치를 독점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특히 토지 같은 경우 토지가치의 증가는 거의 전적으로 소유자가 아닌 사회의 역할에서 기인하며 따라서 사회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이를 향유하는 것이 옳다. 이런 이치가 잘 이해되지 않으면 강남을 생각해 보면 된다. 영동(영등포의 동쪽)이라고 놀림받던 강남이 지금과 같이 대한민국 일번지가 된 건 국가가 세금을 투입해 강남에 각종 인프라를 구축했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프라가 구축되고 유동인구와 거주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다보니 강남의 토지가치(지대)는 천정부지로 뛰었던 것이다. 토지소유자가 토지가치의 상승에 기여한 건 전혀 없다. 단지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지대의 형식으로 가로챌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가 지향할 방향이 명확하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증세를 하되 토지 등을 위시한 자연자원에 먼저 과세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재원도 마련 될 뿐더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의로움과 효율성을 침해하는 지대를 경제에 충격을 덜 주는 방식으로 제거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의로움과 효율성을 크게 제고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효율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의로울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기획하고, 제도화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출처 : 2014년 7월 7일자 미디어오늘(http://goo.gl/0KO8kl)>

 

이 태 경 /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