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고소득층이 독식…고통 있어도 축소해야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최근 전체 전세대출 잔액의 3분의 2가 고소득층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이 전세대출에서 소외되는 가운데, 소득 하위 30%가 전세대출 중 고작 7.6%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는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주택가격 상승의 화수분 역할을 하고 있는 은행권 전세대출이 8월 기준 123조 원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전세대출의 폭발적 확대, 더 나아가 전세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을 직격한 것도 전세제도가 주택시장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미치는 해악이 심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의 한 시중은행에 게시돼 있는 전세자금 대출 안내 홍보물의 모습. 2025.6.1. 연합뉴스
서울 도심의 한 시중은행에 게시돼 있는 전세자금 대출 안내 홍보물의 모습. 2025.6.1. 연합뉴스

 

전세대출 제도는 고소득층을 위한 것인가?

한국은행이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상위 30% 고소득 차주가 받아 간 전세대출은 전체 잔액의 65.2%에 달했다. 무주택 저소득층이 자구책으로 전세대출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세간의 고정관념과는 완벽히 배치되는 수치여서 충격을 안겨준다.

소득 상위 30%의 고소득층 전세대출 잔액 비중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셋값 상승기와 맞물려 꾸준히 높아졌다. 2021년 1분기 61.2%에서 2022년 1분기 62.3%, 2023년 1분기 62.4%, 2024년 1분기 62.8% 등으로 차츰 늘다가 올해 1분기 64.6%로 크게 뛰었다. 이어 올해 2분기 들어 65%를 넘었다.

차주 수 기준으로도 2021년 1분기 49.8%로 절반 이하였으나, 2022년 1분기 50.9%, 2023년 1분기 51.8%, 2024년 1분기 52.3%, 올해 1분기 54.0% 등으로 비중이 꾸준히 확대됐다. 올해 2분기는 54.6%로 집계됐다.

이는 소득 하위 30%의 저소득층 전세대출 비중이 잔액 기준과 차주 수 기준에서 모두 추세적으로 줄어든 것과 정반대 흐름이다.

올해 2분기 저소득 차주가 받아 간 전세대출은 전체 잔액의 7.6%에 그쳤다. 이 비중은 2021년 1분기 9.1% 수준이었으나, 2022년 1분기와 이듬해 1분기 각 8.9%, 2024년 1분기 8.1%, 올해 1분기 7.7% 등으로 점차 낮아졌다.

차주 수 기준 비중도 2021년 1분기 12.5%에서 계속 줄었다. 2024년 1분기 10.3%에서 올해 1분기 9.9%로 하락해 10%를 밑돌았고, 2분기에도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소득 상위 30∼70%의 중소득층 전세대출 비중 역시 잔액과 차주 수 기준으로 모두 줄어 저소득층과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결국 전세대출의 고소득층 집중 현상이 두드러진 셈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는 우선 2021년 이후의 가파른 전세 보증금 상승이 지목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 가격이 치솟으면서 전세 보증금도 함께 올랐다”며 “고소득층의 보증금 절댓값이 크기 때문에, 같은 상승률이라도 대출 잔액이 더 많이 늘어 비중이 커졌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일부 고소득층은 대출 규제 강화 전 갭투자(전세 낀 주택 구매)로 수도권 핵심지에 ‘똘똘한 한 채’를 사두고, 전세대출을 받아 다른 지역에서 세입자 생활을 하는 경우도 가능했다. 이쯤되면 전세대출 제도가 고소득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근본적 회의까지 들 지경이다.

 

소득수준별 전세대출 비중 추이. 자료 : 한국은행
소득수준별 전세대출 비중 추이. 자료 : 한국은행

 

8월 기준 5대 은행 전세대출 잔액이 123조 원을 넘어서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123조 3554억 원이었다. 이는 지난 2023년 6월(123조 6309억 원) 이후 25개월 만에 최고치다.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22~2023년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4월 117조 9189억  원으로 저점을 찍은 뒤 매달 증가하며 15개월 새 5조 4365억 원(4.6%)이 증가했다. 전세자금 대출과 보증에 대한 보다 강력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이창용 총재마저 전세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촉구해

전세제도는 무이자 사금융이면서 주택구입의 강력한 레버리지 역할을 한다. 전세제도가 지닌 본질적 문제에 더해 전세대출 및 보증이 결합하면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세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레버리지(대출로 주택 구매)가 계속 확대된다”며 “고통이 있어도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세대출 같은 제도로 가계 부채비율이 너무 높아지고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부동산 시장은 현 상태로 지속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의 고강도 발언은 전세대출 및 보증을 포함해 전세제도가 주택 시장에 미치고 있는 치명적 해악을 직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10.20.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10.20. 연합뉴스

 

전세대출 및 보증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 불가피해

경실련은 지난해 정권별 국내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현황을 발표한 바 있다. 경실련에 따르면 2008~2023년 10월까지 정권별로 국내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 현황을 분석했다. 경실련은 이명박 정부 임기 초에는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고작 3000억 원에 불과했는데, 임기말에는 6조 1000억 원이 늘어 6조 4000억 원이 됐다고 분석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에는 29조 6000억 원이 증가해 36조 원이 됐으며, 문재인 정부 때 무려 126조 원이 늘어 162조 원이 됐다. 한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022년경 전세자금대출은 170조 5000억 원까지 늘어났다가 2023년 10월 기준 161조 4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경실련이 발표한 전세자금대출 잔액 추이를 보면 전세자금대출이 이명박 정부가 시작하고 박근혜 정부가 계승한 주택시장 부양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하게도 문재인 정부는 이를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전세자금대출 잔액을 폭증시켰다. 당시 아파트값 폭등의 주된 원인이 됐다.

분명한 것은 이창용 총재도 지적했듯 고통이 따르고 저항이 수반되더라도 전세대출 및 보증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한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이재명 정부는 어렵더라도 이 숙제를 솜씨 있게 처리해야 한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5년 10월 22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