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급증, 전세대출 확대와 보증보험 확대가 주범이다!



전세 사기 급증, 전세대출 확대와 보증보험 확대가 주범이다!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우리나라만 있다고 알려진 제도인 전세가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집주인과 세입자 쌍방 모두가 원하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목돈인 전세금만 마련하면 월세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전세금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목돈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결혼하는 사람은 전세금만 마련하면 그 돈을 밑천 삼아 어렵지 않게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집주인에게 전세금은 다주택자가 될 수 있는 ‘무이자 대출’이기도 하다. 전세금이 집값의 70%가 되면 1주택자는 30% 자금만으로 2주택자가 될 수 있다. 집주인에게 세입자의 전세금은 투기의 밑천이다.

 

그러나 전세는 구조적으로 사기에 취약하다. 전세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선순위 채권이 없는 것처럼 세입자를 속이면 세입자는 전세금의 상당 부분 혹은 전부를 날릴 수 있는데, 문제는 세입자가 거주 기간에는 사기를 당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계약이 끝날 시점이나 특별한 일이 있어서 집주인과 연락했을 때 알게 된다. 반면 월세는 사기의 위험성이 거의 없다. 보증금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중요한 이유다. 월세를 매달 지급하기 때문에 중간에 집주인이 바뀌게 되면 세입자는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만약 집주인이 월세 보증금을 의도적으로 돌려주지 않으면 그만큼 더 살면 된다. 

 

한편 이런 전세가 유지된 배경에는 집값이 계속 오른 탓도 크다. 집주인이 집을 전세로 놓는 이유는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 놓고 이자 소득을 누리거나 투자 자금으로 쓰려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 매매차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매차익이 기대되지 않으면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려 할 것이다.                 

 

 

전세대출 확대와 신조어 ‘갭투자’ 등장


그런데 예전부터 있었던 전세 사기 피해가 2010년대 후반부터, 정확히 2018년 이후부터 급증하여 사회적 이슈가 되고 심지어 피해자가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갭투자’라는 신조어의 등장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 즉 갭(gap)만큼만 자금을 마련하면 다주택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전세 끼고 집을 사는 모든 행위가 ‘갭투자’다. 그런데 그 전엔 없던 말인 ‘갭투자’가 2010년대에 등장한 이유는 뭘까? 전세대출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전세대출은 2008년에는 대출한도를 1억 원으로 했다가 2009년부터는 2억 원으로 확대했다. 심지어 2011년에는 유주택자에게도 전세대출을 제공했다. 지방에 사는 사람이 집값이 크게 오르는 서울에 전세 끼고 집을 사고, 본인도 전세대출 받아서 세입자가 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출한도를 2억 원으로 확대하니 2억 이하의 전세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는 전세대출 한도를 3억 원으로, 2015년에는 5억 원으로 올리니 전세가는 이에 맞추어 계속 상승했다. 박근혜 정부는 심지어 무소득자에게도 전세대출이 가능하게 했다. 

 

이런 상황, 즉 전세대출이 확대되고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갭투자’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전세가가 올라서 대출해 준 것이 아니라 전세대출을 확대했기 때문에 전세가가 올라갔다는 점이다. 즉 전세대출과 전세가는 상호 촉진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전세대출 확대와 전세금 반환보증 출시

 

여기에 더하여 박근혜 정부는 2014년부터 정부 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금 반환보증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제도를 도입한 직접적인 이유는 비싼 전세금을 떼일까 염려하는 세입자를 안심시키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HUG가 전세금 보증을 해주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더라도 세입자는 HUG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집주인에게 ‘반환보증’은 어떻게 이해될까? 전세금을 반드시 자신이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뿐 아니라 반환보증은 세입자가 더 많은 전세대출을 받도록 유도하고, 현장의 공인중개사도 이런 방향으로 세입자를 안내하게 된다. 소득과 관계없이 정부가 저리로 전세대출을 해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반환보증에 가입하면 전세금을 떼일 염려가 없다는 점을 세입자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하는 것이 공인중개사에게 더 많은 금전적 이익을 제공한다. 이렇게 전세대출 확대와 반환보증이 만나니 전세가는 더 올라가게 되었고, 결국 이것은 매매가마저 밀어 올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전세대출을 축소하고 보증 한도를 낮추면서 세입자의 주거 안정과 전세금 보호를 위해 세밀하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했으나, 세입자 다수가 전세대출 확대를 원한다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는 전세금의 80%를 보증해 줬는데 100%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말부터 세입자가 ‘반환보증’을 활용하면 전세금을 떼일 염려가 사라진다고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는데, 뼈아프게도 이때(2018년 초)부터 이른바 전세 사기 ‘설계’가 시작된다.

 

 

‘설계’를 시작하고, 정부 손실은 폭증하고


전세 사기 설계자들은 세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하면 전세금을 빼먹는 사기를 쳐도 모두가 행복하다는 걸 파악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에서 빌라 수백 채를 지은 건축업자인 집주인은 감정평가사와 공모하여 시세 1억 5천만 원의 주택을 2억 5천만으로 둔갑시켜 2억 원에 전세시장에 내놓는다. 다음 단계에서 공인중개사는 전세 2억 원에 계약할 세입자를 모으고 세입자가 전세금의 80%인 1억 6천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이때 공인중개사는 세입자가 안심하고 계약할 수 있도록 보증보험가입 등을 권유하거나 전세대출 이자의 일부를 지급해 주기도 한다.          

 

 다음 단계에서 건축업자인 집주인은 미리 섭외해 놓은 신용 불량자에게 주택의 명의를 떠넘긴다. 이때 건축업자인 집주인은 돈이 없는 신용 불량자에게 취득세를 대납해 주고 리베이트까지 제공한다. 신용 불량자가 이런 조건을 마다할 리 없다. 계약이 만료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세입자는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것과 새로운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걸 알게 되는데, 결국 세입자는 HUG에게 전세금을 반환받게 되고 HUG는 경매를 통해서 전세금을 회수하지만, 경매가는 1억 원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손실을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보는 사람은 건축업자이고, 감정평가사와 공인중개사와 ‘빌라왕’이라 불리는 신용 불량자도 이익을 보게 된다. 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물론 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세입자가 손해를 보는데, 전세금의 상당액 혹은 전액을 날리게 되면 세입자에게 대출받은 전세금은 갚아야 할 빚으로 남게 되기 때문에 세입자는 자살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대출 잔액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세대출은 6.1조 원 증가했고(0.3조→6.1조), 박근혜 정부에서는 29.6조 원(6.4조→36조) 증가했으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무려 126조 원(36→162조)나 증가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22년~23년 10월) 금리상승으로 전세대출 이자도 올라 반대로 0.6조 원(162조→161.4조) 감소했다. HUG의 전세자금보증 공급액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71조 원(연평균 17.7조 원)이고, 문재인 정부가 197.7조 원(연평균 39.5조 원)이며, 윤석열 정부는 2023년 9월까지 1년 4개월 만에 무려 94.8조 원(연평균 47.4조 원)을 기록했다. HUG는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은 집주인을 대신해 먼저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고 나중에 경매 등을 통해서 회수하지만 회수율은 매우 낮아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HUG가 대신 갚아준 전세금은 5,041억 원이었는데, 2023년에는 무려 3조 55,540억 원이나 되었고, 2023년 순손실은 3조 8,598억 원으로 2022년 4,087억 원으로 무려 9배나 늘었다. 그렇다면 전세대출의 규모를 차츰 줄여나가고 반환보증의 보증 한도도 낮춰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할 리 만무하다. 윤석열 정부는 전세자금보증 요건을 7억, 보증 한도를 4억으로 완화됐고, 심지어 부부 합산 소득 1억 원 초과 1주택자, 보유 주택 가격 9억 원 초과 1주택자에 대해서도 전세자금보증도 허용했다. 또 2024년에는 청년과 출산 가구를 중심으로 전세대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전세대출 확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것인데, 이것의 목표는 집값 떠받치기다. 물론 윤석열 정부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선구제-후회수’에도 반대하고 있다. 

 

 

전세대출을 축소하고 보증보험 한도 축소해야 한다!


전세 사기가 노리는 건 세입자의 ‘거액’ 전세금이다. 그런데 은행이 전세금을 저리로 대출해 주고 정부가 반환보증까지 제공한다면 전세 사기 설계는 차단할 수 없다. 드러난 설계자들은 처벌받겠지만, 연간 4조 원의 사기 시장이 열린 거나 마찬가지인데 사기가 사라질 질 리 없다. 사기 수법은 더 고도화할 것이다.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한, 수백 채를 소유한 빌라왕은 사라지겠지만 3~5명 정도 소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설계’는 쉼 없이 개발될 것이다. 보증보험가입을 하지 않으면 세입자가 손해를 보는 것이고, 가입하면 국가가 손실을 떠안게 되는 본질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세대출과 보증 한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와 동시에 저렴하게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그렇다 쳐도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전세 사기 피해자 구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세대출과 보증 한도를 축소하면 세입자들이 반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전세대출을 축소하고 보증 한도를 낮춰야 사기 피해가 줄어들고 전세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주택가격이 내려가면 매매차익을 노리는 전세는 월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전세 사기 폭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집을 사는 것도, 집을 임대하는 것도 부채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대출을 크게 일으키지 않고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주택을 꾸준히 공급하고, 효과적인 투기 차단책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면서 월세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위험한’ 전세를 ‘안전한’ 월세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거기에 공공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평화나무 쩌날리즘 2024년 5월 28일>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