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과 함께하는 책읽기 모임 5주차, 마침내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한 권을 다 읽었습니다. 이번 주는 8, 9, 10장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참석하신 분들이 다소 적었지만, 그 만큼 더 간결하고 집중력 있는 발제와 토론, 그리고 여유로운 치킨이 함께하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주 함께 읽은 8, 9장은 재정 및 통화 정책에 대한 것이었고, 10장은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고 간략히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미국적 상황에 맞춰 서술된 책이기 때문에 우리의 논의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책 내용이 방대한 만큼 큰 정부-작은 정부, 금융 기관에의 적합한 감시 수준 문제, 기본소득 및 보편복지 등 복지 제도의 방향 등 여러가지 큰 문제들이 제기되었지만, 논의 과정에서 북유럽 사회의 신뢰 문화, 세대 격차와 인지 포획적 상태에 대한 논의 등 다양한 개인적 경험들과 생각들이 함께 나누어졌고, 성승현 연구원님의 사회 아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혁명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하층계급이 옛 방식으로 살기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상층계급이 옛 방식으로 살려고 하더라도 살 수 없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는 레닌의 말과 대비되는, 스티글리츠의 말 속에 내재하는 보수성에 대한 연구원님의 날카로운 지적이 인상 깊었습니다. 스티글리츠의 공동체성, 공동운명체로서의 사회에 대한 강조는 오늘날과 같이 공동체성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긴 하지만, 자칫 중하층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한도’만을 지켜주는 소극적, 보수적 입장으로 읽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실제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경제 계획도 워딩 자체에서는 스티글리츠와 다를 것이 그닥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라보는 지점, 그리고 제도적인 뒷받침이겠지요.
책 한 권을 마무리하며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이러한 독서 모임 자체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관망자적, 소비자적 입장에서 공공재인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협동조합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 사회의 공공재를 만들어가는 ‘생산자로서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한 참석자분의 일갈(?)은 귀를 번뜩 뜨이게 했습니다. 비단 정당,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이러한 독서 모임 역시 민주주의를 생산하는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공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뢰가 존재하는 사회라고 부러워했던 북유럽에서는 독서 모임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치킨과 함께하며 공부하는 이런 모임을 만들고, 서로 배우며 함께 자라가는 것이야말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첫 걸음이 되리라 믿습니다. 다음 시간도 기대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