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 물가와 재정의 역습 본격화하나?
이태경 /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도널드 트럼프의 전방위적 관세 전쟁 등의 여파로 미국 경제가 심상치 않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폭등하고 경기 둔화를 알리는 지표들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투자의 대부인 레이 달리오는 트럼프 행정부가 당장 재정적자 감축에 나서지 않으면 3년 내에 심각한 부채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 침체와 물가상승이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를 강타할 조짐이 보이자 가뜩이나 위태로운 한국 경제도 사면초가 상태다.
1995년 이후 가장 높았던 장기 기대인플레이션
트럼프 정부의 무차별 관세 전쟁 등으로 물가가 다시 오르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무섭게 상승중이다. 여론조사 업체 해리스폴이 지난달 6∼8일 미국 성인 21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일상용품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본 응답자가 59%였다. 물가가 내릴 것으로 본 응답자는 11%에 그쳤고, 나머지는 별 영향이 없거나(15%), 모른다(16%)고 답했다. 심지어 이번 달 장기(5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3.3%로 1995년 이후 가장 높았다.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에 앞서 실제로 미국의 물가가 오르고 있다.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3.0%로, 연준 목표치 2.0%를 여전히 상회했다. 5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미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워윅 맥키빈 선임위원은 보고서에서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미국의 성장률을 2026∼2029년 매년 0.2%p가량 낮추고, 2025년 인플레이션을 0.43%p 높이는 영향을 미칠 거라고 분석했다.
관세 부과 상대국의 보복 조치 예고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부메랑 효과’가 예상된다. 경제분석업체 앤더슨이코노믹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예고한 관세가 시행될 경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전기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의 가격이 각각 9000달러(약 1300만 원), 1만2000달러(약1750만 원)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은 이번 관세가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 부담으로 이어지면서 올해 미국 신차 수요를 12% 정도 위축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소비자 기대 인플레이션이 현실로 나타나면 경기 침체 없이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연준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꼽혔다.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경기둔화 경기지표들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만이 문제가 아니다. 경기둔화의 조짐들도 각종 지표들로 확인된다. 미국의 1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9% 감소했는데, 2023년 3월(-1.1%)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감소율이 가장 높았다.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의 2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1월 대비 7p 하락해 2021년 8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또 지난달 28일 발표된 1월 개인소비지출은 전월 대비 0.2% 감소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1년 2월(-0.6%)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감소율을 기록했다.
소비가 위축되니 공급 분야도 위축되는 건 당연지사다. 지난달 미국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3을 기록하면서 전월(50.9) 대비 0.6p 하락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에 미치지 못한 수치다. 이 지표가 기준선이 50을 넘으면 제조업 경기가 확장 국면, 밑돌면 수축 국면임을 시사한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추정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나우(now)’ 모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 GDP 나우는 지난달 28일 1분기 성장률을 전기 대비 연율 환산 기준 -1.5%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19일 2.3%에서 3.8%p나 내려간 것이다. 애틀랜타 연은은 1분기 실질 개인소비지출(PCE) 증가율이 종전 2.3%에서 1.3%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2022년 1분기(-1.0%)가 마지막이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최근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3개월 만기 수익률을 밑돌아 장단기 채권 금리 역전 현상을 보였다. 장단기 금리 역전 이후 반드시 경기 침체가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이 불황 가능성을 예고하는 지표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당장 재정감축 안 하면 3년 내 큰 일 난다는 레이 달리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이하 브리지워터)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가 부채의 습격에 대해서 강력이 경고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끈다. 3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에 따르면 달리오는 최근 팟캐스트에 출연해 미 경제가 정부의 조치가 없다면 ‘경제적 심장마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부채 악순환에 매우 가까워졌다”며 “만약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3년 안팎의 기간 내에 경제적 심장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는 36조 2000억 달러에 달한다. 작년 여름 처음으로 35조 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4 회계연도에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도 1조 8000억 달러에 달했다. 정부 지출은 총 6조 7500억 달러였고 세수는 4조 92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지난해 기준 6.4%로 역대 최고였다.
달리오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달리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3%로 줄일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조치가 시행되면 예상 적자가 GDP의 약 7.5%에 이를 것이며, 이를 3% 수준으로 낮춰야 부채가 소득 대비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리오는 약 50년 전 브리지워터를 창립했으며 포브스 기준 140억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마저 경제가 어려우면 한국은 어떻게 하나?
트럼프의 전방위적 관세전쟁과 돌관적 감세정책 등으로 인해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의 기운이 퍼지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면서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사태가 오면 정책 결정권자들이 경기 침체보다도 더 대응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보도했다.
다발 조시 BCA 리서치 선임 전략가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미국 경제가 이르면 올해 2분기에 ‘미니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3%가량에 머물러 있고, 이 상태에서 이른 시일 내에 경제 성장 둔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그가 주장했다.
미국이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습격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어떤 강도로, 얼마나 고통받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중요한 건 미국 경제가 당분간 고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이는 가뜩이나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휘청대는 한국 경제에는 초대형 악재다. 자국의 위기를 다른 나라에 전가해 위기를 탈출하려는 트럼프의 성향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